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째 낙타를 빌려주는 사람

소유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세상을 구하는 법

by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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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나 ‘17’이라는 막막한 숫자를 마주할 때가 있다.


린드 파피루스에 등장하는 옛 이야기처럼 말이다.

흔히 ‘18번째 낙타의 역설’ 혹은 ‘17마리 낙타의 수수께끼’라 불리는 고전 우화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17마리의 낙타를 남기며 첫째에게 반($1/2$), 둘째에게 3분의 1($1/3$), 셋째에게 9분의 1($1/9$)을 나누라 유언했다. 하지만 17은 2로도, 3으로도, 9로도 나누어떨어지지 않는다. 몫을 나누려면 낙타를 잘라야 하고, 낙타를 자르면 모두가 죽은 낙타를 얻는다.


명분을 지키려다 실리를 모두 잃는 꽉 막힌 현실. 수치상의 원칙과 엄밀함에 갇힌 사람들은 갈등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 막다른 길목에서 지나가던 노인이 슬그머니 자신의 낙타 한 마리를 내어놓는다. 낙타는 총 18마리가 된다. 그 순간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첫째는 9마리, 둘째는 6마리, 셋째는 2마리를 받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장남은 원래 얻었어야 할 8.5마리보다 많은 9마리를, 차남은 5.67마리보다 많은 6마리를, 막내 역시 1.88마리보다 많은 2마리를 챙겼다. 팽팽했던 대립을 깨고 '18'이라는 공배수의 세계로 구조를 확장하자, 수학적 엄밀함에 갇혀있던 이들 모두가 이전보다 더 큰 몫을 얻는 완벽한 Win-Win이 성립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통쾌한 상생의 결과 뒤에 숨은 분수의 비밀이다. 아버지가 제시한 비율($1/2 + 1/3 + 1/9$)을 다 더하면 $17/18$이다. 처음부터 $1$이라는 전체 중 $1/18$이라는 빈자리가 존재했던 셈이다. 세상은 때로 100% 완벽한 조건으로만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 부족한 틈새를 인정하고 외부의 새로운 시선을 개입시킬 때, 꼬여 있던 판 자체가 뒤바뀌는 해법이 열린다.


그리고 9마리, 6마리, 2마리를 더한 17마리가 모두 주인을 찾아간 뒤, 남아있던 노인의 낙타 한 마리는 조용히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나는 이 지점에서 가슴이 아릿해지는 깊은 울림을 받는다. 세상을 구원하고 타인의 갈등을 푸는 데에는 거창한 희생이나 영원한 소유가 필요하지 않다. 노인은 낙타를 빼앗기지도, 더 얻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막혀있던 현장에 ‘잠시 빌려주는 1’을 보탰을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이런 ‘18번째 낙타’ 같은 존재들이 있다.



각자의 명분과 계산으로 정적만 흐르던 회의실에서 따뜻한 위트 한 마디로 긴장을 녹여주는 사람, 내 고집이나 지분을 잠시 내려놓고 관계의 숨통을 터주는 중재자, 타인의 눈물 앞에 말없이 시간을 대어주는 조력자. 그들은 문제의 한복판에 자신의 지혜나 온기를 잠시 머물게 했다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은 채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간다.



17마리의 낙타를 두고 싸우던 형제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낙타를 써는 칼이 아니라, 누군가가 빌려준 너그러운 '1'이었다.



우리는 지금 저마다 풀리지 않는 삶의 17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내 몫을 0.1마리라도 더 챙기기 위해 칼날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계산기만 두드리며 닿지 않는 완벽함에 절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음에 내가 삶의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나는 17이라는 숫자에 갇혀 분노하는 대신 지나가던 노인의 여유를 떠올리고 싶다.

타인의 꼬인 일상을 스르륵 풀어주고는 아무것도 탐하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가던 그 마음.

내가 가진 시간, 공감, 그리고 약간의 유연함을 ‘잠시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막막한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내 삶의 낙타 한 마리를 끌고 그 자리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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