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설도, <동심초> 4수 번역 & 낭송

by소오생

얼마 전, 어느 벗님이 산바카라 길에 찍은 보물이라며 황홀하기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봄꽃 사진 4장을 보내주셨다. 한 장 한 장 곰곰 음미하노라니, 문득 가곡 <동심초>가 생각났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하다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노래: 송광선 <동심초>


소오생은 어린 시절 《한국가곡집》바카라자에서 이 노래를 만났다. 작사가가 신사임당이라고 쓰여있었다. 응? 신사임당이 이런 가곡 가사를 다 지었네? 놀랍고 신기하고 궁금했다.


'동심초'는 무슨 풀일까? 제목은 <동심초>인데 가사에는 왜 관련 내용이 없을까? 신사임당은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을 보며 왜 이렇게 슬픈 시를 지었을까, 어떤 구슬픈 사연이 숨어있을까... 궁금해하다 보니 어느새 소년 소오생의 애창곡이 되어 있었다.


요즈음 들어서는 유튜브를 통해서 우리나라 유명 성악가들이 해외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곡 중의 하나로 자주 소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라? 이 노래의 작사가가 신사임당이 아니라 설도라네? 설도? 중국 중당中唐 시대에 시 잘 짓기로 소문났던 그 기녀伎女 말인가? 그녀가 지은 4수의 연작시 <봄날의 소망(春望詞>중에서 세 번째 시를 안서岸曙 김억金億(1896~?)이 번역하고 1945년에 김성태가 작곡한 노래라는 것이었다.




설도薛濤(770~832)를 처음 만난 것은 30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장소는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Chéng dū; 청뚜). 당시 소오생은 교수 생활 첫 번째 안식년을 맞이하여 홀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구름과 달을 벗하며 광활한 중국 대륙을 떠돌고 있었다.


성도의 이른 아침은 뽀오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공해에 찌든 도시 서안西安의 칙칙한 안개와는 차원이 다른, 시정詩情이 담뿍 담긴 상큼한 아침 기운이었다. 그도 그럴만했다. 예부터 비단과 부용꽃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친 데다 제갈량의 충절과 두보의 휴머니즘이 한데 어우러진 풍요로운 문화의 도시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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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바카라을 나간 곳은 시내를 관통하는 금강錦江 강변의 망강루望江樓공원. 울창한 대나무 숲 사이로 짙은 안개가 고요히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숲 속 끝에서 작지만 단정한 무덤 하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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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도薛濤!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당나라 때의 그 유명한 여류 시인이 여기에 잠들어 있었다니... 유학 시절, 한때 그녀를 석사 논문 테마로 삼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던 지라, 그때의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애창곡 <동심초>가 바로 그녀의 연작시 <봄날의 소망(春望詞)> 중에서 세 번째 시를 번역한 것이었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설도는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꽃을 보며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불렀을까. 안서 김억은 또 어쩌다 네 수의 연작 가운데 하필 세 번째 시에 마음을 빼앗겼을까. 더구나 이 노래는 한때 신사임당의 시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설도의 시가 어떻게 대표적인 조선 여인의 이미지로 둔갑한 것인지, 생각할수록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덧 봄날이 저물어간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이 찬란한 계절을 그대로 흘려보내게 생겼다. 궁금한 점은 숙제로 돌리고, 지금은 우선 벗님이 보내주신 보물 같은 사진 네 장도 소개할 겸, 설도의 연작시 <봄날의 소망(春望詞)> 네 수를 <동심초>라는 이름 아래 모두 번역하여 먼저 소개해본다.


‘동심초’는 풀을 엮어 서로의 마음을 맺는 오래된 사랑의 몸짓이다. 멀리 떨어진 두 마음을 하나로 잇고자 하는 바람이며, 님에게 보내는 무언의 편지이기도 하다.


시인은 담담히 읊조린다. 함께 마음을 맺을 이는 없노라고. 한갓되이 풀잎만 엮을 뿐이라고.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 목소리에 그리움은 한결 더 깊어만 간다.




동심초 (원작: 설도, 봄날의 소망 春望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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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번역, 낭송 : 소오생


꽃이 피면 무엇하랴, 같이 볼 이 없는 것을

꽃이 져도 하릴없네. 같이 울 이 없지 않나

문득 묻노니 그리운 님 어디에 계시는가

꽃잎은 속절없이 피고 또 떨어지는데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 번역 메모

‘花開花落時’의 '時'를 굳이 ‘때’로 옮기지 않았다. 꽃이 피고 지는 특정한 때라기보다, 좋은 시절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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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번역, 낭송 : 소오생


동심초 풀을 엮어 마음을 엮어

언젠간 님을 만나 고이 드리리

봄날의 시름, 사라지는 이 순간에

봄새는 어인 일로 또다시 우는 걸까


攬草結同心, 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 번역 메모

‘同心草’는 마음을 맺는 풀이다. 그래서 “동심초 풀을 엮어 마음을 엮어”라고 겹쳐 옮겼다. 뜻의 중복보다 입으로 읽을 때의 리듬감을 먼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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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번역 : 김억 낭송 : 소오생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하다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 번역 메모

김억이 번역한 부분이다. 여기서의 종결인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의 노래 결을 살려, 제4수의 종결에서도 "짐작이나 하시려는고"로 마무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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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번역, 낭송 : 소오생


꽃잎은 가지마다 하나 가득 피어나는데

그리움은 도리어 슬픔으로 깊어만 가네

아침마다 거울 속에 방울방울 두 줄기 눈물

무정한 봄바람은 짐작이나 하시려는고


那堪花滿枝, 翻作兩相思。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 번역 메모

‘玉箸’는 ‘옥 젓가락’. 영롱하게 흐르는 '눈물 줄기'를 상징하므로 ‘방울방울 두 줄기 눈물’로 풀었다. ‘春風知不知’ 역시 “아는가 모르는가”보다 “짐작이나 하시려는고”로 노래의 여운을 살렸다.





# <동심초>, <봄날의 소망(春望詞)>

# 설도, 안서 김억, 김성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