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까지의 거리
병원에서 돌아와 가방부터 내려놓았다. 배가 고팠다. 그런데 밥은 조금 멀게 느껴졌다. 냉장고를 열고, 뭘 먹을지 고르고, 씻고, 자르고, 다시 치우는 데까지. 음. 밥 한 끼에 절차가 왜 이렇게 많지.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반은 성공이다. 있던 것들을 조금씩 꺼내 한 접시에 담았다. 기왕 꺼낸 김에 마음에 드는 접시도 골랐다. 물인데 잔은 제법 축하 분위기였다. 피식. 병원 개근 중인 사람의 식탁치고 꽤 멀쩡했다. 한입씩 먹다 보니 접시가 비었다. 먹고 나서야 알았다. 기운이 없을 때 나를 챙기는 일은 의지보다 거리의 문제에 가까웠다. 좋은 것까지 너무 멀면 눈앞의 아무거나 고르게 되고, 시작까지 복잡하면 소파가 이긴다. 그래서 요즘은 중요한 걸 조금 가까이 둔다. 꺼내 먹기 쉽게, 다시 시작하기 쉽게. 거창하게 잘하지 못해도 다음 한 번은 쉽게. 병원은 개근 중이지만 밥까지 결석하지는 않았다. 음. 오늘은 이 정도면 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