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역설과 버림의 미학
청명한 가을 아침. 오래간만에 글을 올려본다.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할까... 곰곰 생각해 보다가, 컴퓨터 한쪽에 보관하고 있던 짧은 소품 한 편을 꺼내본다. 소동파蘇東坡(1037~1101)의 <좌천을 축하하고 영전은 축하하지 않는다(賀下不賀上)>라는 글이다.
얼핏 생각하니 글의 제목이 좀 이상하다. 그 반대 아닌가? "영전을 축하하고 좌천을 축하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 맞는 것 아닌가? 혹시... 내가 단어의 뜻을 착각하고 해석을 반대로 한 걸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니었다. 여기서 '하下'는 요샛말로는 '강등'이고 옛날 말로는 '좌천左遷'이며, '상上'은 '승진'이요 '영전榮轉'으로 해석해야 옳다. 그렇다면 동파 문집의 오타일까? 전문을 잘 읽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오타가 아니라, 오랫동안 저작咀嚼하며 깊이 음미해야 할 삶의 금과옥조였다.
동파는 언제 어디서 이 글을 쓴 걸까? 찾아봐도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정적들의 모함으로 조정에서 밀려나 지방관 생활과 유배를 반복하던 시기에 쓴 것일 게다. 특히 말년의 혜주惠州 유배 전후 시절의 심경과 맞닿아 있어 그 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실 창작의 동기나 시기時期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동파는 평생 벼슬길의 부침浮沈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언제나 삶을 멀리 내다보며 정신적 여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글을 읽어보자.
賀下不賀上, 此天下通語。士人歷官一任, 得外無官謗, 中無所愧於心, 釋肩而去, 如大熱遠行, 雖未到家, 得清涼館舍, 一解衣漱濯, 已足樂矣。況於致仕而歸, 脫冠佩, 訪林泉, 顧平生一無可恨者, 其樂豈可勝言哉!
'좌천을 축하하고 영전은 축하하지 않는다!'
동파는 이것이 "온 천하에 유행하는 말"이라고 한다. 정말일까?
그럴 리가 없다. '행복'과 '불행'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이분법적 생각의 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설령 진짜로 그런 말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역경과 환난이 지닌 긍정적 의미를 모르는 자들이 입에 올리는 말이라면, 가식이요 말장난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동파는 정말로 자신의 좌천을 간절히 소망했다. 황주 유배시절 이미 초월과 달관의 거시적 안목을 완성한 동파였다. 그가 좌천을 축하하는 이유, 그것은 필경 휴식과 여백 속에 대자연과 더불어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唐나라의 문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은 친구 왕참원王參元의 집이 불에 홀라당 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축하의 편지를 썼다.
귀하의 저택이 실화로 전소되었다구요? 축하, 또 축하하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걱정하고 염려했소만... 곰곰 생각해 보니 슬퍼할 게 아니라 오히려 축하할 일이더구료.
그대의 글이 그동안 선비들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겠소? 바로 그대가 부자였기 때문일 것이외다. 자칫 재산 때문에 그대를 칭송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였을 것이오. 그런데 이제는 그대가 알거지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글재주를 인정받아 온 천하에 명성을 떨칠 수 있지 않겠소이까? 이 어찌 축하할 일이 아니겠소!
<진사 왕참원의 집에 불이 난 것을 축하하는 편지(賀進士王參元失火書)> 내용 간추림.
참으로 기발하고 멋진 발상 아닌가!
그렇다. 인간 만사는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동아시아의 전통 사유에는 만물의 상반된 두 측면을 대립과 단절로 보지 않고, 상호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전환하는 관계로 바라보는 흐름이 있다. 음양陰陽의 상호작용이 그렇고, 화복禍福의 사유가 그러하다.
재앙이여, 그 속에 복이 깃들어 있구나. 복이여, 그 속에 재앙이 숨어 있도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 『노자』58장
세상 이치가 이러하니, 그 어떤 일이라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반드시 공존한다. 나아가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궁극적으로는 세상만사가 긍정적이지 않은 일이 없다. 그리하여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되고, 죽음은 새로운 삶의 출발이 된다. 그것이 동아시아 전통의 일원론적 가치관이요, 결합의 패러다임이다. 그 지성의 패러다임을 깨닫고 내 것으로 익혀야 하리라.
작년 가을, '특발성 폐섬유증'이라는 병을 진단받았다.
폐가 점차 굳어가는 병이다. 현재로서는 완치할 수 있는 치료법이 없단다. 그 말을 듣고도 이상하게(?) 그냥 덤덤했다. 다만 내게 남은 시간이 대충 어느 정도일지, 그게 궁금했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봄,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몸 하나 누일 작은 방 한 칸으로 거처를 옮겼다. 와중에 평생 가까이 두고 살던 바카라과 물건들을 거의 다 정리했다.
신기하게도 몇 달 동안 매일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려도 버릴 게 또 나왔다. 소오생에게 바카라이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한 권 한 권마다 젊은 날의 추억이 숨어있었고, 나름대로 사색의 흔적이 있었으며, 언젠가는 다시 펼쳐보리라는 미련이 남아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낡은 노트 사이에서 색 바랜 쪽지 한 장이 떨어졌다. 오래전에 적어두었던 구절이었다. 천천히 읽어보았다.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집안의 잡동사니는 집안의 에너지마저 침체시킨다. 그 에너지는 주인의 육체, 정신, 감정까지 침체시킨다. 잡동사니를 분류 정리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까지 말끔히 정돈하는 일.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 그리하면 생명에너지가 완전히 재생되어 강력한 빛을 발산하게 된다.
그렇게 오래전에 깨달았으면서... 그 후로도 무엇을 그리도 많이 움켜쥐고 살았던가. Space clearing. 그것은 단순히 집안의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내 삶을 붙들고 있던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사흘 전, 어느 산자락에 숨어있는 단독주택으로 한 달 살이를 나왔다. 방이 하나밖에 없는 자그마한 집. 그래도 거실이 넓어서, 몸 하나 겨우 누일 작은 공간에서 지내다가 온 소오생에게는 고대광실이 따로 없다.
하루 이틀 짐 정리도 하고 먹을 것도 챙겨 놓았다. 무엇을 하며 지낼 것인지, 걱정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이따금 산바카라하고 이따금 글을 쓰리라. 이따금 산 아래로 드라이브도 나가고 이따금 벗이 찾아오면 담소도 즐기리라. 노트북을 펼쳐놓고 라흐마니노프의 <가을 회상>을 듣노라니 행복이 따로 없다.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떠난다(釋肩而去)"는 동파의 말이 떠올랐다. "관복을 벗어젖히고 숲과 샘물을 찾아간다(脫冠佩, 訪林泉)"는 말도 생각났다. 간절히 그리워했지만 동파도 끝내 이루지 못했던 그 소망을, 불치의 병에 걸린 소오생이 이루고 있다니, "이 즐거움을 어찌 다 말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其樂豈可勝言哉!)"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꾸벅 ^^)
글을 올리지 않는 반년 동안 정말 많은 온라인카지노 글벗 님들과 친구들이 근황을 물으며 소오생의 건강을 염려해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정말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그 어떤 분에게도 제대로 답을 드리지 못했죠. 이 자리를 빌려 깊이 사죄드리며, 과분한 관심과 사랑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일일이 답변드리지 못하는 무례를 아래의 근황 보고로 대신합니다. 부디 용서해 주소서. ^^;;
소오생이 가장 궁금했던 것. 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인지 그 경과를 알고 싶었다.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다니... 그렇다면 내게 남은 시간은 대충 어느 정도일까? 그걸 가늠할 수 있어야 주어진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병은 암과는 달리 진행 정도를 규정하지 않는다. 암은 2기, 3기, 말기... 등으로 병기(stage, 病期)를 판단하여 '예후豫後'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는데, '특발성 폐섬유증'은 그런 게 없다. '특발성'이란 결국 현대 의학으로서는 병의 원인도, 진행 경과도, 치료 방법도 모른다는 의미 같았다.
인터넷상에서는 판정을 받으면 대체로 남은 시간이 3~5년 정도라고 한다. 1년 전, 서울아산병원을 찾아갔다. 나도 그 정도 상태인지 물으니, CT를 들여다본 전문의는 "이미 5년 정도 진행되었다, 안타깝다..." 그 말만 되뇌었다.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한다지?
소오생은 이렇게 지내고 있다.
혹시 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 조금 자세히 기록한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현재로서는 치료약이 없다. 피르페니돈 Pirfenidone(상품명: 피레스파)과 닌테다닙 Nintedanib(상품명: 오페브) 두 종류가 있지만, 진행 속도를 일정 정도 지연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다.
환자들은 대부분 피르페니돈을 복용한다. 건강보험 급여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닌테다닙은 현재 비급여. 1개월 약값이 약 300만 원) 하지만 식욕 저하, 위장 장애, 피부 햇빛 민감, 간 수치 증가 등의 부작용이 심각해서 어떤 이들은 복용하다가 포기하기도 한단다. 나도 처음에는 정량의 절반만 복용했는데도 포기하고 싶었다.
생각건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피르페니돈을 복용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친구인 명동한의원 신정식 원장 덕분이다. 신원장이 조제해 준 한약과 침을 맞으면서 그 부작용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신원장의 치료 대상은 폐가 아니라, 나머지 오장육부다. 이미 딱딱하게 굳어버린 폐 세포는 어쩔 수가 없고, 나머지 정상 폐만으로도 좀 더 오래 견딜 수 있도록 다른 신체 기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자는 계획이었다. 신원장이 내게 몇 가지를 요구했다.
(1) 소식小食 하기. 평소의 2/3만 먹을 것.
(2) 천천히 먹을 것. 식사할 때 아주 오랫동안 씹어서 침이 많이 나오게 한 후에 먹을 것.
(3) 저녁 7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 것. (액체는 가능)
그 결과, 6개월 동안 10kg 이상 감량했다. (피르페니돈 부작용으로 식욕이 저하해서 야윈 게 아니다. 식욕은 여전히 좋다.) 뱃살을 빼서 몸이 가벼워지니 횡격막이 아래쪽으로 내려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쌤은 이 닦을 때 치약이 배로 떨어지죠?" 낄낄 놀리던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거 보게. 몹쓸 병이라지만 이 아니 좋은가!" 유종원과 소동파가 껄껄 웃으며 폐섬유증 걸린 것을 축하해 줄 것 같다.
딸내미의 성화로 석 달 전부터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며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 내키지 않았다. 가만있어도 숨이 찬데 어떻게 운동을 하라는 것인지...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폐섬유증 환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후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병원에 다니는 일이었다. 근교 도시에 살 때는 별로 걷지 않고 버스를 갈아탈 수 있었는데, 서울에 오니 지하철을 한두 번은 갈아타야 했다. 그때마다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끔 지하철을 잘못 탔을 때는 멘붕이 올 정도였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나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근력이 붙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는 일이 전보다 수월해졌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골라 북한산 자락을 오래 걸어보기도 하고, 혼자서 살살 운전하여 강원도의 맑은 바람도 쐬고 왔다.
운동을 시작하면 당연히 숨이 가빠진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하여 아주 힘들어진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 순간을 버티면 움직임이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무언가에 짓눌려 있던 정신까지 서서히 풀려나는 듯하다.
운동이 굳어진 폐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은 아니지만, 남아 있는 신체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고 일상의 활동 능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폐섬유증 환자들에게도 자신의 상태에 맞는 운동과 폐재활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만 숨이 찬 정도와 산소포화도 등을 고려하여 트레이너의 지도 아래 안전하게 해야 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딸내미에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화가 아니라 효도였던 셈이다. ^^
글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호흡이 짧아지면서 예전처럼 빨리 움직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걸리던 일이 서너 시간 걸릴 때도 있다. 예전에도 글 한 편을 쓰려면 사나흘이 걸렸으니, 지금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는가. 소오생은 댓글을 쓰는 데에도 글 한 편을 쓰는 것 못지않게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답글이 늦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
지난 몇 달 동안은 무엇보다 병에 적응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여러 곳을 전전하던 대학병원도 한 곳으로 고정되었다. 진료 간격도 한 달에서 두 달, 세 달로 점차 길어졌다. 침도 일주일에 두 번 맞다가 한 번으로, 다시 격주에 한 번 맞고 있다. 덕분에 한달살이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시간이 얼마가 되었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내 몫이다.
병을 얻기 전에는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카라을 읽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해야 할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산을 바라보고 바람 소리를 듣는 일. 음악 한 곡을 느긋하게 감상하는 일.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몇 줄 적어두는 일.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정기적으로 올리겠다고 약속드리기는 어렵다. 마음 같아서는 최대한 자주 올리고 싶지만, 혹시 소식이 뜸하더라도 무조건 병세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마시기를. 산바카라을 하고 있을지도,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 아니면 글 한 편을 붙들고 끙끙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 소동파, <좌천을 축하하고 영전은 축하하지 않는다(賀下不賀上)>
# 유종원, <진사 왕참원의 집에 불이 난 것을 축하하는 편지(賀進士王參元失火書)>
# 노자 58장
# 특발성 폐섬유증
# Space clearing
# 한달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