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장편소설 『윗집 부부』를 읽고
"저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어요."
황보름 작가에게 이 말을 들은 것은 장편소설 <윗집 부부>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함께 글을 쓰는 모임에서 어떤 작품을 준비하느냐고 근황을 묻자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저출산만 이야기 하기엔 너무 광범위한 문제지만 그 문제를 통해 우리 슬롯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세대간의 소통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에는 그 말의 깊이를 미처 가늠하지 못했다. 저출산을 소재로 삼았다면 출산율과 인구 감소의 위기를 다룬 이야기이겠거니 지레짐작했다.
지난달 24일 바카라이 출간되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고 나니 짐작했던것 보다 이야기는따뜻했다. <윗집 부부>는 저출산을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젊은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곁을 지켜주는 이웃이 되어가는 어른의 이야기였다.
사람을 판단하는 일과 이해하는 일
이야기는 편의점에서 시작된다. 은퇴한 노인 경직은 무뚝뚝한 아르바이트생의 태도가 마땅찮다. 인사도 시원찮고 손님을 대하는 모습에도 성의가 없어 보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저럴까.' 기성세대의 입에서 흔히 흘러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무심해 보이던 청년에게도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있음을 천천히 보여준다. 경직은 차츰, 자신이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청춘의 시간을 마주한다.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소설은 첫 장면부터 보여준다.
어느 날 경직은 텔레비전에서 저출산에 관한 토론을 접하고 손녀 루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큰 불안일 수밖에 없다. 경직은 젊은 사람 한 명만이라도 아이를 낳도록 설득해 보자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된 것처럼 아니, 할 일이 생긴것처럼.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친구, 항구와의 대화 중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열 띈 어조로 이야기 한다.
"우리나라가 인구소멸국가로 낙인이 찍혔대잖아. 뭐라도 해야지."
그 말 속에는 손녀가 살아가야 할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여전히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어 하는 한 노인의 마음도 담겨 있는 듯하다. 그는 젊은 사람들을 설득하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짜고짜 딸 선지에게 전화해 결혼을 권하고, 아들에게는 둘째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사랑에서 시작된 말과 걱정은 자식들에게 부담으로 가 닿는다. 아들 대호가 "아빠도 지금 아빠 생각만 하시잖아요"라고 받아치는 순간, 경직의 선의는 정면으로 되돌아온다. 선지와의 대화는 경직의 생각을 한 단계 더 흔든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해지라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동물은 생존이 위협 받으면 번식하지 않아. 우선 내가 살아야 하니까."
저출산을 둘러싼 수많은 통계보다 이 한 문장이 가슴을 쿵 하고 때렸다. 경직에게 출산은 누구나 따라야 할 삶의 순리였지만, 선지에게 그것은 선택일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가 말하는 생존은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아니다. 결혼으로 삶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미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포함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 먼저 자기 삶부터 붙들어야 하는 현실을 경직은 이해하기 힘들어 한다.
굽은 사람들이 서로를 지키는 법
그런 경직이 윗집 부부 봄과 가을을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봄과 가을의 삶보다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지켜본 부부의 삶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식당을 꾸려가며 하루를 버티고, 돈과 노동과 불안정한 내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경직은 이제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에서 '왜 살아가는 일조차 이토록 힘든가'로 바뀌어 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조금씩 굽어 있다. 몸이 굽어가는 경직, 오랫동안 우울을 홀로 견딘 선지, 그리고 봄과 가을. 무뚝뚝한 말 뒤에 오래된 상처를 감춘 항구까지 누구도 반듯하고 완전하지 않다. 경직에게 딸 선지는 말한다.
"세상에 굽지 않은 사람 없어. 다 굽어 살아."
곧게 서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다. 사람은 상처와 피로 때문에 조금씩 휘고 굽는다. 그리고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키듯,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며 숲을 이룬다. 이 소설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힘은 완전함이 아니라, 저마다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데서 생겨난다.
경직의 친구 항구는 그런 공동체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따뜻한 말만 건네는 사람이 아니다. 봄과 가을의 음식에는 "딱 집밥 같네"라며 진심을 전하지만, "장사는 천 원 한 장, 만 원 한 장 더 버는 일이야"라고 냉정하게 조언한다.
좋은 마음만으로는 가게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월세가 밀린 이전의 식당을 성급히 정리하지 않고,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의 자리를 그대로 두고 기다렸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살아온 시간을 알게 되면 쉽게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항구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경직 역시 더는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우울증을 오랫동안 혼자 견뎌온 딸에게 왜 이제야 말했느냐고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도움을 청해도 되는 사람으로 자신을 내어놓는다.
"힘든 일 있으면 힘들다고 말도 하면서 살아야지. 너라고 살 만하기만 할까. 아직 엄마 아빠 안 죽었어. 우리도 널 지켜줄 수 있어."
그리고 마침내 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네가 제일 중요해. 아빠 말 잘 기억해. 네가 제일 중요해."
이 장면은 경직의 변화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나라의 소멸과 손녀의 미래를 걱정하던 사람이 이제 눈앞의 한 생명을 먼저 바라본다. 결혼과 출산을 권하던 아버지가 "네 삶이 먼저다"라고 말한다. 사랑을 명분으로 상대의 삶을 이끌려 했던 사람이 비로소 사랑이란 곁에 머물며 손을 잡아주는 일임을 깨닫는다.
공동체가 건네는 오래된 약속
봄과 가을에게 아이가 생긴 뒤에도 두 사람의 선택은 순탄하지 않다. 임신은 기쁨인 동시에 두려움이고, 출산은 사랑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경직과 항구가 있다.
경직은 더 이상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어날 아이와 부모의 삶을 함께 지켜주는 이웃이 된다. 항구도 사무실 한쪽에 산이가 머물 작은 자리를 만들어준다. 산이는 부모 두 사람의 결심만으로 세상에 온 아이가 아니다. 누군가가 "너희를 혼자 두지 않겠다"고 말해주었기에 무사히 맞이할 수 있었던 생명이다.
그래서 <윗집 부부>가 던지는 질문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를 낳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살아갈 만한 세상을 건네고 있는가. 아이가 태어나면 함께 키우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한 사람이 쓰러질 때 곁에 남아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바카라을 덮으며 나는 손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는 부모의 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주는 이웃과 길을 건너게 해주는 어른, 부모가 지쳤을 때 잠시 손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경직이 있었고 항구가 있었듯, 우리 슬롯도 아이들에게 그런 이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출산은 이 소설의 출발점이었을 뿐이다. 작품이 끝내 다다른 곳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었다. <윗집 부부>는 완전한 사람들이 세상을 지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마다 굽은 사람들이 서로의 굽은 자리를 알아보고 기대어 살아가는 이야기다.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오래된 진실, 그것이 이 소설이 내게 남긴 가장 따뜻한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