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라임으로 흉내낸 레몬에이드

(21.08.24)

by김옥미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글씨의 모양은 작가다워야 합니다

끈적이는 모방이 취미여서

당신의 레몬청을 오래 전에 훔쳐간 적이 있습니다

훔친건 나인데 구속된 건 당신이라

레몬청을 담그자니 살의가 필요합니다

레몬청으로 모방한 글씨의 모양은

글을 쓰는 사람을 만들기에 제격입니다

탄산수만 불어넣으면 레몬에이드인데

사람들은 레몬과 탄산수에

어떤 비극적인 레시피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달달할 거라던 설탕들은 혈관을 따라 눈처럼 쌓입니다

벌떼처럼 몰려드는 절망이 나를 쏘아버리는 날

레몬에이드를 마셔 본 사람은

레몬과 설탕과 탄산수를 오늘도 과대평가합니다

그들의 하모니 그들의 오케스트라 그들의 드라마

남는 건 레몬청을 담그자니 살의가 필요하다는 것

레몬에이드가 아니면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글씨의 모양이 없으면 탄산수가 제조되지 않습니다

스승은 차곡차곡 잼이 되어 재가공됩니다

벌들이 날아와 잼을 뒤적입니다

혈관을 따라 눈처럼 쌓이는 설탕들 속에 일부분 뒤섞여

나는 이따금씩 과호흡으로 레몬 조각을 토해냅니다

그러니 레몬 조각을 유리잔에 데코한다는 건

당신과 나를 조롱하는 일이라고 소리칩니다

글씨의 모양이 작가답다던 선생은

우아한 혁명을 부르짖습니다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

아들에게 레몬청을 한 모금 떠먹입니다

방관할수록

레몬은 익어간단다

레몬이 닳아진단다

레몬이 잊어진단다

레몬이 사라진단다

레몬이란 건 없었단다

라임으로 흉내낸 레몬에이드는

막장처럼 신 맛이 납니다

나를 인터뷰하던 앵커가 반박합니다

앵커는 나의 레몬에이드에 속아

당신과 함께 죄를 지으러 떠났습니다

라임은 법정에서 일어나

레몬청과 탄산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말합니다

레몬에이드의 드라마는 완벽합니다

길다란 빨대가 구멍을 꼽고 탄산수를 발라먹습니다

이거 봐 레몬청을 원했잖아

끈적끈적한 글씨의 모양을 원했잖아

너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

탄산수가 엎어져 차곡차곡 거품이 되어 증인이 됩니다

개미들이 기어와 거품을 물어갑니다

나는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미의 토막을 따라 엮어가는 거품들 속에

일부분 터져나와

이따금씩 심호흡으로 신을 토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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