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생전 처음 마주한 바닷가는 어느 낯선 섬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한 때 카투사를 꿈꾸던 내게 삶은 정반대의 문을 열어젖혔다. 미군과의 소통을 꿈꾸던 통역병 대신, 나를 기다린 자리는 해안 경계병의 자리였다. 억척스러운 파도가 뒤엉켜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몰아치는 밤바다를 그렇게 2년 가까이 마주해야 했다.
시커먼 구름 사이로 세찬 비가 쏟아지던 밤이면 어김없이 묘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마치 시간의 태엽이 거꾸로 감기는 듯한 복잡하고 묘한 감정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밤마다 수도 없이 찾아왔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잠든 깊은 새벽녘, 밤바다를 등에 진 하얀 방파제를 지나, 또 다른 누군가와 교대하기 위해 차디찬 초소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정면은 허리 위를 기점으로 훤하게 뚫려 있고, 뒷면은 단단한 벽돌로 완전히 가리어진 초소는 들어감과 동시에 아무 말 없이 시커먼 문을 굳게 닫았다.
외교관을 꿈꾸던 청춘은 어느 때나 쉽사리 바카라을 펼칠 수 없었다. 바카라을 보기 위해선 새벽 근무가 파하는 시간을 틈타 열 페이지 정도를 순식간에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파란 눈의 미군과 얼굴을 마주할 기대감에 20대 초반을 살았지만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진 파란색 눈은, 온종일 아무 말 없이 차디찬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밤바다의 얼굴이었다.
폭풍우 속 시퍼런 물줄기가 집채만큼 몸집을 부풀리던 9월의 어느 날, 그 끝이 어딘지 모르겠는 폭풍우 바다는 속절없이 나를 심해 한가운데로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우울한 밤바다를 밤새 바라보다 보면, 어디선가 조용히 나를 부르는 검은 바다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듣는 그 목소리는 꽤나 유혹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밤바다의 부드러운 손짓을 힘겹게 뿌리치다 보면 어느새 짙은 밤이 가고 세상이 다시 밝아 오고 있었다. 밤새 같은 자리를 오가던 기이한 파도 소리마저 모래 사이로 흩어져 사그라진 후에는 시끄럽던 세상이 다시 고요해졌다. 그렇게 세월은 나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어딘가로 조용히 이끌고 있었다.
그 사이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가정을 이루면서 예쁜 아내를 만나고, 그녀를 꼭 닮은 아이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혼인 서약 후 4년 만에 만난 아이의 얼굴은 환한 빛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세월이 나를 데려간 그곳에서 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우주를 만났다. 그는 영롱한 얼굴빛을 머금은 채 언제나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후회가 없을 만큼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고 표현하겠다 다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하늘에 먹구름이 끼는 걸 운명처럼 보게 되었다.
대기의 찬 기운을 가득 머금은 구름은 다시 십몇 년의 세월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아이의 삶도, 아내의 삶도 잿빛 하늘 아래 영원히 갇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월이 데려간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꽃을 피우기로 작정했다. 힘들수록 사랑한다 서로의 귓가에 간지러운 말들을 속삭였다. 미안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바로 했고, 잘못된 태도를 하나씩 고쳐나갔다. 고마우면 고마운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그 마음을 공손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전달했다. 바로 보이는 커다란 변화가 없어도 사랑의 언어를 끝없이 서로 교환했다.
아기였던 아이가 부쩍 자라 청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외양도 청소년의 모습을 제법 갖췄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제법 어른스러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밥 먹을 때도 왜 그렇게 감사한 일이 많아요?
아빠는 먹을 때마다 항상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뭐가 그렇게 감사한 거예요?
곰곰이 생각한 아빠는 나지막이 말한다. "실제로 감사할 게 많으니까."
음식의 재료가 있었고, 그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고, 그 음식을 이렇게 준비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가족이 함께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끄떡이는 아들의 모습을 보다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세월이 나를 데려가는 곳마다 그간 너무 힘들고 아팠던 것 같다. 그래서 찾고 찾은 고통의 탈출 방법이 바로 감사하는 습관이었다. 어느 날 '평생 감사'라는 바카라을 읽고 감사를 더 자주 표현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입술로, 그다음엔 마음으로, 이후엔 행동으로 감사를 고백하면서 실제로 이 세상에는 정말 감사할 일이 넘치도록 많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 작은 아들은 실로 많은 어려움 속에 살아왔다. 사람들이 모르는 혼자만의 자리에서 아이는 슬픈 감정에 휩싸여 많은 시간을 힘들어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참으로 힘든 열 두 해를 살았다. 그러나 아이는 절망하기보다는 매 순간 긍정했고, 슬퍼하기보다는 날마다 미소를 지었다. 자신보다 더 아프고,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또래 이웃들을 보며 커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여전히 키워가고 있다.
그런 그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아빠를 사랑한다 고백할 때마다 '감사' 말고는 그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를 배려하는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과 그 아이의 고운 성정을 확인할 때마다 지금껏 고된 세월이 안내한 이곳으로 오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고, 어른은 어른답게 성숙해 간다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니었다. 지금 지나는 이 세월을 부인하지 않고, 세월이 나를 데려가는 그곳으로 잠자코 따라가겠다는 굳센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 안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과 새로 배우게 되는 또 다른 앎을 통해, 주어진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이어지는 삶을 크게 기대한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살면 살아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인간이 삶의 의지를 다지고 그 상황 가운데 다시 살고자 한다면 마침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다. 지금의 세월이 나를 데려갈 다음 장소는 어디일까? 그곳이 어디든 나는 여전히 살며 사랑하며, 끝까지 배우겠다는 각오로, 누군가에게 유산을 남겨 주겠다는 뜻을 품는다.
새벽 1시를 향해 가는 이 아름다운 밤에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모른다. 미래를 향한 생각을 나누고 오늘의 경험을 나누고, 과거의 아픔을 나눌 때에 나의 삶이 얼마나 더 풍성해질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세월이 나를 데려가는 그곳으로 기쁘게 걸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좋다. 지나간 내일은 영원히 다시 내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함으로, 곧 다가올 내일을 힘껏 껴안겠다는 심정으로..
오늘을 사랑하는 만큼, 내일에게 조금 더 다정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