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나와 데이트
"비는 때때로 내 마음을 더 잘 안다."
비가 내린다.
억세게,
그리고 조용히 모든 것을 적셔낸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오래된 기억을 깨운다.
후련하다.
정말이지,우산 없이 뛰쳐나가 온몸으로 맞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그런데 참기로 했다.
이젠 무작정 뛰쳐나가 울기보단,
나를 더 다정하게 다루기로 했으니까.
우산을 쓰고,
천천기 걸으며 이 빗속을 온전히 느껴보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비가 좋아졌다.
누군가는 축 처지고 불편하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비는 위로다.
말 대신 흘러주는 눈물 같아서,
가끔은 내가 울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그동안 꾹 눌러 담아두었던 마음의 무게가 비와 함께 내려앉는 날.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 참 좋다.
온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아서 좋고,
모두가 집 안에 갇혀 조용해지는 그 틈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꺼내 펼칠 수 있어서 좋다.
문득 궁금해진다.
비 오는 날,나와 비슷한 시기의 여자들은 뭘 할까?
누군가는 아이를 챙기고,
누군가는 바삐 출근길에 오르고,
어떤 이들은 나처럼 멈추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 나와 데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함께 영화를 볼 사람을 찾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보다는 나와 조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오래도록 내 안에 쌓아뒀던 감정들과 생각들,
나 자신조차 잘 몰랐던 나를 마주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써볼 것이다.
요즘 나에게 글쓰기는 놀이이자 숨이다.
어제는 새벽부터 밤까지,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쉼 없이 쓰고 또 고쳤다.
한 줄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정돈되고,생각이 명확해졌다.
심지어 지금 이 글도,
화장실에서 급히 쓰고 있다.
글감이 도망갈까 봐,머뭇거리다 잃어버릴까 봐
허겁지겁 메모장을 켰다.
내가 봐도 웃기고,
한편으론 뿌듯하다.
이토록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이.
그게 글이라는 것이.어쩐지 참 기쁘다.
비오는 날.
이런 날엔 조금쯤 미쳐도 괜찮지 않을까.
온 세상이 물에 잠기듯,
내 마음도 이렇게 잠겨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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