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로 읽는 커피문명
커피나무는 인간을 위해 열매를 맺지 않았고, 카페인 역시 인간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존재하게 된 물질이 아니다. 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과정 안에서 진화했고, 인간은 그 열매를 발견한 뒤 자신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피엔스는 자연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대상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그 의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경험은 제도와 시장, 문화와 관습으로 확장된다.
자연이 만든 것은 커피나무와 열매였지만, 우리가 오늘날 ‘커피’라고 부르는 거대한 세계는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구성한 것이다.
사람은 커피를 각성의 음료로 받아들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매개로 사용했으며, 커피를 함께 마시는 장소를 정치와 사업, 문학과 예술의 공간으로 발전시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에는 산지와 품종, 취향과 계층, 희소성과 윤리, 생산자의 이름과 브랜드의 철학까지 여러 층위의 의미가 더해졌다.
오늘날 우리가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식물이 만들어낸 물질만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다. 자연의 산물 위에 인간이 오랜 시간 쌓아온 언어와 제도, 관계와 욕망까지 함께 경험하는 일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었던 중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로, 직접 만질 수 없는 공동의 질서와 이야기를 함께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강조한다. 화폐의 가치는 종이 자체에만 있지 않고, 기업 역시 건물과 직원의 단순한 물리적 합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국가와 제도 또한 많은 사람이 그 질서를 인정하고 행동할 때 슬롯적 힘을 갖는다.
커피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향과 맛이라는 물질적 경험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맛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할지, 어떤 커피를 특별하다고 부를지, 누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어떤 기준으로 품질을 구분할지는 인간이 만든 슬롯적 질서에 속한다.
우리는 커피를 단순한 갈색 액체로 마시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아침의 시작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집중을 위한 습관이며, 또 다른 사람에게는 취향과 정체성, 관계와 환대, 윤리적 소비를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커피의 물질적 기반은 자연에서 시작했지만, 커피가 가진 슬롯적 의미는 사피엔스가 만들어왔다.
자연 속에는 스스로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선언하는 커피나무가 없으며, 싱글오리진과 마이크로랏, 경매 커피와 챔피언십 커피 같은 개념도 자연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품질의 기준을 만들고, 산지와 농장, 품종과 가공방식을 기록하며, 향미를 평가하고 가격을 부여할 때 비로소 이러한 구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생산자와 수입업자, 로스터와 바리스타, 소비자가 그 기준을 어느 정도 공유하면서 그것은 실제 시장을 움직이는 현실이 된다.
여기서 ‘이야기’라는 말을 허구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슬롯에서 이야기는 사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고 여러 사람이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조직의 방식이기도 하다.
농장의 이름을 기록하고 생산자의 얼굴을 소개하는 일은 커피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더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으며, 품종과 가공방식, 수확 정보는 한 잔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반대로 실제 품질이나 생산과정과 관계없는 과장된 서사는 희소성과 욕망만을 키우는 마케팅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한 잔의 가격 역시 맛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산량과 품질, 희소성, 산지의 명성, 농장과 생산자의 평판, 가공방식, 대회와 경매의 이력, 유통구조와 브랜드가 함께 작용하면서 가격이 형성된다. 그래서 현대인은 커피의 맛뿐 아니라 그 맛을 둘러싼 정보를 함께 구매한다.
이것은 반드시 나쁜 현상이 아니다. 이야기는 보이지 않던 생산자를 보이게 만들고, 가격만으로 거래되던 커피에 장소와 사람의 이름을 되돌려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실제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지, 아니면 현실을 가리는지에 있다.
커피문명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결과지만, 그 가치가 누구의 언어로 설명되고 누구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지는 언제나 슬롯적 힘과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커피의 감각은 매우 개인적으로 시작된다.
같은 커피를 마셔도 한 사람은 재스민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복숭아나 감귤을 떠올릴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산미에 먼저 반응하고 다른 사람은 단맛과 질감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향미는 단순히 혀와 코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개인이 지금까지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어떤 문화 안에서 살아왔고 어떤 단어를 배웠는지, 어떤 냄새와 기억을 축적했는지가 감각의 해석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커피산업은 이렇게 개인적인 감각을 공동의 언어로 바꾸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체계를 만들어왔다.
플레이버 휠과 센서리 렉시콘, 커핑 방식과 평가기준은 서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감각을 비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공용어다. 생산자와 로스터가 같은 장소에 있지 않아도 향과 산미, 단맛과 질감에 관한 언어를 통해 품질을 논의할 수 있고, 수입업자와 바리스타, 심사위원 역시 일정한 감각적 기준을 공유하면서 협력한다.
이렇게 보면 향미 언어는 커피를 멋있게 설명하기 위한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감각을 거래와 품질관리, 교육과 평가가 가능한 형태로 번역하는 산업적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통의 언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또 다른 문제도 시작된다.
특정 문화권에 익숙한 과일과 향신료의 이름이 보편적인 기준처럼 사용되면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의 감각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으며, 전문적인 향미 용어가 지나치게 권위화되면 소비자는 자신의 입에서 실제로 느낀 것보다 전문가가 미리 제시한 표현을 더 신뢰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향미 언어는 감각을 통제하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통된 기준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의 목적은 정답을 강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이 자신이 느낀 것을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
언어가 맛 위에 군림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커피를 느끼기보다 정답을 찾게 되지만, 언어가 감각 사이의 다리가 되면 개인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확장된다.
『사피엔스』에서 널리 알려진 관점 가운데 하나는 농업혁명을 인간이 식물을 일방적으로 길들인 사건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인간이 밀을 재배하고 확산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 역시 정착생활과 반복적인 농업노동, 새로운 슬롯질서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관점을 커피에 적용하면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간은 커피를 세계 곳곳으로 옮겼고 더 많은 수확과 원하는 품질을 얻기 위해 품종을 선택하고 재배방식을 바꾸었다. 커피를 운반하기 위한 교역로와 항구가 생겼고, 생산지와 소비지를 연결하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커피 역시 인간의 시간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일을 하루의 시작과 연결하고, 업무 중간에는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거나 다시 집중한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카페를 찾고, 혼자 일하거나 공부하기 위해 카페에 머물며,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은 재배와 수확, 가공과 운송, 로스팅과 추출, 서비스와 기계산업에 자신의 노동을 투입한다.
사람은 커피를 세계화했지만, 세계화된 커피 역시 인간의 노동과 소비, 도시의 생활방식과 시간표를 다시 구성했다.
따라서 인간과 커피의 관계를 단순한 지배의 관계로 보기 어렵다.
인간은 한 식물을 자신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변화시켰고, 그 식물이 만들어낸 산업과 습관은 다시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커피문명은 인간과 자연, 욕망과 기술, 시장과 문화가 오랜 시간 서로를 바꾸어온 결과다.
커피가 하나의 문명이 되기 위해서는 커피를 마시는 장소 역시 중요했다.
카페와 커피하우스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했지만, 커피를 사고 마시는 장소를 넘어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며 관계를 만드는 공간으로 발전한 사례가 많았다. 신문과 소문이 오갔고, 정치와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이루어졌으며, 문학과 예술을 둘러싼 만남도 생겨났다.
커피가 각성의 감각을 제공했다면, 커피를 함께 마시는 공간은 깨어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슬롯적 무대가 되었다.
사피엔스의 능력은 개인의 높은 지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규칙과 언어, 목적을 공유하면서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슬롯의 중요한 특징이다.
카페는 이러한 능력이 일상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우연히 시작한 대화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개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만나 하나의 기획이 될 수 있으며,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카페에는 이런 가능성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혼자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은 회의를 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모든 카페가 역사적인 토론의 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머물고 생각하고 타인과 연결될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카페는 여전히 슬롯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카페가 만들어내는 것은 판매된 커피의 잔 수만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그 공간을 통과하면서 이루어진 대화와 관계, 아이디어와 기억 역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카페가 만들어내는 가치다.
커피문명의 가장 놀라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한 잔의 생산과정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자는 커피나무를 관리하고 열매를 수확하며, 가공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체리를 처리하고 건조와 선별을 진행한다. 이후 수출과 수입, 운송과 보관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두를 이동시키고, 소비지에서는 로스터가 원두로 만들고 바리스타가 최종적인 한 잔을 준비한다.
이들 대부분은 서로를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계약과 가격, 품질기준과 신뢰를 통해 하나의 긴 생산망을 구성한다.
화폐와 계약은 이렇게 낯선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러나 협력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 협력이 공정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커피의 세계적 확산에는 식민지 지배와 플랜테이션 농업, 강제되거나 극도로 불평등했던 노동의 역사가 얽혀 있다. 소비지에서는 커피가 사교와 교양, 여유의 상징으로 발전했지만 생산지에서는 생계를 위한 고된 노동과 세계시장의 가격변동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현실이 존재했다.
오늘날 공급망은 과거와 같은 형태로만 작동하지 않지만 가치의 분배에 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소비지의 한 잔 가격이 높아졌다고 해서 그 상승분이 생산자의 소득으로 동일하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며, 가격변동과 기후위험, 생산비용 상승의 부담이 공급망의 누구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커피 가격을 단순한 음료의 가격으로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한 잔의 가격에는 어떤 노동을 얼마나 가치 있게 인정할 것인지, 생산과 유통 과정의 위험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만들어진 가치가 공급망 안에서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에 관한 슬롯적 판단이 들어 있다.
커피문명의 성숙함은 얼마나 비싼 커피를 생산하고 소비하는가 보다, 한 잔에 연결된 사람들의 노동과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고 공유하는가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커피가 세계적인 상품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근대의 국제무역과 식민지 경제, 이후의 산업화와 소비자본주의의 확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대규모 생산과 운송이 가능해지고 유통망이 발달하면서 커피는 더 많은 사람의 일상으로 들어왔고, 거대한 브랜드와 다양한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커피는 단순히 카페인을 얻거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음료를 넘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표현하는 소비재가 되었다.
광고와 브랜드는 커피에 휴식과 성공, 창의성과 자유, 도시적인 세련됨과 같은 이미지를 결합했고, 소비자는 음료의 물질적 성분뿐 아니라 그 브랜드가 제안하는 생활방식까지 함께 구매하게 되었다.
스페셜티 커피 역시 시장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농장명과 품종, 고도와 가공방식은 품질과 맛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이지만 동시에 상품의 희소성과 차별성을 만드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정보가 한편으로는 생산자를 보이게 하고 품질을 투명하게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 새롭고 희귀한 것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한다.
따라서 현대의 커피 소비에는 맛뿐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가 들어 있다.
어떤 카페를 찾는지, 어떤 산지와 품종을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의 거래와 생산을 지지하는지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표현한다.
문제는 시장이 차이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어제 특별했던 품종과 가공방식이 빠르게 평범해지고 나면 더 희귀한 커피와 더 강렬한 향미가 요구될 수 있으며, 소비자는 한 잔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다음 새로움을 찾아 이동할 수도 있다.
좋은 커피문화가 해야 할 일은 욕망을 끝없이 증폭시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유지하면서도 한 잔이 왜 다른지,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의 노동과 자연환경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방향이 필요하다.
현대의 커피는 감각과 경험만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아니다.
농업에서는 품종과 유전, 토양과 기후, 병해와 재배환경을 연구하고, 로스팅에서는 열전달과 여러 화학반응을 분석한다. 추출에서는 분쇄도와 물의 조성, 시간과 온도, 농도와 추출의 관계를 측정하며, 감각과학에서는 인간이 향과 맛을 어떻게 지각하고 구분하며 기억하는지를 연구한다.
이러한 지식은 과거 장인의 경험 안에만 머물렀던 부분을 다른 사람이 배우고 반복하고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과학의 역할을 커피에서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과학적인 태도의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현재의 설명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계속 검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과학적으로 다룬다는 것 역시 감각을 제거하고 숫자만 남기는 일이 아니다.
먼저 맛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어떤 변수가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 가설을 세우며, 측정과 실험을 통해 확인한 뒤 다시 감각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각이 질문을 만들고 과학이 그 질문을 검토하며, 과학이 찾아낸 관계를 다시 인간의 감각이 실제 경험으로 판단하는 순환 속에서 커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사피엔스는 커피의 맛을 경험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어왔다.
과학과 측정이 발전하면서 현대커피에는 수많은 숫자가 들어왔다.
점수와 고도, 수분함량과 밀도, 로스팅 시간과 온도, 추출농도와 수율 같은 데이터는 품질을 비교하고 작업을 재현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인간의 기억과 직관만으로 작업할 때 놓치기 쉬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비교하고 논의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숫자가 유용하다는 사실과 숫자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은 구분해야 한다.
측정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순간, 도구였던 숫자는 판단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높은 평가를 받은 커피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일 수는 없고, 특정한 추출수치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마시는 사람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데이터는 커피의 물리적·감각적 특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지만, 한 사람이 그 커피와 맺는 기억과 관계, 문화적인 의미와 개인의 취향까지 모두 수치화하지는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숫자의 뒤에도 인간의 선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측정할 것인지, 어떤 범위를 바람직하다고 볼 것인지, 측정한 결과를 어떤 의미로 해석할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커피문명에는 데이터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데이터를 새로운 절대적 신화로 만들지 않는 판단력도 필요하다.
숫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 강력하지만, 숫자 밖의 모든 것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세계를 좁게 만들 수 있다.
『사피엔스』가 문명의 발전을 바라보면서 던지는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더 많은 힘과 기술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커피문명에도 비슷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커피는 사람을 깨우고 연결했으며, 카페는 대화와 창작, 사유와 휴식의 장소가 되었다. 품종과 가공, 로스팅과 추출에 대한 지식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다양한 향과 맛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커피는 인간에게 휴식만 제공한 것이 아니다.
피곤할 때 잠시 멈추는 대신 카페인을 마시고 계속 일하도록 도왔으며, 산업슬롯에서는 노동의 리듬과 밀접하게 결합하기도 했다. 현대의 카페는 느리게 앉아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한편, 테이크아웃 커피는 이동하면서까지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다.
한 잔은 휴식이면서 동시에 휴식을 미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생산지에서는 기후변화와 가격변동이라는 위험이 커지고 있고, 소비지에서는 더 많은 종류의 커피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새롭고 희귀한 경험을 계속 요구하는 욕망도 확대되고 있다.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사실과 만족이 깊어졌다는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니다.
커피를 많이 알고 비싼 커피를 자주 마신다고 해서 반드시 더 풍요롭게 즐기는 것도 아니다. 지식은 감각을 넓혀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취향을 평가하고 자신의 소비를 과시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만들어냈는지가 아니라 그 발전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켰는가이다.
커피나무에는 인간의 문명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없었지만, 인간은 한 식물의 열매를 발견한 뒤 그 위에 언어와 기술, 시장과 제도, 공간과 문화를 쌓아왔다.
그 결과 생산자와 소비자, 농학자와 로스터, 바리스타와 기계공학자, 대기업과 작은 카페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었다. 얼굴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품질기준과 화폐, 계약과 신뢰를 통해 협력하며 하나의 음료를 만들어낸다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커피는 사피엔스의 협력 능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그러나 인간의 협력 능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을 만든 것은 아니다.
같은 능력은 식민지적 생산구조와 불평등한 거래를 조직하는 데 사용되었고,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해 자연환경에 부담을 주기도 했다. 사람을 연결하는 이야기가 생산자를 보이게 만들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이미지로 사람과 장소를 소비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사피엔스의 상상력과 협력능력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공동의 이야기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가격과 거래, 교육과 소비의 제도로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앞으로의 커피문명에는 더 희귀하고 비싼 커피만을 추구하는 이야기 외에도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생산자의 노동과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 농장이 의존하는 토양과 생태계의 건강, 지역공동체와 소비자의 바카라임, 좋은 커피를 다음 세대에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가치로 인정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새로운 품종과 가공기술, 자동화와 데이터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없다면 기술의 발전 자체가 더 나은 커피문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커피나무는 열매를 만들었지만, 그 열매를 세계적인 문화와 산업으로 바꾼 것은 공동의 언어와 이야기를 만들고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었던 사피엔스였다.
그렇다면 『커피 사피엔스』가 끝내 물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커피산업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가 보다, 우리가 이 한 잔을 매개로 어떤 관계를 만들고 어떤 가치를 공유하며 어떤 슬롯를 선택할 것인가.
커피문명의 다음 모습은 커피나무가 결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마시고 거래하고 연구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사피엔스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