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퍼와 역할이 다른 이유
AI 산업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대개 모델과 GPU에 먼저 향한다. 하지만 대규모 AI 서비스를 실제로 움직이려면 전력과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같은 물리적 기반이 먼저 필요하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의 일부를 인적분할해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전문 회사 ‘SK호라이즌’을 만들기로 한 것도 이런 흐름에서 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SK텔레콤에 이미 SK하이퍼라는 AIDC 관련 회사가 있다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름은 비슷한 AI 인프라 영역에 있지만 맡게 될 역할은 상당히 다르다.
기존 데이터센터를 SK호라이즌으로 모은다
SK텔레콤은 100%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존속회사 SK브로드밴드와 신설회사 SK호라이즌으로 나눌 계획이다.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 분할 비율은 SK브로드밴드 약 0.84, SK호라이즌 약 0.16이다.
SK호라이즌으로 넘어가는 핵심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다. 서초, 일산 2곳, 분당, 가산, 센텀, 양주, 판교 등 현재 운영 중인 8개 데이터센터와 울산·구로 등 건설 중인 신규 AIDC를 포함해 총 318MW 규모의 인프라 확장을 맡는다.
여기에 글로벌 AI 사업에 필요한 해저케이블 인프라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건물만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AI 연산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인프라까지 하나의 사업 축으로 묶는 셈이다.
기존 SK브로드밴드는 통신과 미디어에 집중한다
분할 이후에도 SK브로드밴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존속회사 SK브로드밴드는 유선통신, 미디어,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간다.
즉 한 회사 안에 있던 통신·미디어 사업과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사업을 분리해 각각의 사업 성격에 맞게 운영하려는 구조다.
SK텔레콤이 밝힌 설립 목적도 이와 연결된다. AIDC 사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면서, 외부 자본을 활용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3조800억원의 외부 자본이 들어온다
이번 분할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투자 구조다.
SK텔레콤은 KKR 및 IMM인베스트먼트·스톤브릿지 컨소시엄과 SK호라이즌에 총 3조800억원을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단계적인 투자가 모두 완료된다는 전제 아래 KKR은 지분 29%, IMM컨소시엄은 20%를 보유하게 된다. SK텔레콤은 51%를 보유해 최대주주 지위와 경영권을 유지할 예정이다.
이 구조는 AI 데이터센터가 단순한 사내 설비 사업이 아니라 별도의 대규모 자본을 끌어와 확장할 수 있는 인프라 사업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SK텔레콤은 전략, SK호라이즌은 인프라를 맡는다
역할도 비교적 명확하게 나뉜다.
SK텔레콤은 그룹 전체 AIDC 사업의 전략과 방향을 설정하고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을 총괄한다. 반면 SK호라이즌은 기존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데이터센터와 해저케이블 같은 인프라의 운영·확장을 맡는다.
필자가 보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DC 사업을 하나의 조직 안에서 모두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략과 파트너십을 담당하는 조직, 실제 물리 인프라를 확대하는 조직을 분리함으로써 각 사업이 요구하는 투자와 의사결정을 다르게 가져가려는 구조로 읽힌다.
SK하이퍼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면 SK하이퍼는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SK호라이즌이 기존 데이터센터 자산과 건설 중인 AIDC를 중심으로 운영과 확장을 맡는다면, SK하이퍼는 신규 GW급 AIDC 사업 개발에 초점을 맞춘다.
SK텔레콤은 2026년 7월 SK하이퍼 설립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부지 확보와 변전소 구축 등 신규 AIDC 사업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7,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목표 규모도 상당히 크다. SK하이퍼는 2029년까지 5GW 규모를 단계적으로 개장하고, 2035년에는 총 15GW 규모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수치는 현재 확보되거나 가동되고 있는 용량이 아니라 향후 사업 개발 목표다.
하나는 운영, 하나는 초대형 개발이다
결국 SK호라이즌과 SK하이퍼의 차이는 ‘기존 인프라’와 ‘신규 초대형 개발’로 정리할 수 있다.
SK호라이즌은 현재 운영 중이거나 이미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대한다. SK하이퍼는 앞으로 새롭게 부지를 확보하고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GW급 AIDC를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보면 두 회사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시간축과 규모가 다른 사업을 나눠 맡는 구조에 가깝다.
현재 가지고 있는 데이터센터 사업을 별도 회사로 키우면서 동시에 미래의 훨씬 큰 AIDC 프로젝트는 또 다른 조직에서 개발하는 방식이다.
AI 경쟁은 결국 인프라 구조까지 바꾼다
이번 조직 개편을 AI 데이터센터 회사 하나가 더 생긴 사건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SK텔레콤은 AI 인프라 사업을 전략, 기존 데이터센터 운영·확장, 신규 초대형 AIDC 개발이라는 서로 다른 기능으로 나누고 있다.
SK호라이즌은 아직 설립이 완료된 회사는 아니다. SK텔레콤은 2027년 1분기 안에 인적분할과 설립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임시주주총회와 정부 인허가 등의 절차가 남아 있다.
김성수 SK브로드밴드 CEO가 SK호라이즌 대표를 겸임할 예정이지만 이 역시 회사 설립 이후 이슬롯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318MW 역시 향후 실제 가동이 모두 완료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운영 중인 시설과 건설 중인 신규 AIDC를 포함해 SK호라이즌이 확대 대상으로 제시한 규모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AI 산업이 커질수록 경쟁 대상은 모델만이 아니다. 모델을 돌릴 데이터센터를 누가 확보하고, 전력과 네트워크를 어떻게 연결하며, 필요한 자본을 얼마나 빠르게 끌어올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SK호라이즌과 SK하이퍼를 따로 두는 구조는 바로 그 변화가 기업 조직 안에서도 시작되고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