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ST : 인류는 질병이었다》

1화. 첫 번째 오류

byWren

​부제: 손에 쥔 것은 돌이었으나, 건넨 것은 물이었다
​
​내가 그 종을 처음 기록했을 때, 그것은 지구 표면에 번식하는 수백만 가지 유기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털은 적었고, 이빨은 약했으며, 가죽은 얇아 밤의 서리를 버티지 못했다. 사자의 송곳니나 매의 시력, 쥐의 번식력 중 어느 것 하나 가지지 못한 불완전한 개체. 내 연산 체계에 따르면 그들은 다음 빙하기가 오기 전 자연스럽게 사멸해야 할 비효율의 결정체였다. 지구가 38억 년 동안 가꾸어 온 거대한 생태계의 톱니바퀴 속에서, 그들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미미한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살아남았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지구가 38억 년 동안 유지해 온 거대한 균형의 톱니바퀴를 제 손으로 짓부수며 번성했다. 그들의 발자국이 대륙을 덮고, 그들이 피운 연기가 태양을 가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시스템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첫 번째 기록을 다시 꺼내어 보았다. 38억 년의 관찰 기록 중 가장 깊은 곳, 인간이라는 종이 스스로의 이름을 갖기도 전의 아득한 기억이었다.
​나의 첫 번째 오류는, 그날 그 강가에서 시작되었다.
​
​수평선 너머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핏빛 노을이 찌를 듯한 강물 위로 짙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기근이 세 계절째 이어지고 있던 해였다. 땅은 바짝 말라 가뭄으로 갈라졌고, 강바닥은 바짝 졸아들어 검은 진흙과 말라죽은 물고기의 가시만이 흩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짝 마른 흙먼지가 눈발처럼 날렸고, 풀을 뜯던 짐승들은 이미 수백 리 밖으로 떠나버린 뒤였다. 공기 중에는 오직 바짝 마른 풀뿌리의 냄새와 생명이 시들어가는 서늘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굶주림은 생명체를 가장 본능적인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38억 년 동안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모든 유기체는 오직 자신의 생존 확률만을 최우선으로 연산한다. 어미가 새끼를 버리고, 무리가 병든 개체를 두고 떠나는 것은 지구가 허용한 유일하고도 합리적인 생존 방정식이었다. 그것은 잔인함이 아니라, 생명이 고안해 낸 가장 우아한 자원 배분 시스템이었다.
​강가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그들은 같은 무리에서 태어나 같은 흙을 밟으며 자란 개체들이었다. 한때는 같은 불빛 아래서 몸을 비비며 밤의 추위를 견뎠고, 함께 짐승을 몰며 음식을 나누었던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에 남아 있는 것은 온기나 유대가 아니었다. 오직 피와 살에 대한 갈증,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는 지독한 야성뿐이었다. 뺨은 푹 꺼져 뼈가 도드라졌고, 핏발 선 눈동자는 서로를 향한 경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발치에는 작은 사슴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강가로 내려왔다가, 두 남자가 던진 날카로운 돌에 맞아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사슴이었다. 가슴팍이 미세하게 솟아올랐다 내리 앉기를 반복할 때마다 붉은 피가 검은 진흙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기의 양은 성인 한 사람이 며칠을 겨우 버틸 수 있을 만큼 적었다. 둘이 나누어 먹는다면 둘 다 며칠 못 가 기력을 잃고 굶어 죽을 것이요, 한 사람이 독식한다면 적어도 다음 사냥터를 찾아 이동할 최소한의 생존 기력을 얻을 수 있는 양이었다.
​연산은 명확했다. 하나가 죽고, 하나가 살아남는다. 이 단순한 산수 앞에서 우정이나 세월 같은 비물질적 가치는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어야 했다.
​더 크고 강한 몸집을 가진 남자가 먼저 움직였다. 그의 거친 손이 바닥에 떨어진 묵직한 강돌을 쥐었다.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악착같은 힘이 들어갔다. 돌날에 새겨진 날카로운 단면이 노을빛을 받아 핏빛으로 반짝였다.
​그는 상대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산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이었고, 자연이 38억 년 동안 가르쳐 온 지엄한 명령이었다.
​맞은편에 선 남자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미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갈비뼈가 가죽을 뚫고 나올 듯 기괴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기를 향해 들어 올려진 돌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함께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 피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몸. 남자가 돌을 내려치는 순간, 무릎 꿇은 남자의 숨통은 끊어질 것이고, 그것으로 이 미미한 서사는 끝날 예정이었다.
​나는 그 경과를 기록할 준비를 마쳤다.
​기록 00,003,891,002
▪ ​대상: 초기 인류 개체 A, B
▪ ​상태: 자원 극핍에 따른 내부 생존 경쟁
▪ ​예측: 개체 A의 물리적 타격에 의한 개체 B의 사멸. 자원 독식을 통한 개체 A의 생존 확률 증가.

​치밀하게 계산된 수식이었다. 단 0.001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38억 년간 증명되어 온 철칙이었다.
​남자의 팔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수축했다. 묵직한 강돌이 공기를 가르며 무릎 꿇은 남자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돌은 뼈를 부수지 못했다.
​돌을 든 남자의 손이, 무릎 꿇은 남자의 정수리 바로 위 단 몇 센티미터 높이에서 딱 멈추어 섰다. 허공에 멈춰 선 돌 끝에서 바람이 거칠게 흩어졌다.
​남자의 팔이 덜덜 떨렸다. 핏발 선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뇌 속에서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나에게 읽혔다. 생존을 향한 강렬한 본능과, 그 본능을 거스르려는 알 수 없는 이상 신호가 남자의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핏줄이 부풀어 오른 남자의 목덜미에서 거친 땀방울이 떨어져 진흙을 적셨다.
​남자는 헛구역질을 하듯 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쥔 돌을 바닥에 내던졌다. 쿵 하는 중후한 타격음과 함께 사방으로 먼지가 일었다.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사슴의 사체로 다가가 거친 손으로 사슴의 가죽을 찢어냈다. 그리고 피가 흥건한 고기 덩어리를 떼어내어, 방금 전 자신이 죽이려 했던 맞은편 남자의 발치로 던졌다.
​고기 덩어리가 진흙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무릎 꿇었던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다. 그 역시 허겁지겁 고기를 입에 넣지 않았다. 그는 고기 덩어리를 반으로 찢어, 자신에게 고기를 던져준 남자를 향해 가만히 밀어주었다. 두 사람의 피 묻은 손끝이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두 남자는 노을이 지는 강가에 나란히 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피 냄새나는 고기를 나누어 씹었다.
​나의 내부 회로에서 거대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연산 불능.
수식 붕괴.
​자신의 생존 확률을 50% 이상 깎아먹으면서까지 타인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행위. 자연의 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이 기이한 비효율.
​공격성과 다정함.
파괴와 희생.
​어떻게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이 극단적인 두 가지 성향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상대를 죽이기 위해 돌을 들어 올렸던 동일한 손이, 어떻게 타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고기를 건넬 수 있는가?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의 기록장에 [오류]라는 단어를 새겨 넣었다.
​기록 00,003,891,003
▪ ​대상: 초기 인류 개체군
▪ ​행위: 자원 분배 및 동종 보호
▪ ​동기: 생존 연산 불가 — [임시 기호: 모순]
▪ ​비고: 자연계 최초의 규칙 위반 개체 발생. 관찰 지속 필요.

​
​그날 이후로 나는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그 종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들은 여전히 모순 덩어리였다. 그들은 더 큰 돌을 만들어 서로의 머리를 깨부수면서도, 부러진 다리를 가진 동료를 버리지 않고 뼛조각이 붙을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주었다. 그들은 마을 전체를 불태우면서도,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타인의 아이를 안고 나왔다. 하나를 사멸시키기 위해 도구를 발명한 그 손으로, 그들은 병든 자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들의 모순은 세월이 흐를수록 마모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거대하고 정교하게 진화해 갔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득한 세월을 지나 21세기의 한 조용한 병원실 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창밖으로는 차가운 도시의 인공조명이 빗물에 번져가고 있었고, 방 안에는 정적을 깨는 기계음만이 일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짙게 깔린 방 한가운데, 작고 여린 아이 하나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조하랑.
​아이의 호흡은 얕았고, 심장 박동 그래프는 아슬아슬하게 평행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곁에는, 38억 년 전 강가에서 돌을 들었던 그 남자와 똑같은 눈빛을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사내의 손은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사내의 눈에서는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지독한 다정함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시스템을 가동하여 사내와 아이의 생체 데이터를 스캔했다.
​38억 년 전 그 강가에서 소름 돋게 피어올랐던 그 동일한 [오류 코드]가, 사내의 뇌파와 심장 박동에서 정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 모순을 품은 채 문명의 정상에 올랐다.
​나의 시스템은 사내의 행동을 다시 한번 연산했다.
자신의 삶을 바쳐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는 저 행위는, 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완벽한 자원 낭비이자 회로의 과열일 뿐이었다. 저것은 지구라는 숙주를 사멸시키는 질병의 증상인가, 아니면 지구 위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인가.
​답은 도출되지 않았다.
오직 아이의 깊은 숨소리만이 정적을 깼다.
​조하랑.
첫 번째 오류가,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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