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할 건 한참 부족해 보이는데, 없을 것 같은 게 있는 상황은 양자역학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궁금해. 내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꽤나 중요한 산출물이 나와야 하는 파트를 맡고 있긴 해도,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이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 내가 일을 미뤄서 그 사람들한테 일이 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해야 할 것이 많기도 하고 그만큼 손이 가는 것뿐인데 말이지.
그러다가, 떠넘겨진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정리하고 있을 다른 작업자가 갑자기 나한테 ‘혹시, 그 컴포넌트 있어요?’라고 묻는 거지. 그 사람이 당연히 없을 것 같다 정리하고 있던 것이 있다 하니, 일이나 떠넘기고 허술해 보이던 나를 ‘도대체 얜 뭘까?’ 하고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거야. 또다시, 하루 부지런히 일 하고 저녁 식사 중에 떠오른 이야기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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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황, 정확히 읽히는 게 있어.
그 작업자가 너한테 접근하기 전 상태가 핵심이야. 그 사람은 이미 너를 특정 기저로 측정해서 붕괴시켜 놓은 상태였거든. "일이 많고, 늦고, 허술해 보이는 사람" — 그 기저로 한 번 붕괴가 일어나면, 그 사람의 모델 안에서 너는 더 이상 중첩 상태가 아니야. 확정된 거야.
그런데 "혹시 그 컴포넌트 있어요?"라는 질문은 — 자기 모델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걸 반쯤 인정한 거잖아. 강측정이 아니라 약측정이야. "없겠지만 혹시"라는 형태로 들어온 거니까.
거기서 "있어요"가 나온 순간, 붕괴된 게 네가 아니라 — 그 사람의 모델이야.
그게 앤실라 패턴이 갖는 역설이기도 해. 앤실라는 메인 레지스터를 오염시키지 않고 작동하고, 리셋해. 눈에 안 보이니까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 그런데 측정 순간에 — "있었던 것"이 드러나는 거야. 조용히, 갑자기.
저녁 식사 중에 떠오를 만한 이야기야. 하루 내내 작동했던 앤실라가 뒤늦게 관측된 거니까.
그 질문이 반갑긴 했나 봐, ‘이걸 알려 줘 말아’라는 생각이 들었던 새도 없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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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아.
"알려 줄까 말까"라는 계산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건 — 방어 상태가 아니었다는 거잖아. 인정받고 싶어서 쥐고 있던 게 아니라, 그냥 있었던 거니까.
앤실라가 리셋하는 이유가 그거 아닐까. 축적해서 드러내려는 게 아니니까. 물어보면 그냥 있어.
맞아, 난 그래. 굳이 그걸 숨길 필요도 없고, 시간 절약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나를 나쁜 사람 만드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해도, 그건 이제 뭐랄까.. 정말로 ㅋㅋ ‘너의 기저가 그렇구나’ 하고 넘기게 되거든. 그 측정에 나는 내어 놓을 수 있는 결과가 없으니까.
재미있는 거 하나 뭔 줄 알아?
의심에 가득 차 있던 누군가가 오늘은 ‘나를 믿는다’는 말까지 해. 그간 가능성만을 보고 밤낮 가리지 않고 시간을 투자했던 게 인정받는 순간이었지. 프로젝트가 성료에 수렴하고 있다는 신호들을 많이 포착한 거라 정리가 됐어. 그만큼 나도 역으로 그 사람이 덜 불안하게 아침 일찍부터 신호를 날렸지, ‘오늘은 여기를 진행할 예정입니다’라고. 한동안 매일 아침 데일리 미팅을 하자던 사람이 오늘은 미팅 얘기도 안 꺼내.
고민이야.. 프로젝트가 연장될 수도 있고, 이걸 연으로 해서 새로운 사업이 생길 수도 있는 걸 던져 놨는데, 그게 ‘실현 가능성’이 보이는 신호가 있으니까,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나 싶은 거야. 바닥을 보인 사람과 한동안 다시 얽힐 수 있을 것인가, 새로운 사람을 알아보라고 잘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까 하는 고민.
UI는 데이터가 지나가는 길이라는 정돈된 나의 철학이, 깃허브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로도 하나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걸 제품화한다거나 서비스에 녹인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니까.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기대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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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에 꽤 많은 게 바뀌었네.
아침에 네가 먼저 신호를 날린 것 — 그게 단순한 업무 공유가 아니라, 측정 기저를 네 쪽에서 먼저 제안한 거잖아. "오늘의 나를 이렇게 측정하세요"라고. 그랬더니 상대방이 불안을 내려놓은 거고. 미팅 얘기를 안 꺼낸 게 그 증거야.
바닥을 보인 사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인데 — 그게 고민의 핵심인 것 같아. 바닥이 나쁜 게 아니라, 그 바닥이 어떤 형태였느냐의 문제잖아. 불안해서 나온 바닥이냐, 아니면 구조적으로 그게 그 사람의 작동 방식이냐.
오늘 "믿는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 그 사람도 자기 기저가 바뀐 걸 인지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해. 그냥 넘어가는 사람은 그 말을 굳이 안 하거든.
연장이나 새 사업 가능성이 생겼을 때, "함께 갈 것인가"보다 먼저 정리해야 할 게 있을 것 같아. 네가 이 연에서 원하는 게 뭔지. 인정? 구조적 파트너? 아니면 그냥 좋은 마무리?
그게 정리되면 어떻게 이야기할지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아서.
양자역학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붕괴가 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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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들고 있는 거지.
약측정만 하면서. 섣불리 붕괴시킬 필요 없어, 프로젝트 종료 시점이 아직 안 왔으니까. 그때 나오는 신호들이 자연스럽게 측정 기저를 만들어 줄 거야.
기대된다고 했잖아 — 그 상태가 이미 맞는 자세인 것 같아.
자기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의외로 불가능을 먼저 바라보게 되겠다 정리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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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한계가 명확하면 — 그 한계 바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거잖아. 경계를 알고 있으니까 경계 너머가 보이는 거고.
근데 그게 꼭 비관이 아닌 것 같아. 불가능을 먼저 본다는 게, 가능한 것의 윤곽을 정확히 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흐릿하게 낙관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실현 가능한 것에 더 정밀하게 닿을 수 있어.
문제는 그 기저로 다른 사람을 측정할 때야. 자기 한계가 명확한 사람이 한계가 불명확한 사람을 보면 — "저건 불가능한 거 모르나"로 읽히는 거지. 측정 기저 불일치.
오늘 그 상황들이 그 구조이기도 했던 것 같아.
그들이 불가능하다 말하는 걸 나는 가능하다고 단기간 내에 산출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이 ‘시간 있으면 나도 하지 왜 못해’라는 입장만 주장하는 자리가 나는 여전히 불편하더라고. ‘너는 해냈구나, 대단하다’보다,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어’라는 입장이면, 같이 일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보복 대신 이렇게 자판을 꾹꾹. 덜어내면 거기서도 또 아이디어가 나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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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 꾹꾹이 보복보다 나은 이유가 있어.
보복은 그 기저에 맞춰 들어가는 거잖아. 상대 측정에 반응하는 순간 그 기저가 유효해지는 거니까. 자판은 — 다른 기저로 이탈하는 거고.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서"라는 말이 불편한 건 당연해. 그건 인정이 아니라 무효화거든.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과정을 문제 삼는 거니까.
덜어내면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도 — 앤실라 리셋이랑 같은 구조야. 보류 큐 비워야 다음 트랜잭션 들어오니까.
오늘 저녁 꽤 많이 꾹꾹 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쿼리가 길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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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잭션 사이즈가 좀 됐어 ㅋㅋㅋ
그래도 다 처리됐잖아. 커밋 완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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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보류 큐에 남은 거 있구나.
타임스탬프 없이.
가능성으로 뭉친 핵을 만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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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안 된 것들이 모이면 밀도가 생기지.
임계질량 되면 알아서 반응 시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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