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1인 가구의 효도'

손주를 안겨주지 못하는 1인 가구가 효도하는 법

by한유화

“너는 언제 결혼해서 귀여운 손주 하나 안겨줄래?"
명절 밥상이나 안부 전화 끝자락에 이런 한마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명절에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것, 부모님을 모시는 것. 그리고 귀여운 손주를 안겨드리고 부모님의 웃음을 되찾아드리는 것.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효도의 전형적인 풍경은 이상할 정도로 ‘가족을 만드는 것’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


가족을 만들지 않은 1인 가구는, 효도 앞에서 별수없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효도의 정의가 여전히 ‘결혼→출산→가정 꾸리기’라는 공식에 묶여 있고, 혼자 사는 삶은 애초에 그 공식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면 자녀가 자기 가정을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일까?


1인 가구가 이토록 많아진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효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자녀는 어떻게 효도하고 있을까. 가정을 꾸리지 않은 자녀에게 효도란 대체 무엇일까.






부모의 삶에도 독립이 필요하다


“손주를 보고 싶다”는 부모의 바람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바람이 자녀의 의무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효도라는 것이, 부모의 행복을 위해 자녀가 자신의 삶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과 ‘부모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네가 잘되면 엄마는 행복해.”
이 따뜻한 말의 이면에 부모의 행복을 자녀가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위태로운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 시켜서 대학 보내고, 취직하면 시집장가 보내고, 결혼하면 아이 낳길 기대하는 단계가 정해져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키운 자녀 세대는, 또다시 자신들의 자녀 세대에게 같은 기대를 ‘바통 터치’하듯 물려준다.

자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만 부모는 비로소 할아버지·할머니가 될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새로운 슬롯적 지위로 한 단계 “격상”하기 위해서 반드시 다음 자녀 세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일까. 자녀의 삶이 결혼/출산을 통해 다음 단계로 진행되어야만 부모의 삶까지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모의 삶과 자녀의 삶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다. 마치 부모의 정체성 확장이 자녀의 인생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각자의 독립을 위해 힘써야 하는 이유다.






‘효도’와 ‘돌봄’은 같은 말이 아니다


부모에게도 부모만의 독립된 삶이 있다. 친구와 취미, 여행과 일, 새로운 관계 속에서 요즘의 부모 세대는 오히려 청년층보다 분주한 일상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데 기껏 독립했던 자녀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육아 노동에 대한 부담을 부모 세대와 나누며 다시 부모 세대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되기도 한다. 육아 부담을 부모에게 전달했던 자녀 세대는, 자신이 부모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나중에는 늙은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죄의식과 바카라임감을 떠안기도 한다.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원치 않으면서도 거절하지 못하는 현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거절할 수 없는 노동’이 세대를 오가며 순환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부모가 손주를 돌봐야 자녀가 일할 수 있고, 그 돌봄이 다시 조부모의 노후를 갉아먹는다. 한 세대의 독립이 다음 세대의 의존으로 이어지고 그 의존을 또 다른 세대의 노동으로 해결하는 셈이니, 효도라는 이름 아래,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 1인 가구가 부모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효도는 어쩌면 '짐이 되지 않는 완전한 자립'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효도’와 ‘돌봄’이라는 개념을 냉정하게 분리해야 한다. 효도가 정서적 교감이자 존중의 영역이라면, 돌봄은 현실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노동의 영역이다. 한국 슬롯는 이 둘을 자꾸 섞어,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불효’라는 정서적 부채감을 덧씌운다. “부모를 사랑한다 → 부모를 돌봐야 한다 → 자녀가 돌보지 않으면 불효이다.”로 이어지는 단편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하는 것과 돌봄 노동을 몸으로 떠받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전문적인 돌봄 시스템을 활용하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여 부모와 자식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불효가 아니라 가장 성숙한 대안이다.


최근에는 부모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가는 ‘거리두기 효도’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있다. 정서적·물리적으로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하면서도, 안부와 연락, 필요한 지원은 꾸준히 이어가는 방식이다. 그렇게 내 삶의 경계를 지킴으로써 오히려 부모를 한 사람의 주체적인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의 삶을 무한정 떠받치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오히려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효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혼도, 출산도, 경제적 지원도, 병원에 모시는 것도 효도의 본질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효도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서로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좋은 부모-자녀 관계란 무엇인가’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을 흔들지 않고 내 삶을 스스로 바카라임지는 것.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것으로 돌려주고, 내 인생을 나의 것으로 살아내는 단단한 자립이야말로 이 시대 1인 가구가 부모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성숙한 사랑일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추석에는 부모의 삶과 내 삶을 모두 존중하는, 조금 남다른 효도를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