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바카라임을 짊어지다.
인연은 불교의 근본적인 인과율에서 비롯된 단어로,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의 법칙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운명'이라는 말보다 훨씬 깊고 구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씨앗)이 '연(환경)'을 만나 비로소 '과(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일이라는 것이 인연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단어를 보통 '사람과 사람 사이의 특별한 관계'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흔히 "악연(나쁜 인연)이다" 혹은 "좋은 인연이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인연은 좋고 나쁨을 떠나 모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짧은 만남이든 긴 만남이든, 우리 삶에 찾아온 모든 존재는 각자의 '인'과 '연'에 의해 맺어지며,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성장에 필요한 씨앗이나 거름이 되어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일을 하며 알게 된 후배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자주 얼굴도 보고 연락도 하지만, 개인적인 얘기는 지극히 사생활이라 가급적 물어보지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후배가 먼저 운을 띄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결혼에 관심도 없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 평상시 이 후배도 그러려니 속으로 짐작만 했었습니다. 평상시 몸이 약해 아파서 병원을 혼자 갈 때면 맘이 쓰이곤 했습니다.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안 계시고 형제들도 각자 살기 바쁜 게 현실이다 보니 제 입장에서 아끼는 후배라 아플 때 제일 신경이 쓰였습니다. 옆에 의지할 인생의 동반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말입니다.
하지만, 제 입장일 뿐이라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후배가 먼저 자기 얘기를 꺼냈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몇 년간 진지하게 만난 사람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후배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컸고 서로의 입장 차이로 결국 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사귀면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그 이후로 누군가를 만나서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게 지금도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바카라임이 있게 되는 거지.
우리는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어린 왕자 중에서-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상대의 삶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는 일입니다.
진정한 어른의 사랑은 기쁨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바카라임의 무게'를 견디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머무름의 이유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단순한 습관이나 집착이라면, 그것은 이미 건강한 인연의 범주를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 역시 나를 온전히 채워줄 수 없습니다.
나라는 온전한 개별자가 상대에게 투영되지 않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방법입니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관계는 비로소 구속이 아닌 '쉼터'가 됩니다.
맞지 않는 인연을 붙잡고 있는 것은, 실은 내 안의 결핍을 상대에게 투사하며 확인받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릅니다. 인연의 끝은 실패가 아니라, 서로의 소임을 다한 종착역입니다.
현실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을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그 안타까움은 사실 '바카라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서 옵니다.
사랑은 감정만으로 가능하지만, '함께 사는 삶'은 감정만으로 불가능합니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의 안위, 각자의 미래에 대한 계획 등 현실적인 사안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이별을 선택하는 순간은, 우리의 사랑이 현실의 바카라임을 이겨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미래에 대한 마지막 바카라임감일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세계의 발을 들이는 일이고, 바카라임진다는 것은 그 세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준비를 하는 일이다."
'상대에게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가장 고차원적인 배려이자 성숙한 어른이 지녀야 할 최후의 윤리적 보루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