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겠다와 죽인다

죽음의 단어를 빌려 삶을 증명하는 역설

by날개

한국인의 언어생활에서 ‘죽음’만큼 흔하고 다채롭게 소비되는 단어도 드물다. 우리는 배가 고파도 죽겠다고 하고, 너무 기뻐도 죽겠다고 하며, 심지어 경치가 빼어나거나 음식이 훌륭할 때조차 “죽인다!”라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생의 가장 극단적인 종말을 뜻하는 단어가 일상의 가장 사소하고 생생한 순간들을 수식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이 희한한 언어적 습관 뒤에는 인간만이 가진 기묘한 심리와 생존의 역설이 숨어 있다.


심리학적으로 ‘죽겠다’는 표현은 현재 내가 느끼는 감각이나 상태가 ‘나라는 존재의 한계치’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강렬한 신호다. 정말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허기나 피로, 혹은 환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무게를 끌어와 현재의 생경한 느낌을 증명하려는 시도, 즉 가장 강한 부정의 단어로 가장 선명한 긍정의 상태를 묘사하는 셈이다.


반면 “죽인다!”라는 표현은 타자나 대상을 향한 최고의 찬사로 쓰인다. 여기서의 죽음은 ‘압도당함’을 의미한다. 나를 둘러싼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훌륭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스스로 그 대상에게 ‘당했다’는 표현을 죽음으로 치환한다. 결국 “죽인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내 모든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살아있음을 고백하는 가장 뜨거운 생의 찬가다.


결국 살아있는 자만이 죽음을 농담처럼 던질 수 있다. 진짜 죽음 앞에 선 자는 결코 죽음을 가볍게 입에 담지 못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죽음’의 단어들을 남발하는 것은, 사실 그만큼 우리가 안전한 삶의 한복판에서 생의 에너지를 과잉으로 분출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죽음을 빌려 삶의 농도를 측정하는 이 기막힌 역설. 우리는 오늘도 “죽겠다”라고 엄살을 떨며,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살아있는 존재인지를 세상에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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