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속는가
2026년이라는 숫자가 무색하게도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구태의연하다. 기술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인공지능은 초 단위로 결과물을 뽑아내지만, 정작 현장의 평가는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라는 원시적인 잣대에 머물러 있다. 일찍 출근해 눈도장을 찍고, 모두가 퇴근한 뒤에도 모니터 불빛을 켜두는 행위가 마치 고도의 성실함이나 탁월한 업무 능력인 양 소비되는 착시현상. 이 기괴한 연극은 도대체 언제쯤 막을 내릴 것인가.
근무시간과 성과가 비례할 것이라는 믿음은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력을 투입하던 시절에는 시간이 곧 생산량이었으나, 고도의 집중력과 창의적 판단이 요구되는 현대의 업무 환경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은 오히려 ‘사고의 경직’을 증명할 뿐이다. 8시간이면 끝낼 일을 12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그는 열정적인 것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에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혹은 그저 ‘열심히 하는 척’하는 정치적 기술에 능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본질이 거세된 근태 관리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이들의 의욕을 꺾고, 비효율의 늪에 안주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악순환을 낳는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성과를 지배하는 시대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 안에 핵심을 꿰뚫고 최적의 결과물을 도출한 뒤, 남은 시간을 자신의 영점 조절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근무시간을 트집 잡으며 조직의 기강을 세우려 드는 이들은, 사실 성과를 측정할 안목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꼴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없으니 눈에 보이는 물리적 수치인 ‘시간’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제는 성실함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밀도 있게 존재했는가. 2026년의 오피스는 이 차갑고도 명확한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비효율이라는 거대한 착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