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함이 나를 후려치는 날

by눈썹달

깊이 후회했다.

그 친구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블랙홀에 빠진 듯 빙빙 돌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린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나는 또 그를 대면했고 블랙홀에 자진해서 뛰어든 셈이 되었다.


그 친구의 불평 섞인 질문에 확실한 대답, 두 번 얘기하지 않게 만들 대답이 준비된 것도 아니었는데 급한 성격이 쓸데없이 발휘되었다. 생각보다 행동과 말이 앞서면서 이번에도 내가 졌다. 내 약한 마음을 자극하는 말들에, 나는 끝까지 감추었어야 했던 속마음을 내비치고 말았다. 고해성사 수준은 피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지만, 조금만 각도를 틀면 내가 내뱉은 말이 나를 향한 화살이 될 수 있는 언행을 한 것은 분명했다. (나는 이 사실도 내 얘기를 듣고 남편이 해 준 말을 통해 알았다. 결국 너 바보니...? 소리를 들었다.)


그는 역지사지가 안 되는 친구다.

왜 자신이 그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본인 '나름대로'가 타인에게 다 인정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고 그가 모르겠다는 것에 대해 내가 얘기를 하면 다시 늘어지는 자신만의 말들... 그 말에 내 말을 얹으면 내 말에 본인의 같은 말을 또 얹는다. 어느새 서로가 했던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가 문제인지 내가 문제인지 소통을 하고 있는데 불통인 느낌을 받는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 안에서 뭔가 자꾸 이해시킬 만한 말들을 찾고 찾다가 속을 내비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볼 의지가 그 친구에게는 별로 없었다. 언제나 자신이 중심에 있었다. 반면 나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나를 돌아보는 타입이라 그가 힘든 얘기를 할 때면 늘 내가 열세에 놓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 쳇바퀴 속을 신나게 돌다 나와 아직도 어지러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내 성격에 쥐약 같은 캐릭터를 만날 때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감정 약자인 나에게 갈등과 불협화음은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한다. 오랜 온라인 게임생활을 통해 조직에 적합하게 많이 변화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취약점만큼은 한결같은 이유가 뭘까. 나 정도 슬롯생활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게 본인의 성격인 것처럼 포커페이스, 속내 감추기, 온라인 게임에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본능처럼 알게 된다는데, 나는 어디에 어떤 결핍이 있길래 그것이 이토록 학습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면 타인도 내가 말한 그대로 나를 생각해줄 것이라는 혼자만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너무 많이, 너무 쉽게 내 마음을 내비쳤다. 고쳐지지 않는 이 미숙함이 나를 후려친다. 바보 같았던 나의 모습, 내뱉은 말들과 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p.s. 최근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에 겪었던 일로 써놓았던 글인데, 올해는 반복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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