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잘 될 것이라고 희망하는 인생은 결국 행복의 나라에 이른다.
생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순간, 한없이 잔잔해 보이던 내 삶과 네 삶은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비바람으로 여전히 세차게 흔들리는 중이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서사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 피어오른다는, 어느 소설바카라에서 마주한 그 구절이 여전히 내 뇌리 한가운데 남아 인생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고, 못내 가리워진 진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도록 우리를 힘껏 도왔다. 그랬다. 우리 삶에 폭풍우가 몰아칠수록 우리의 내면은 땅끝 더욱 깊은 곳에 닿기 위해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뻗고 있었다.
땅이 질퍽할수록 뿌리로 연결되는 생명수는 질퍽함을 뚫고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생각 속에 침잠해 있을 무렵, 삼십 년 전 카드 돌려 막기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우리 가족이 보였다. 당시에 나는 겉으로만 잔잔해 보이는 세계 속, 그저 이름 없는 방구석 청소년에 불과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무력감 이외에는 달리 없었다. 공중에서 산란해 이미 방 안 구석구석 스며든 무력감 한가운데서 나는 늘 무언가를 여전히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 눈앞에 놓인 바카라을 붙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바카라이 나를 붙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바카라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지금의 내 나이 또래 어머니는 기댈 곳 없는 삶의 언저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과 늘 마주해야 했다. 겉으로 보이는 어머니 미소 뒤에 가리워진 그녀의 슬픈 얼굴을 찾아낼 때면 알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그렇게 큰아들은 절박감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집 모두를 위해, 기필코 이 위기를 벗어나는 인생을 살겠다는 다짐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점점 바카라은 나의 구원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 후 일본의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를 알게 되고 시간만 나면 나는 그녀의 바카라 속으로 달려들곤 했다. 그녀를 읽으면서 나의 삶에 알 수 없는 희열감이 찾아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만들어낸 깊은 신앙과 러브 스토리에 초대받은 이후, 나는 미래에 꼭 그런 가정을 일구며 살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되었다.
바카라 속의 그녀는 카리에스 척추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사는 내내 그 누구도 해내기 힘든 숭고한 삶을 살아내었다. 빛나는 신앙심과 아름다운 삶의 태도를 가진 그녀는 이웃나라 대한민국 어느 작은 도시 속 한 우울한 청소년 마음까지 찾아와 그녀만이 줄 수 있는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선물해 주었다. 그녀의 척추 카리에스, 암, 파킨슨, 다장기 부전의 모진 시련이 끝내 그녀를 육체적 죽음으로 몰고 갔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지난 삼십 년 간 그녀의 영감은 여전히 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삶을 살아내는 법을 새롭게 배웠다.
마흔 중반의 나는 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행복은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지만, 그렇기에 나의 행복감은 더더욱 분명한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카리에스로 고통받던 미우라 아야코가 일구어낸 비슷한 모습의 가정을 일궜다. 지난 십오 년의 거친 항해 가운데 줄곧 포기하지 않고 굳센 사랑에 근거한 가정을 일궜다. 돌이켜보니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살아낸 삶이 활자가 되어 내 가슴속에 늘 쓰이고 있었다. 바로 바카라의 힘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녀처럼 숭고한 모습의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서 그녀가 시도했던 것처럼 나 역시 천 명 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했다. 기회만 닿으면 어디서나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했다.
삼 년 넘는 기다림 가운데 우리 부부에게 생명 하나가 찾아왔고,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이는 태어난 이후 십 년 넘게 거의 매일 병원을 다녔다. 오늘도, 내일도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을 가야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는 그동안 남들은 모르는 속앓이를 해왔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 통증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글을 쓰지 못한 지난 두 달간 내 작은 아이에게 힘든 시간이 많았다. 부모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들을 더러 마주해야만 했다.
부모라면 이따금 경험할 수밖에 없는 깊은 무력감 가운데 우리 부부 역시 처해야만 했다. 그러나 삶이 우리를 시베리아 혹한의 설움으로 몰아갈수록 우리가 맺은 언약은 그 가치를 더해갔다. 우리 집에는 그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집안을 가득 메웠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늘 부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재활 치료를 마치고 바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면 아이는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마음속에 담아 둔 "행복해~"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입 밖으로 꺼내었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분명히 삶의 경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그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아 가고 있다.
항상 잘되는 인생은 없다.
이 세상에 그런 인생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되고 안되고에 대한 판단은 오직 나의 내면으로부터 내려지는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저울질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내 인생은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받은 큰절은 아이가 아빠에게 선물한 365번째 큰 절이었다.
"아빠, 엄마 이렇게 아픈 나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아이가 읊조리듯 내뱉는 작은 음성이 나의 귀를 여전히 간지럽힌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십 년 넘게 매일 병원을 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건 얼마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가. 한 번 시작하면 세 시간, 세 시간 반을 채우는 아들의 치료 강도는 또 얼마나 거칠고 고단한 것인가.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이가 지고 나아가는 그 십자가의 무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아이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 모습을 보는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최고의 인생을 아이와 서로에게 선물해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서로에게 말을 결코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를 먼저 배려하고자 기도를 한다.
내 힘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빌린다. 십수 년 전 아프리카에서 함께 근무하던 흑인 동료는 내가 떠나기 전날, 빗줄기 같은 눈물을 쏟았다. 금세 정이 들었던 것일까. 지나가는 떠나는 동료인 나에게, 그는 진실한 눈물을 한 움큼 보였다. 그리고 그 눈물은 거의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내 삶에 거름이 되어주고 있다. 수많은 인생의 질곡으로, 내 인생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별로 없었다. 비록 올해 내가 자주 글을 쓸 수 없는 형편 가운데 있더라도, 여전히 나의 삶은 주어진 생을 숭고하게 여기며 정성들여 일상을 쓰고 있다.
어느 날 나의 삶이 한 권의 바카라이 되는 그 순간이 오기까지 잠시 그렇게 기다릴 뿐이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일 뿐만 아니라 나의 진실한 고백과 삶을 껴안는 태도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오늘도 배우고 있다. 올해 새로 글쓰기 봉사를 시작했다. 한 영혼이 나로 인해 깊은 어둠을 벗어나 새하얀 빛으로 걸어 나오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가장 어두운 시련의 때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나의 시간과 나의 에너지를 쓰는 것은 내게 커다란 의미가 되고 있다.
비록 지금은 아픈 내 아이를 돌봐야 하고, 무너진 경계를 다시 재건해야 하는 지난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 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희망이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어둔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함께 살아갈 것이다. 미우라 아야코의 거친 인생의 한 부분이라도 닮아가는 나의 인생을 가만히 바라보니, 나 역시 그녀처럼 팔십 권의 주옥같은 바카라을 쓸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나는 뼛속까지 작가다. 누가 알아주기 이전에 내가 그 사실을 분명히 안다. 내 안에는 무궁한 글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살아왔다. 그간 참 잘 살아왔다. 하프 타임을 달려온 나의 삶에 대한 나의 평가를 이렇게 글로 내릴 수 있어 한없이 마음이 들뜬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누구보다 나를 그런 존재로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그 대상이 나를 만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생의 이유를 찾는다. 누군가에게 환대받는 삶을 오래 살다 보니 나는 오늘도 또다시 다른 누군가를 환대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내 삶 속에서 누구를 만날까?
항상 잘되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항상 잘 될 것이라고 소망하는 인생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삶이 비록 내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도, 여전히 희망하고 끝없이 소망한다면 내 삶과 네 삶은 어느 날 나와 너를 행복의 나라로 마침내 인도해 줄 것이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가능성을 믿고 더욱 멋진 미래를 그려나갈 때 우리가 상상하는 그 미래는 곧 나의 현실이 되어 나의 고백으로 과거에 남을 것이다.
독자님들 7월 중순 이후에 다시 글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