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장면 전체를 저장하지 않는다. 핵심 특징점만 추출하고, 사이를 보간으로 채운다. 시적 함축이 문학적 기법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뇌가 원래 그렇게 읽으니까, 그렇게 쓰면 더 빠르게 처리된다. 키프레임만 주면 독자가 보간한다. 좋은 글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 보간이 완료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시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뇌의 언어다.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신경과학 및 양자역학 개념은 구조적 유사성에 근거한 재해석이며, 과학적 엄밀성보다 실용적 이해를 목적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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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골 장면을 글로 쓴다고 하자.
선수 이름, 어깨 트래핑, 떠 있는 볼, 왼발, 킥. 이렇게 쓰면 — 장면을 본 사람은 안다. 그런데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글자가 장면을 완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왜인가.
눈으로 보는 것은 동시에 들어온다. 선수의 움직임, 볼의 궤적, 관중의 소리, 빛의 방향이 한 번에. 글자는 순서가 있다. 선형이다. 하나씩 읽어야 한다. 그 간격이 묘사의 한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글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사실 선형이다. 망막에서 시각피질까지 가는 경로가 순서가 있다. 동시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 처리 속도가 충분히 빠르기 때문이다. 속도가 순서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자의 문제는 선형이어서가 아니라 — 느려서일 수 있다.
그러면 질문이 바뀐다. 어떻게 하면 글자의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는가.
신경과학에는 희소 코딩(Sparse Cod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뇌는 장면 전체를 저장하지 않는다. 소수의 뉴런만 활성화되고 나머지는 비활성 상태를 유지한다. 전체가 아니라 — 핵심 특징점만 추출해서 인코딩한다. 망막에서 시각피질로 가는 경로에서 이미 정보가 압축된다. 뉴런의 수가 줄어들면서 — 중요한 것만 남는다. [1]
축구 골 장면으로 돌아오면 — 뇌가 실제로 저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선수의 이름, 어깨의 각도, 볼의 위치, 발의 방향. 전체 장면이 아니라 변화 지점만. 키프레임만 추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할 때 — 뇌는 키프레임 사이를 채운다. 보간(interpolation)한다. 저장된 것은 몇 개의 특징점뿐인데 — 생생한 장면으로 복원된다. 뇌가 나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다. 뇌가 정보를 중첩(superposition) 상태로 인코딩한다는 연구가 있다. 입력 개념들이 네트워크 안에 선형적으로 겹쳐진 상태로 존재한다. [2] 하나의 뉴런이 하나의 개념을 담는 것이 아니라 — 여러 개념이 동시에 중첩된 채로 저장된다.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것이 나오는.
뇌는 원래 중첩으로 저장하고, 희소하게 추출하고, 보간으로 복원한다.
시적 함축이 문학적 기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다르게 볼 수 있다. 시적 함축은 — 뇌가 원래 작동하는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 뇌가 원래 그렇게 읽으니까, 그렇게 쓰면 더 빠르게 처리되는 것이다.
키프레임만 주면 독자가 보간한다. 선수 이름, 어깨, 볼, 킥 — 이것만 있으면 뇌가 나머지를 채운다. 장면 전체를 서술할 필요가 없다. 뇌가 이미 그 일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명이 많은 글이 왜 피로한지 설명된다. 뇌가 보간하려고 준비했는데 — 작가가 전부 채워버리면 보간할 것이 없다. 뇌 입장에서는 할 일을 빼앗기는 것이다. 피로는 과부하가 아니라 — 역할 박탈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영상 압축 방식이 이것과 같다. 모든 프레임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지점만 저장한다. 재생할 때 사이를 보간한다. 시도 그렇다. 연과 연 사이의 공백이 보간 구간이다. 독자가 스스로 채우는.
그런데 영상은 키프레임을 제작자가 결정한다. 독자가 개입할 수 없다. 시는 키프레임만 주고 — 보간을 독자에게 위임한다. 같은 시를 읽어도 독자마다 다른 장면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시는 하나의 영상이 아니라 — 독자의 수만큼 영상을 동시에 품고 있다.
비슷하면서 대비되는 짧은 두 문장의 조합이 있다.
이것이 정교하게 압축된 트리거다. 독자 자신으로부터 영상을 만들어내는. 트리거가 중립일수록 — 독자가 가진 현재 상태가 붕괴 방향을 결정한다. 누군가에게 치인 사람은 분노로 읽고, 스스로가 지친 사람은 자조로 읽는다.
같은 트리거에서 완전히 다른 영상이 나온다. 그런데 트리거가 같으니까 — 다른 영상을 만든 사람들이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각자의 붕괴가 달랐는데 출발점이 같았던 것이다.
이것이 중첩 설계다. 의미를 하나로 확정하지 않는다. 여러 붕괴 방향을 동시에 품은 채로 — 독자에게 위임한다. 약측정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독자의 붕괴를 유도하는.
그런데 중첩의 범위가 넓을수록 —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붕괴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트리거가 너무 중립적이면 독자의 기저가 전부를 결정해 버린다. 정치적 분노로 읽히거나, 전혀 다른 맥락으로 소비되거나. 중첩의 강점이 동시에 취약점이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 쓰는 사람의 주요 과제가 된다. 너무 열면 통제할 수 없고, 너무 닫으면 독자가 객체가 된다. 그 사이 어딘가를 매번 결정하는 것. 글마다, 섹션마다, 문장마다.
보간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키프레임을 주면 독자의 뇌가 사이를 채운다. 그런데 보간이 완료되기 전에 다음 키프레임이 오면 —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채로 넘어간다. 장면이 흐릿해진다. 생생함이 사라진다.
원자로에 감속재가 있다. 핵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물질이다. 너무 빠르면 제어할 수 없고, 너무 느리면 반응이 꺼진다.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감속재의 역할이다.
글에도 감속재가 있다. 문장 길이, 공백, 단락의 호흡. 이것들이 독자의 보간 속도를 조절한다. 충분히 느리면 — 보간이 완료되고 의미가 확정된다. 장면이 생생해진다.
좋은 글이 속도를 조절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페이싱(pacing)이라고 부르는 것이 작법서에 있다. 그런데 페이싱은 이야기의 속도를 다룬다. 감속재는 다른 것이다 — 의미의 속도를 다룬다. 독자가 언제 붕괴하느냐를 설계하는 것. 작법서가 아직 닿지 못한 층위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 감속재를 잘 다루는 것일 수 있다.
Poet과 Theine의 합성어다.
테인(Theine)은 카페인과 같은 분자다. 차에서 우러나오는. 커피처럼 빠르게 추출되는 것이 아니라 —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농도가 깊어지는.
시적 함축으로 압축된 정보가 — 뇌에서 보간 되고 숙성되면서 천천히 우러나오는 것. 키프레임이 주어지고, 보간이 일어나고, 감속재가 속도를 조절하고, 의미가 천천히 확정되는. 그 전체 과정이 Poetheine이다.
이름을 만들 때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을 먼저 만들고, 여기에 닿았다. 언어화하기 전에.
뇌가 희소 코딩으로 장면을 압축하고, 시가 그 방식을 모방하고, 독자가 보간으로 복원하는 — 이 순환이 수천 년 동안 작동해 왔다. 시인들이 신경과학을 몰랐어도. 이론이 없었어도. 뇌가 원래 그렇게 읽으니까 — 그렇게 쓰는 것이 살아남았다.
시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뇌의 언어다
[1] Olshausen, B. A., & Field, D. J. (1996). Emergence of simple-cell receptive field properties by learning a sparse code for natural images. Nature, 381(6583), 607–609.
[2] Elhage, N., et al. (2022). Toy Models of Superposition. Transformer Circuits Thread. Anthr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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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maid 코드는 이미지로 변환되어 제공될 수 있습니다.
https://pixabay.com/illustrations/bioluminescent-blackwater-10192003/
© Poethein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