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滿洲事變, 1931)은
일본이 중국 동북부인 만주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일본에서는 당시 만주사변,
중국에서는 흔히 9·18사변(九一八事變)이라고
부릅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만주 봉천
(현재의 선양) 근처
류탸오후(柳条湖)에서 남만주철도의 선로 일부를
폭파한 뒤 이를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구실로 관동군이 중국군을 공격하면서
만주 전역을 빠르게 점령했습니다.
이 사건을 류탸오후 사건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작전이 일본 정부의 정식 명령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관동군이 상당 부분 독단적으로
확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결국 군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고 점령을 사실상 승인했습니다.
당시 중국의 장제스 정부는 공산당과의 내전 문제도
있었고 일본과의 전면전을 피하려 했기 때문에
적극적인 군사 대응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1932년 만주에
만주국(滿洲國)이라는 괴뢰국가를 세우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溥儀)를 국가원수로
내세웠습니다.
실제 권력은 일본 관동군이 장악했습니다.
국제연맹은 리튼 조사단을 파견해 사건을 조사했고,
만주국을 일본의 정당한 자위행위의 결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일본은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1933년 국제연맹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흐름을 간단히 보면:
러일전쟁(1904~05)
일본의 남만주철도 권익 확대
1931 만주사변
1932 만주국 수립
1933 일본 국제연맹 탈퇴
1937 중일전쟁 전면화
그래서 만주사변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라기보다,
일본 군국주의의 팽창이 본격화되고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만주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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