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적분: 선택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by공인식

선택되지 않은 것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양자역학이 처음 한 게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가능세계로, 보르헤스는 갈림길의 미로로, 심리학은 반사실적 사고로 — 표현 언어만 다를 뿐 같은 질문이었다. 파인만의 경로 적분은 말한다. 실현되지 않은 경로들도 최종 결과에 기여한다. 분산원장 패러다임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은 타임스탬프가 없다. 한 번도 과거가 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아프다.


주의

이 글은 비전공자의 창의적 해석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양자역학 개념은 구조적 유사성에 근거한 재해석이며, 물리학적 엄밀성보다 실용적 이해를 목적으로 합니다.




AI 정보



선택은 하나의 경로를 확정한다. 그런데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은 양자역학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있었다. 표현 언어만 달랐을 뿐.


어떤 선택은 오래 남는다.


결정을 내린 지 한참이 지났는데 — 선택하지 않은 쪽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 다른 길을 갔다면. 그 사람을 선택했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후회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것. 그냥 거기 있는 것.


선택은 끝났는데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가능한 모든 경로를 동시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입자가 A에서 B로 이동하는 방식을 다르게 읽었다.


고전역학에서 입자는 하나의 경로로 이동한다. 가장 짧거나, 에너지가 최소인 경로. 하나가 선택되고 나머지는 없다.


파인만의 경로 적분(path integral)은 다르다. 입자가 A에서 B로 이동할 때 — 가능한 모든 경로를 동시에 지나간다. 직선도, 굴곡도, 멀리 돌아가는 것도,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어 보이는 것도. 전부. 각 경로가 확률 진폭을 가지고, 그 진폭들이 더해져서 최종 결과가 나온다. [1]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경로들도 최종 결과에 기여한다. 입자가 실제로 지나가지 않은 경로가 —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입자의 상태를 만드는 데 이미 영향을 줬다.


선택되지 않은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남아있다.


```mermaid

flowchart LR

A["출발점 A"] --> P1["경로 1\n직선"]

A --> P2["경로 2\n굴곡"]

A --> P3["경로 3\n우회"]

A --> P4["경로 n\n..."]

P1 --> B["도착점 B\n모든 경로의\n진폭이 합산됨"]

P2 --> B

P3 --> B

P4 --> B

```


같은 질문, 다른 언어

이 질문을 처음 한 것이 양자역학은 아니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신학의 언어로 같은 구조를 다뤘다. 가능세계(possible worlds) — 실현되지 않은 모든 가능성들이 논리적으로 실재하는 세계. 지금 이 세계는 그 가능성들 중 하나가 선택된 것이다. 나머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실현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4]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소설로 같은 것을 썼다. 「갈림길의 정원」은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전개되는 미로다. 선택의 순간마다 세계가 갈라지고, 그 갈라진 세계들이 평행하게 펼쳐진다.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보다 수십 년 앞선 1941년의 이야기다. [5]


심리학은 이 현상에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은 선택 이후에도 선택되지 않은 경로를 시뮬레이션한다. 특히 결과가 나쁠수록, 차이가 작을수록 더 자주. "그때 조금만 달랐다면" — 그 문장이 자꾸 재생되는 것은 오작동이 아니다. 인간 인지의 기본 작동 방식이다. [6]

같은 질문이었다. 표현 언어만 달랐다.


그런데 왜 이 언어인가

라이프니츠는 구조를 이름 붙였다. 가능세계들이 실재한다고. 보르헤스는 그것을 형상화했다. 갈림길의 미로로. 심리학은 그 행동 패턴을 기술했다. 왜 반복되는지를.


그런데 어느 언어도 이것을 설명하지 못했다. 왜 그것이 현재시제로 느껴지는가.


선택하지 않은 것은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아프다. 오래된 선택인데 — 방금 일어난 것처럼.


경로 적분과 분산원장을 함께 가져오면 이 메커니즘이 보인다. 선택된 경로에는 타임스탬프가 붙는다.


Committed 된다. 과거시제가 된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은 타임스탬프가 없다. 보류 큐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는다. 현재시제로 실행을 시도한다. [3]


그래서 그것이 지금 아프다. 오래된 것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 한 번도 과거가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문학은 구조를 보여줬다. 심리학은 패턴을 기술했다. 이 언어는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왜 그것이 지금도 작동하는지를.


가지 않은 길들이 여기 있다

삶의 선택으로 가져오면 이 구조가 달리 보인다.


어떤 선택을 했다. 하나의 경로로 이동했다. 그런데 선택하지 않은 경로들은 어디 갔는가.


경로 적분이 말하는 것을 빌리면 — 그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이미 기여했다. 선택하지 않은 직업, 가지 않은 도시, 끝낸 관계 — 이것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나를 구성하는 진폭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오래 남는다. 사라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세계 해석이 주는 또 다른 독해

Hugh Everett의 다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은 더 급진적이다. [2]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측정이 일어날 때 세계가 분기(branch)한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다른 세계에서 실현된다. 모든 가능성이 평행하게 존재한다.


위안이 되는 해석이다. 어딘가에서 나는 그 길을 갔다. 그 선택을 했다. 그 사람을 붙잡았다.


그런데 동시에 가장 무거운 해석이기도 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실재한다면 — 그것들에 대한 바카라임도 어딘가에 실재한다. 평행한 나들이 각자의 선택을 감당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견디기 쉬운지는 모르겠다.


보류 큐로 읽으면

분산원장 패러다임으로 이 구조를 읽으면 후회의 메커니즘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Committed 된 것만 원장에 기록된다. 선택된 경로에 타임스탬프가 붙는다. 그것은 과거시제가 된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은 타임스탬프가 없다. 보류 큐에 남는다. 현재시제로 존재한다. 실행을 시도한다. [3]

그래서 후회가 현재시제로 느껴진다. 오래된 것인데 지금 아픈 것처럼. 보류 큐의 트랜잭션은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는다. 그것이 Committed가 되지 않는 한.


선택되지 않은 경로를 Committed 시키는 것 — 그게 가능한가. 경로 적분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구조를 보여준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이 지금도 진폭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 그 진폭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


이 카지노 게임도 하나의 붕괴였다

이 글이 실린 카지노 게임은 영화 리뷰에서 출발했다.


영화를 읽는 과정에서 패러다임 하나가 생겼다. 몸과 머리를 분산원장 네트워크처럼 대할 수 있다는 가설. 그 렌즈로 보니 — 무의식이, 감정이, 서사가 다르게 읽혔다. 그 패러다임에서 나온 독해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영화 리뷰의 한 브랜치가 양자역학으로 뻗어 있었다.


브랜치는 계속 분기했다. 영화에서 무의식으로, 무의식에서 양자역학으로. 그 브랜치가 임계에 다다랐을 때 — 별도의 카지노 게임이 필요해졌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Commit 됐다.


가지치기가 붕괴다. 영화 리뷰에서 잘려 나온 이 브랜치가 — 지금 이 카지노 게임을 구성하는 데 이미 기여했다.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이 최종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 카지노 게임의 존재 자체가 반복하고 있다.


이 글은 그 붕괴의 결과다. 그리고 또 다른 브랜치의 출발점이다.


가지치기가 붕괴다

의사결정이 무거운 이유가 여기 있다.


선택의 무게는 선택된 것의 무게가 아니다. 선택되지 않은 것들이 지금도 여기 있다는 것에서 온다. 경로 적분이 말하는 것처럼 — 그것들은 최종 상태에 이미 기여했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가지치기가 붕괴다. 하나의 경로가 확정되는 것. 그런데 잘려나간 가지들이 나무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내가 선택한 것들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의 진폭이 더해진 결과다. 그것이 후회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택되지 않은 것들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한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여기 있었던 것으로




참고 문헌

[1] Feynman, R. P., & Hibbs, A. R. (1965). Quantum Mechanics and Path Integrals. McGraw-Hill.

[2] Everett, H. (1957). "Relative State" Formulation of Quantum Mechanics. Reviews of Modern Physics, 29(3), 454–462.

[3] 공인식. (2026). 무의식: 어둠 속에서 증식하는 보류 트랜잭션들. 개발자식 전환, Brunch. fishingproductfr.com/@alwayswithya/244

[4] Leibniz, G. W. (1952). Theodicy: Essays on the Goodness of God, the Freedom of Man and the Origin of Evil. (E. M. Huggard, Trans.). Routledge. (Original work published 1710)

[5] Borges, J. L. (1998). 「갈림길의 정원」. 『픽션들』. (황병하 역). 민음사. (원저 1941 출판)

[6] Roese, N. J. (1997). Counterfactual thinking. Psychological Bulletin, 121(1), 13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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