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이 멈추기 전에야 비로소 '나'를 만났다.

내 심장이 내게 보내온 마지막 경고

by아련나래

2023년 12월의 겨울바람은 유독 살갗을 파고드는 칼날처럼 매서웠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친정엄마는 허리디스크 수술을 앞두고 계셨다. 아침 일찍 중학생인 두 아들과 남편을 챙겨 보낸 뒤, 나는 곧장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강남의 병원으로 향했다.


2주간 왕복 4시간이 걸려 오전부터 저녁까지, 병원과 집을 오가는 일상은 전쟁 같았다. 아이들에게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과 처갓집 일이라면 무심한 남편의 눈치를 봐가면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 정작 나를 무너뜨린 건 온라인 게임 일을 핑계로 전화 한 통 없는 형제들이었다.


엄마는 언니와 남동생에게는 "바쁘니 오지 마라"며

전화 한 통만으로도 고마워하는 배려의 화신이었지만, 나에게만은 끝없는 갈증을 쏟아내는 예외의 대상이었다.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병실 상황을 알면서도, 엄마는 내가 매 순간 곁에 없다는 이유로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곤 했다. 차가 막히는 강남길을 몇 시간씩 달려 온종일 곁을 지켜도, 엄마에게 나는 끝없는 목마름이었다.


"네가 결혼할 때 우리 집 기둥뿌리가 빠졌다", "나를 혼자 두고 시집을 가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이제 너랑 함께 살아야겠다." 엄마가 나를 향해 툭툭 내뱉는 말들 속에는 아내로, 엄마로, 맏며느리로 분투하는 나의 고단한 처지에 대한 배려는 단 한조각도 들어있지 않았다.



엄마는 평생 나를 편하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기적인 언니에게는 자유를 주고, 아들이라는 이유로 남동생에겐

무한한 지지를 보내면서도, 나에게만은 '뭐든 똑소리 나게 잘하니 항상 가족을 잘 챙겨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웠다.


결국 나는 학창 시절부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고, 서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조차 "굳이 결혼을 지금 해야 하냐"는 타박 속에 별다른 축복도, 지원도 없이 결혼식을 치렀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시댁에서도 가시밭길이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무조건 잘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모든 궂은일을 도맡았고, 맏며느리의 도리를 최선을 다해서 했지만 돌아오는 건 늘 차가운 당연함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몸이 비명을 질렀다.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조여 오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믿기 힘든 진단을 내렸다. "환자분은 선천성 심장 기형입니다. 그동안 힘든 부분이 있었을 텐데 전혀 모르셨나요?"


그 순간, 나는 절망 대신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 내가 이토록 숨 가쁘게 살아온 이유가 내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말 내 심장이 버겁다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병원을 걸어 나오며 지난 반평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정에서는 효녀로, 집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와 엄마로...


여태껏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느라 정작 주인이 빠진 내 삶은 얼마나 비참하고 처절했던가. 억눌린 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이제는 누구의 딸도, 며느리도 아닌 온전히 '나'로 살기로 했다. 나는 말과 행동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항상 나에게 "네가 잘해야 된다"는 시어머니께 "어머니, 식구라면 다 같이 잘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왜 항상 저만 잘해야 하나요?"라고 처음으로 반문했다.


나를 가족의 도구로 여기던 엄마에게도 "나는 더 이상 이 집안의 가장도, 엄마의 남편대행도 아니야 이제 각자의 인생을 좀 살자"며 가슴속 응어리를 쏟아냈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놓자 시댁이나 친정이나 부모님을 나눠 돌보기 시작했고, 나는 평생 처음으로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착한 딸'과 '완벽한 며느리'라는 프레임을 벗어던진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그동안의 긴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인정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나를 제일 먼저 챙기고 소중히 아껴주고 싶다.


그럼에도 지난 과거를 반추하는 이유는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지금의 나로 성장시킨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누군가의 기둥이 되느라 스스로 무너져가는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당신의 인생을 먼저 돌봐도 괞찮다는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문장을 건네고 싶다.




"나는 세상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 태어났다."

- 프리츠 펄스 (게슈탈트 심리학 창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