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에게 건네는 첫 번째 안부

by산속


바다를 마주하고 서면,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의 품이 생각난다. 삶이 고단해질 때면 염치없이 돌아가 푹 안기고 싶은 그 품. 어른이 된 지금은 내가 누군가의 울타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비바람 치는 날 내 마음 하나 기댈 곳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에게 사랑은 때로 거대하고 험준한 산이었다. 사람들은 사랑을 꽃이라 말하고 햇살이라 노래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사랑은 늘 나의 희생을 먼저 요구하는 묵직한 산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고단한 희생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랑의 무게라고 말했다. 숨이 차올라도 멈출 수 없었던 그 길 위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늘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소중하다고 믿게 된 이유는, 놀랍게도 타인의 시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두가 나를 등지고 떠난 자리,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곳에 홀로 남아 있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귀 기울여 들어준 적 없고, 누구에게도 돌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나의 어린 마음.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느라 정작 가장 가까운 내 마음의 울음소리는 외면하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생의 이면에서 마주한 그 초라하고 외로운 마음이, 실은 내 삶을 지탱해 온 가장 소중한 조각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타인의 품이 되어주느라 텅 비어버린 줄 알았던 내 가슴속에는, 여전히 나를 기다려준 내가 살고 있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는 이제 어색하지만 다정한 인사를 건네기 시작한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웃는 연습을 하고, 매일 아침 나 자신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넨다. 누군가에게 주었던 친절을 이제는 나에게 먼저 베풀며, 나는


비로소 나와 화해하게 되었다. 타인의 기대가 섞이지 않은, 원래의 나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말이다.
​때때로 나는 내 안의 슬픔을 밖으로 흘려보내고 싶어 울적한 영상의 힘을 빌려 마음의 수문을 연다. 화면 속 누군가가 나 대신 울어줄 때, 참아왔던 나의 눈물도 비로소 길을 찾는다.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희생으로 꽉 차 있던 가슴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기고 그 사이로 새로운 바람이 들어온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는 투명해진다. 그리고 비로소 보인다. 내 삶에는 슬픈 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를 웃게 했던 수많은 순간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 많이 울어본 눈동자에 더 선명한 웃음이 맺히듯, 나는 이제 기꺼이 울고 그보다 더 많이 웃기로 한다.

​나를 지키겠다는 약속은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이렇게 울고 웃으며 나의 계절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온 바람이 뺨을 스칠 때, 나는 비로소 그 바람의 결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사랑하느라, 희생하느라, 참 수고 많았어. 이제는 우리 같이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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