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짓던 토종쌀
백석은 조선도품종일람에 경성부, 그러니까 서울에서 재배한 벼로 나온다. 서울 이외에는 영춘군(현재는 충북 단양인데 영월, 원주 등의 일부였던 적도 있는 충북-강원 접경지역)에서 재배한 기록이 있다.
서울도 7~80년대까지만 해도 벼농사를 제법 지었다. 화곡동(禾谷洞), 볏골 이름이 곧 벼농사를 많이 지었던 곳을 뜻한다. 이름뿐 아니라, 서울올림픽 치른다고 김포공항 확장하기 전에는 이 동네가 논이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아직도 이 일대에는 논이 남아있어서 '경복궁벼'라는 브랜드로 소량의 벼가 수확되고 있고, 그 쌀로 술을 빚는 양조장도 있다. 그 외에도 지금의 강남에서 잠실, 송파 일대는 경기도 광주군이었던 등등 서울에서도 벼농사는 먼 일이 결코 아니었다. 어쟀든 공업화가 되기 전까지는 쌀이 식량이고, 화폐고, 문화이고 상징이기도 했으니 벼농사 짓는 곳이 도시로부터 멀 이유가 없었다.
이 서울의 쌀을 받아들고 천상 서울나기인 나는 약간의 감회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옛날의 서울쌀, 경기미는 어떤 맛이었을까?
쌀알은 크기가 많이 크진 않지만 제법 통통한 편이다. 심복백의 크기가 크다. 이 쌀도 투명도가 균질하지 않아서 요즘의 무슨 기준으론 높은 등급 받기가 글렀다만, 나로선 오히려 그게 반갑다. 평소의 우보농장 스타일보단 좀 더 도정이 된 쌀로 보인다.
쌀알이 그래도 좀 크니까 물은 평소보다 살짝 더 받아서 압력솥에 밥을 지어본다.
왕년의 서울(경기)쌀이라니, 경기미 유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이 쌀은 맛이 얼마나 좋을까 기대가 진진이다.
밥은 부러 그렇게 지은 것도 있지만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쌀은 은은한 단맛이 일품인데다가 씹는 탄력이 화도에 버금간다. 한마디로 식감과 맛을 동시에 보장하는 쌀이다.
밥의 특성을 예상하고 잘 끌어낸 오늘의 밥짓기는 85점. 다음에 짓는다면 좀 더 단단하게 지어볼 것 같다(취향).
경기미라고 하면 추청(아끼바레), 고시히카리 같은 품종이 떠오르고 최근엔 일본쌀 쓰기 싫다고 개량한 참드림이 대세품종. 이 세 품종은 밥맛에도 상당히 공통점이 있는데 대체로 부드러우면서도 식감은 있는 편이라는 것. 백석과도 공통점이 있다.
세 품종 다 향이 강조되는 편은 아닌데, 백석은 토종쌀 특유의 고소한 향이 다른 세 품종에 비해 강해서 밥지을 때 은은한 향이 비치는 정도다. 새삼스런 얘기지만 외래종, 개량종보단 토종의 품질이 확실히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고흥에서 김양식 하시는 분과 연락이 되어 쌀과 바꿔먹기로 하고 받은 김이다. 김이 참 촘촘한데 두께는 얇은 느낌이고 은은한 단맛에, 딱 눈을 감아야 느껴질 정도의 바다향이 좋다. 이 기름진 쌀밥을 고운 김에 싸서 먹으니 세상 호강스런 밥이다. 둘이서 400그람 쌀로 한 밥을 한 끼에 해치워 버렸다.
이런 것이 바로 산해진미, 진시절미 (山海珍味, 眞是絶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