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기지국을 향한 동기화: 파수꾼의 마지막 수신 확인(ACK)
산자락 아래 완만하게 뻗어 있는 숲길의 목재 무장애 데크로드를 걷는다.
지팡이를 짚은 오른손에 체중을 실을 때마다, 수술로 골반 깊숙이 박아 넣은 티타늄 인공관절이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대지를 디딘다. 내 곁에는 주간보호센터의 성인 발달장애인 이용인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나란히 발을 맞추고 있다.
가장 걸음이 느린 한 친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데크로드 나무 틈새로 굴러떨어지는 마른 낙엽 한 장을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과거의 나였다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빨리 가자"고 재촉했을 것이다. 계획된 프로그램 일정표, 관할 구청에 보고해야 할 귀원 시간, 차량 운행 일지의 분초 단위에 쫓겨 아이의 시선 따위는 가볍게 묵살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대퇴골두가 산산조각 나는 사고를 겪고, 뼈를 깎아내는 통증 속에서 가장 느린 지팡이 보행자가 된 지금의 나는 가만히 그 곁에 멈추어 선다.
아이가 낙엽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올릴 때까지, 숲속의 바람이 우리 둘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고 그 침묵의 시간을 함께 지켜낸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그토록 치열하게 240점의 암호를 풀고, 법률의 방화벽을 세우며, 1,000번의 거절을 뚫어낼 정밀한 복지의 선로를 깔아왔는가?
우리가 마침내 도착해야 할 목적지는 화려하게 완성된 서류의 철벽이 아니라, 바로 이 한 사람의 멈추어 선 시선을 온전히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아니었던가.
컴퓨터 공학과 인지과학에는 ‘인지 대역폭(Cognitive Bandwidth)’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뇌가 일상에서 고도의 판단을 내리고 타인과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의 총량은 철저히 유한하다.
가정 내에 중증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나, 법적 매뉴얼 없이 격무에 시달리는 슬롯복지사의 뇌 신경계는 매일 100% 과부하 상태로 폭주한다.
‘다음 달 시설비 300만 원은 어떻게 마련하지?’, ‘내일 아이가 또 다른 사람을 물어뜯어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하지?’, ‘내가 죽고 나면 저 아이는 길바닥에 버려지는 것 아닐까?’
생존에 직결된 공포와 행정적 결핍이라는 악성 백그라운드 프로세스가 시스템 자원을 전부 잠식하고 있을 때, 인간의 CPU는 만성적인 발열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에서는 눈앞에 있는 아이의 떨리는 입술도, 땀에 젖은 이마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인 방어기제와 짜증, 그리고 절망적인 분노만이 뿜어져 나올 뿐이다.
우리가 지난 아홉 개의 장을 통해 법률과 행정의 디바이스 드라이버를 구축하고, 특별수요신탁과 공공후견이라는 견고한 방화벽을 설계한 진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관료주의적 기술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모와 현장의 영혼을 짓누르던 거대한 행정적 공포를 ‘외부의 공학적 인프라’로 완전히 분문(Offloading)시키기 위함이다.
종합조사 X1 240점을 돌파하여 거주시설의 공적 입소 권리를 확보하고,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ISP를 통해 공적 코디네이터에게 들것의 무게를 나누며,
실비 거주시설과 지자체 조례를 매칭하여 월 20~30만 원대의 안정된 직류 전압을 확보하고,
PBS 행동 대처 카드로 시설의 거부 본능을 해제하며,
특별수요신탁으로 사후의 맘몬을 원천 차단하는 순간,
가정의 신경계를 태워버릴 듯 날뛰던 모든 불안의 노이즈가 단숨에 0으로 떨어진다.
비로소 부모와 복지사의 뇌 안에서 기적처럼 ‘50%의 인지 대역폭’이 해방되는 것이다.
통신 데이터 전송 규격에는 ‘수신 확인(ACK: Acknowledgment)’이라는 필수 신호가 있다.
송신소가 아무리 수천억 바이트의 데이터를 전송했어도, 수신소로부터 "데이터가 단 한 비트의 손실도 없이 온전히 도착했음을 확인했다"는 단 하나의 ACK 패킷을 돌려받기 전까지 통신 세션은 결코 종료되지 않는다.
이 바카라이 완성해 낸 모든 행정 공학의 목적은 단 하나, 저 상처받은 아이의 영혼으로부터 생애 최초의 평온한 ACK 신호를 수신하기 위함이다.
서류의 불안이 걷힌 바로 그 빈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아이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고, 거친 살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따뜻한 밥 한 술을 입에 넣어줄 수 있는 참된 인간성의 안식으로 들어서게 된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절은 기술과 지식의 정점에 선 자들을 향해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아무리 법률에 통달하고, 지자체의 지침을 손바닥 보듯 꿰뚫으며, 무결점의 지출결의서와 평가 지표를 완벽하게 작성해 내는 특급 행정가라 할지라도, 그 손끝에 연약한 존재를 향한 애통함과 살결의 온기가 없다면 그는 단지 차가운 관료주의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25년의 세월을 돌아본다.
젊은 날의 나는 날카로운 법 조항과 빈틈없는 서류로 무장한 채, 상대를 논리적으로 굴복시키는 데서 유능함의 쾌감을 느끼던 교만한 기술자였다.
하나님은 그런 나의 완고한 자아를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내던지셨다.
도림천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와 함께 곤두박질치며 대퇴골두가 부스러지던 날, 나의 모든 지적 교만과 육체적 통제권은 단 0.1초 만에 산산조각 났다.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병상 위에서 두 달간 천장만을 바라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완벽한 법률과 행정 제도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
법은 피난처의 울타리를 쳐줄 뿐, 그 안에서 피 흘리는 자를 살려내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쏟으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랑뿐이다.
인간의 힘으로 쌓아 올린 모든 시스템의 한계를 정직하게 응시할 때, 비로소 자력구원의 바벨탑은 허물어지고 위로부터 임하는 참된 은혜의 빛이 비추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인간을 향해 차가운 행정 명령서를 투하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진딧물처럼 썩어가는 나병 환자의 곪아 터진 살점에 직접 손을 대셨고(막 1:41), 듣지 못하고 말 더듬는 자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며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막 7:33).
지극히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러운 인간의 깨어진 현실 한복판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이 직접 살결과 체온을 밀어 넣으시는 ‘성육신적 접지(Grounding)’를 감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온 인류의 죄악과 깨어진 피조세계의 모든 저주스러운 과전압을 자신의 육체로 받아내어 대지에 방전시키셨다.
숨을 거두시기 직전, 주님은 온 우주를 향해 단 하나의 최후 패킷을 송출하셨다.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다 이루었다 / Paid in full)."
그것은 창세 전부터 시작된 인류 구속의 모든 빚과 죄바카라이 단번에 완납되었음을 알리는 우주적 수신 확인(ACK)이었다.
우리가 복지 현장에서 감당하는 50:50의 사역은, 바로 이 갈보리 십자가의 영원한 접지선에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거룩한 제사장적 직무다.
부모의 눈물과 상처 입은 아이의 깨어진 현실이라는 ‘50%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하나님이 일반은총의 세계 속에 허락하신 법률과 제도라는 ‘50%의 공학’을 빈틈없이 조립하여,
마침내 이 땅의 가장 비천한 자들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서의 존엄을 누리게 하는 거룩한 샬롬의 완성이다.
우리는 더 이상 헤매지 않는다.
땅 위의 모든 얽히고설킨 행정의 케이블들이, 하늘의 본향 기지국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주파수와 마침내 완벽하게 동기화(Synchronization)되었기 때문이다.
숲길 데크로드의 끝자락, 아이가 손에 쥐고 있던 마른 낙엽을 조심스럽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땀에 젖은 작은 손으로 내 투박한 손가락을 꼭 쥐어 온다.
살갗을 타고 전해지는 따뜻한 맥박.
그것은 1,000번의 거절과 차가운 관료제의 미로를 뚫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도달한 한 생명이, 내게 건네는 가장 아름답고 눈물겨운 마지막 수신 확인(ACK)이었다.
"선생님, 이제 저 안심해도 되는 거죠?"
"그래, 아가야.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라. 너를 위한 안전한 집이 예비되었단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지팡이를 고쳐 쥔다.
복잡했던 10편의 대장정이 저물고, 25년 현장의 소란했던 바람이 잦아든 자리마다 깊은 평온이 깃든다.
마음의 모든 다이얼을 0.0Hz에 맞춘다.
완전한 침묵,
완전한 멈춤,
그리고 마침내 임하는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
세상의 모든 지친 부모와 외로운 파수꾼들에게 이 바카라의 마지막 문장을 헌정한다.
복지는 헤매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정직한 진리의 법으로,
마침내 영원히 연결되는 것이다.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