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휴가 나와서 네 마음과 시간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해줘서 고맙구나.
혼자서 할머니 병원에도 다녀오고
할아버지와 식사도 하고 용돈도 드리고 말이야.
무표정하게 누워계시던 할머니가 너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셨다지.
말씀도 못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시는 할머니지만
손자가 오니 만개한 목련 같은 웃음으로 표현해 주신 거야.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군대에서 생활한 이야기도 해드리고,
군대에서 훈련받은 사진도 보여드렸다고
넌 틈틈이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어.
네가 사진을 보여드렸을 때 할머니 눈이 커지셨다고 했잖아.
할머니가 편찮으시고 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어.
네가 할머니께 "할머니 사랑합니다."하고 말씀드리니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셨다고.
할머니가 얼마나 좋으셨을지 너와 할머니가 함께한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엄마의 마음에 촛불이 하나씩 켜지는구나.
사랑이 많은 우리 아들이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고 했지.
할머니께 이야기해 드리다가도 자꾸 눈물이 나서 이야기를 멈추곤 했다고.
하지만 할머니께 우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안 되니 꾹 참았다고 했잖아.
네가 엄마와 할머니의 마음속 별을 헤아리고
그 별빛이 희미해지지 않게
우리를 보고 서서 너의 빛을 보내고 있다는 걸
엄마는 알고 있어.
엄마가 힘들까 봐 자주 전화해 주고,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는 네가 있어
엄마의 마음에 뭉근한 힘이 차오른단다.
그런 마음씀은 불꽃처럼 화라락 타올랐다가 꺼지는 것이 아니라 아궁이의 잔불처럼 은은하게 남아서 상대의 마음을 데우고 일으켜 세워줘. 네 마음은 엄마의 마음에 연결돼 지금도 따스한 온기로 남아있단다.
아마 오늘 네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들도 그렇게 두 분의 마음속에 온기로 남아 마음의 방을 훈훈하게 해 드렸을 거야. 내일이 되면 할머니는 네가 왔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겠지만, 네가 왔을 때의 반가움과 기쁨은 할머니의 마음에 에너지로 스며들 거라고 믿어.
이번 일을 겪으며 엄마가 알게 된 것이 있어.
고난 속에서 감사는 더 명징하게 떠오른다는 사실이야.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서 할머니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단다.
할머니와 엄마를 생각하는 너의 마음도,
할머니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의 마음도
고난 속에서 떠오르는 소중한 감사야.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어.
신은 자신이 선하다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는 굳세어지도록 지켜보고 단련시킨다네
(중략) 그것은 군대에서도 누구보다 용감한 자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것과 같은 경우라네.
(중략) 신은 우리를, 인간 본성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시험하기에 적당하다고 보신 것이리라.
처음에는 할머니 상태가 나빠질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눈물이 났어. 아이들과 수업할 때는 에너지를 얻다가 오후에 수업이 끝나고 할머니 상태를 들으면 눈물이 났지. 학교에서 울지 않으려고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우곤 했어.
그러다 엄마는 조금씩 강해졌어.
내가 강해져 현실의 땅 위에 직립해야 할머니를 지킬 수 있으니까.
강해지는 건 내 선택이 아니라 신이 내게 준 기회라고 생각했어.
아들아,
엄마는 우리에게 고난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지 않구나.
고난은 오솔길이 아닌 진흙길 같고,
달콤한 열매가 아닌 쓰디쓴 씀바귀 같지만
진흙길을 통과하면 더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고,
씀바귀를 꼭꼭 씹어 삼키면 몸에 좋은 약초가 되는 거니까.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 선하고 강하게 단련되기를.
진흙 속의 진주처럼 소중한 삶의 원리를 발견하고,
힘들 때 우리 곁에 머무는 귀한 사람을 알아보고,
당연한 일상에서 소중한 감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단다.
고난 없는 행복의 일상 속에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르고,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이제는 알았어.
고난이 우리를 통과해 지나갈 때마다
고난을 증류한 우리에게 선물이 주어진다는 사실도
기억하려 한단다.
그 선물은 지금 당장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 거야.
몇 년, 아니 몇십 년이 지나야 느껴지는 것일 수 있어.
하지만 신은 고난을 통과한 자에게 반드시 선물을 남긴다는 말을 믿어.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말이야.
우리 아들도 군대에서 어려운 일들이 주어진 다지.
너도 선하고 강하게 단련되고 있는 거란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께 너의 선함과 강함을
전하는 일이 가능한 거야.
아들아,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긴다면,
세네카의 이 말을 품었다 꺼내 보렴.
'신은 자신이 선하다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는 굳세어지도록 지켜보고 단련시킨다.'
그리고 너의 선함과 강함이
너를 위해, 가족을 위해, 슬롯를 위해
귀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사랑한다.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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