4-13.2. 프란치스코 데 오수나와 '거두어들임'

by이호창

4-13.2. 프란치스코 데 오수나 (Francisco de Osuna)와 '거두어들임'의 기도


16세기 스페인 영성사의 황금기가 도래하기 직전, 스페인 신비주의의 방법론을 체계화하여 후대의 거장들이 등장할 수 있는 신학적 토양을 마련한 선구자가 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수사이자 개혁가였던 프란치스코 데 오수나 (Francisco de Osuna, 1492-1540)가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복잡한 신학적 사변이나 외부적인 고행 중심의 신앙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일반 신자들도 실천할 수 있는 내면적인 기도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오수나는 인간의 영혼이 신과 만나기 위해서는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가 정립한 기도 방법론인 레코히미엔토 (Recogimiento)는 한국어로 거두어들임 혹은 내적 집중으로 번역되며, 이는 산만하게 흩어진 감각과 지성을 영혼의 중심으로 모아들여 그곳에 현존하는 신을 만나는 수행법입니다. 이러한 오수나의 가르침은 훗날 아빌라의 테레사와 십자가의 요한 같은 영성가들이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스페인 신비주의가 주관적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체계적인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오수나의 영성 사상이 집약된 대표작은 『제3 영적 자모, Tercer Abecedario Espiritual』입니다. 이 바카라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영적 교훈을 기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중 세 번째 바카라은 관상 기도와 내적 수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수나는 이 바카라에서 기도를 특정한 엘리트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의무이자 권리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우정 어린 대화”로 정의하며, 인간이 신에게 나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스콜라 철학이 신에 대한 지적 탐구에 몰두했다면, 오수나는 신을 사랑하는 의지의 작용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그는 신학적인 지식이 없어도, 심지어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거두어들임의 기도를 통해 신비적 합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영성 생활의 민주화를 예고하는 혁신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오수나가 주창한 거두어들임은 단어의 본래 의미처럼 흩어진 것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행위를 뜻합니다. 인간은 타락 이후 감각과 욕망이 외부 세계의 사물들을 향해 분산되어 있습니다. 눈은 보기에 좋은 것을 쫓고, 귀는 듣기에 즐거운 소리를 탐하며, 마음은 끊임없이 세상의 근심과 쾌락 사이를 부유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영혼의 중심에 계신 신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거두어들임은 외부로 뻗어 나가는 감각의 촉수를 거두어들이고, 마음의 문을 닫아 세속의 소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능동적인 노력입니다. 오수나는 이를 위해 침묵과 고독이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잡념과 상상력을 잠재우는 영혼의 정적을 의미합니다. 수행자는 의지적으로 감각 활동을 중단하고 자신의 내면을 신을 위한 밀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거두어들임의 기도는 지성적 사유를 멈추고 의지적 사랑을 활성화하는 과정입니다. 오수나는 인간의 지성이 신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지성은 이미지를 만들고 개념을 정의하지만, 신은 어떠한 이미지나 개념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무한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오수나는 이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 (No pensar nada)’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멍한 상태나 의식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한 대상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생각의 근원이자 대상인 신에게 전적으로 집중하는 역설적인 깨어있음입니다. 그는 수행자들에게 “너의 지성을 쉬게 하고 오직 사랑으로만 신을 바라보라”고 권면했습니다. 사랑은 지성이 멈춘 곳에서 더 나아가 신의 본질을 꿰뚫고 들어가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수나의 수행론은 고대 인도 요가 (Yoga) 철학의 명상 단계와 현상학적으로 매우 유사한 구조를 보입니다. 오수나가 강조한 '거두어들임 (Recogimiento)'은 요가 경전인 『요가 수트라』에서 제시하는 8단계 수행 중 다섯 번째 단계인 ‘프라티아하라 (Pratyahara, 감각 제어)’와 밀접하게 상응합니다. 프라티아하라는 거북이가 위협을 느낄 때 사지를 등껍질 속으로 거두어들이듯, 외부 대상으로 향하던 감각 기관을 의식의 내면으로 회수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또한 오수나가 말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은 마음 작용의 멈춤을 뜻하는 요가의 핵심 정의인 ‘치타 브리티 니로다 (Citta-vritti-nirodha, 마음의 파동 소멸)’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두 전통 모두 인간의 감각과 산만한 사고가 영적 실재를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으며, 이를 의지적으로 차단하고 내면의 고요함에 머무르는 것을 수행의 필수적인 기초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두 수행법 사이에는 결정적인 지향점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요가의 명상은 궁극적으로 자아의 본성을 깨닫고 우주적 원리와 합일되는 해탈 (Moksha)을 목표로 하며, 이는 철저한 자기 수행과 기법의 숙련을 통해 성취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반면, 오수나의 거두어들임은 기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격적인 신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그는 수행자가 내면을 비우는 이유가 단순히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빈 공간에 하느님의 은총을 초대하기 위함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요가가 인간 내부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신성에 도달하려 한다면, 오수나의 기도는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주도적인 활동인 은총 (Grace)에 자신을 맡기는 겸손과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오수나의 거두어들임 기도는 인간의 능동적인 협력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산만함을 물리치고, 마음을 신에게 고정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신이 영혼 안에 들어와 활동하시기 위해서는 인간이 먼저 신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오수나는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를 하실 것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거두어들임은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한 인간 측의 적극적인 준비 태세이자 영적 훈련입니다.

오수나는 기도의 과정을 등산에 비유하는 대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심연의 탐구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신이 하늘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 즉 심장 속에 거처를 정하고 계신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신을 찾는 여정은 공간적인 이동이 아니라 내면으로의 귀환입니다. 그는 영혼을 신전으로, 마음을 지성소로 비유하며, 인간이 자신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내재적 신관은 수행자로 하여금 외부의 기적이나 신비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세미한 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오수나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기적은 인간의 마음이 변하여 신의 거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거두어들임의 기도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성 (Humanitas Christi)에 대한 묵상과 연결됩니다. 오수나는 신성으로의 비약을 추구하면서도, 그 통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삶과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모으고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상처를 바라볼 때, 인간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 신을 향한 연민과 사랑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오수나는 추상적인 '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인 그리스도를 통해 신비의 세계로 진입하는 균형 잡힌 길을 제시했습니다.

오수나의 영성은 아빌라의 테레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테레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기도가 되지 않아 고통받던 시절, 숙부로부터 선물 받은 오수나의 『제3 영적 자모』를 읽고 비로소 기도의 문이 열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오수나가 제시한 거두어들임의 방법을 따라 내면의 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영성 체계를 수립했습니다. 테레사가 강조한 '내적 기도'와 '거둠 기도'는 오수나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오수나는 테레사라는 거목이 자라날 수 있도록 뿌리를 제공한 영적 스승이었으며, 그의 바카라은 스페인 신비주의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데 오수나의 '거두어들임'은 복잡하고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단순함의 영성을 가르칩니다. 현대 슬롯는 끊임없는 정보와 자극으로 인간의 내면을 분열시키고, 자기 자신과 대면할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오수나는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서서 외부로 향한 감각의 스위치를 끄고, 내면의 고요한 방으로 들어가라고 초대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생명의 근원인 신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는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모아 신을 향해 들어 올리는 단순하고도 진실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오수나의 메시지는 신앙이 관념이 아닌 체험이며, 신은 논리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임을 명확하게 일깨워줍니다.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훈련을 통해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세우고, 신과 동행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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