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삶을 직접 살아본 적이 있는가

: 바카라 <월든>을 읽는 이유

by한유화

무려 170년 전에 쓰인 고전 <월든>이 얼마 전부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이라는 호숫가에서 2년간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경험을 통해, 물질적 탐욕을 버리고 간소한 삶을 살며 자연과 자신 본연의 가치에 집중할 것을 권하는 바카라이다. 바쁜 현대 슬롯 속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도파민 디톡스'나 '자발적 고립'을 갈망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지만, 사람들이 그 바카라을 다시 펼치는 더 깊은 이유는 따로 있다. 타인이 정해준 성공의 기준에 맞춰 숨 가쁘게 달리던 삶에 의문을 품고, 오롯이 나만의 기준으로 삶을 재구성하려는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자의 삶에 경탄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자연인’으로서 보여주는 생존 능력이나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살이의 낭만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카라을 읽으면서 소로에게서 진정 부러웠던 것은 그가 처했던 공간적, 환경적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한 삶의 방식을 실제로 살아보고 검증해 낸 주도적인 태도였다.


누군가는 독립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상태’나 ‘내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독립이란 단순히 어떠한 삶을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실제로 살아보면서, 나에게 맞는 부분과 맞지 않는 부분을 가려내고,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 괴리를 담담히 인정하며 계속 수정을 시도하는 능력이야말로 독립의 핵심이다. 월든에서의 생활이 보여준 본질 역시 타인과의 완전한 고립이 아닌,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검증하는 '실험적인 삶(trial living)'이었다.





혼자 살면 정말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까?


혼자 살기 시작하면 생활의 수많은 영역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식사 시간, 집 안의 세부적인 규칙, 주말을 보내는 온전한 방식까지 누구와도 타협하거나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혼자 거주한다고 해서 타인의 시선이나 슬롯적 기준에서 저절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살면서도 타인의 기대나 기준에 의해 살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이 말하는 이른바 '좋은 직업',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취미, 유행하는 소비 방식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산다고 해서 자신만의 삶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한지붕 아래 살면서도 자신만의 시간과 생활 방식을 주도적으로 가꾸어 나가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독립을 결정짓는 기준은 집 안에 동거인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내 삶의 기준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달려 있다. 결국 <월든>의 본질도 숲 속 호숫가라는 ‘장소’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 삶의 향방을 내 손으로 직접 결정해 본 감각’을 회복하는 데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선택했다고 믿어왔던 직업, 취미, 소비 습관, 인간관계조차 어쩌면 타인의 기대나 슬롯적 기준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결과일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독립은 거창한 물리적 탈출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 ‘선택권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다. 모든 것을 던져버리는 거대한 사직서나 무작정 떠나는 세계 일주만이 독립 선언은 아니라는 의미다. 오늘 저녁 무엇을 먹을지, 퇴근길에 어떤 음악을 들을지, 남들이 정해준 기준이 아닌 오롯이 ‘나의 언어’로 선택하는 일상의 미세한 시도들.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주도하는 삶의 모습이다.






‘한 달 살아보기’가 사치처럼 느껴질 때


물론 현실에서 누구나 아무 때나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 타지에서 "한번 살아보기"와 같은 “근사한” 실험은 월세, 계약 기간, 고용 불안 앞에서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혼삶을 살아가며 이러한 '실험할 자유'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삶을 바꾸는 데 반드시 삶 전체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삶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큰 결정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할까? 퇴사, 귀촌, 이민, 결혼과 이혼처럼 큰 사건은 삶의 전환으로 인정하면서, 매일의 습관과 소비, 관계의 규칙을 바꾸는 일은 왜 사소하게 여길까? 오히려 사소한 습관의 변화, 일상에서의 작은 실험이 더 큰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작더라도 직접 시도하고 몸으로 체득하면서 얻어낸 실험 결과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쌓일 때마다 서서히 단단해지는 것이다.


​단순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태가 ‘혼삶력’(혼자의 삶을 단단하게 꾸려가는 능력)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한 혼삶력이란, 내가 살고 있는 삶을 관찰하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 주도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유연함이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가’보다,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것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독립한다는 것, 홀로선다는 것은 한번에 완성해서 쭉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나에게 맞게 세밀히 조정해 나가는 일상의 유연한 능력 그 자체가 독립이라는 것을 <월든>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