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교포

오사카에서의 20년 삶을 일본공인중개사의 객관적 시선으로의 접근

by홍길동

- 프롤로그 -

밤 11시의 서늘한 봄바람이 목덜미를 스치지만, 나는 옷깃을 다듬으며 우산을 펴 들었다. 노미호다이와 도우데스까?"라며 다가오는 삐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며 미나미 한복판의 수많은 크라브와 호스트바 앞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호모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다 인근 스나크에서 새어 나오는 익숙한 엔카소리, 술에 취해 크게 웃거나 노래를 부르는 소리, 그리고 이를 단속하려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미나미의 밤공기를 가득 채운다.

술집 문이 열릴 때마다 새어 나오는 열기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여전히 뜨겁고 소란스럽다. 비에 젖은 검은 아스팔트는 거대한 거울이 되어 걷고 있는 나의 실루엣이 반사된 나를 쫓아오고 있다. 미나미의 붉고 푸른 네온사인들이 바닥에 길게 번지고, 그 위로 떨어진 벚꽃잎들이 젖은 채 달라붙어 분홍색 비늘처럼 층을 이룬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빗방울인지 벚꽃잎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바람이 한 번 불면, 술집 간판 사이로 하얀 꽃잎들이 소용돌이치며 사람들의 어깨와 젖은 우산 위로 무겁게 내려앉고 타코야키의 구수한 반죽 냄새와 소스 향이 습기를 머금어 더 진하게 코끝을 찔러대고 여기에 젖은 흙냄새와 벚꽃 특유의 은은한 단 향기가 유흥가의 담배 연기와 뒤섞여 반주로 들이킨 사케의 취기가 더 달아오른다.

벚꽃 아래서 비를 피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키 160의 멸치대가리 같은 느낌의 노랑머리의 호스트, 젖은 꽃잎을 털어내며 편의점 어묵 국물로 취기와 한기를 달래는 생머리의 젊은 한국여자, 그리고 반쯤 지워진 화장으로 우산을 같이 쓰고 팔짱 낀 채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불륜인지 연인인지 모를... 그런 모습들이 얽히고설켜있다.

이러한 것들에 익숙해져 버린지 벌써 20년

내가 일본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한 지 5년째 돼 간다. 3번에 걸친 도전으로 힘들게 합격해 보람을 느꼈지만 실제 금전적으로 자유로울 정도로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3년간 걸친 법공부 탓에 나름 생활에 대한 법지식이 조금은 풍부해졌다. 만약 한 번에 붙었다면 그러진 않았을 터..

그러면서 나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인처럼 보이는 교포등과 교류해 가며 전혀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좀 더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보이게 되었으며 각종 자료등과 업무를 통해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오사카의 삶. 삶의 오사카에 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내가 약 20년간 일본에서 살아온 경험과 실제를 통한 기록이다.

잘 읽어주시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미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쟈 스탓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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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 "안뇽하세요 아부지" -


아들이 중학교까지 일본학교에 다닌지라 한국말이 서툴러 나는 교포계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입학 후 몇 주 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으로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정중한 알토톤 목소리.

"안뇽하세요 아부지"

순간 띵한 충격으로 잠깐 얼음 상태가 되었다.. 또다시

"안뇽하세요~ 아부지?" 처루미누 담임 시바타입니다.

안뇽하세요는 그렇다 치고 '철민이 아버님'도 아닌 느닷없는 '그냥 아부지'.

순간 귀를 의심한다...'철민이... 누구? 내 아들 철민이..

그런데 왜 나를 아부지라고 부르지? 아버님이 아니라..

한국 표준어의 잣대로 보면 좀 당황스럽지만,

오사카 교포 슬롯의 세계관에서는 이것이 당연한'예우'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상대교사가 누군지 가물거렸지만 30대 후반의 뿔테안경의 남자선생으로 기억됐다.

그 후 학교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일본어로 했지만 내용은 잘 들려오지 않았고...

아부지란 호칭이 계속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학교 학부모행사에 갔더니 나를 향해 뛰듯이 달려와 멈춰 서며 90도로 인사하는 시바타 선생.

"안뇽하세요 아부지"

격한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도 자연스레 대답했다.

"안뇽하세요 아부집니다" 라고.



일본의 교포계 학교에서는 교포선생들이 많다. 국적은 한국 일본 이름은 한국식보다는 일본식이 많다. 선생님들의 말을 들을 때면 정화되지 않은 좀 앞뒤 안 맞는 표현 내지는 어색한 표현이 감지된다. 그러나 대부분 일어로 말한다. 한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은 간단한 말 정도만 아는 것 같다. 더불어 한국수업은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세대가 몇 번이나 갈렸으니 현재 한국에서의 표현까지는 알 수가 없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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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루하시(오사카 한인밀집지역) 식당에서 - 부산에서 온 거래처 직원과 함께 츠루하시 한국식당에 들렀다.


오사카 츠루하시의 연기 자욱한 야키니크 골목을 지나 더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들면 현지 한국아줌마들이 하는 식당들이 많이 눈에 띤다. 오늘 찾은곳은 삼겹살집, 부산에서 온 '인간 진공청소기' 박 대리는 불판 위의 고기가 익기도 전에 사라지는 마술을 보며 나는 내 눈을 의심하게한다.

"박 대리, 그게 익은 거야? 거의 생고기 같은데?"
내 걱정 섞인 질문에 박 대리는 참이슬 한 잔을 '가글'하듯 들이켜더니 태연하게 대답한다.

"부장님, 삼겹살은 원래 마음의 온도로 익혀 묵는 겁니다. 억수로 고소하네예!"

박의 젓가락질은 마치 굶주린 독수리의 발톱 같다. 4인분이라는 고기는 불판 위에서 잠시 '치익' 소리만 냈을 뿐, 곧바로 박의 거대한 구강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은 경이로웠다. 옆 테이블의 오사카 할머니들조차 눈에 땡그래져 밥먹기를 잊은듯 연신 박 대리를 쳐다본다.

참이슬 세 병째. 박 대리의 얼굴은 선홍빛 삼겹살 색깔과 완벽한 물아일체가 되어간다. 그는 이제 쌈을 싸는 것도 귀찮은지, 상추 세 장을 손바닥에 펴더니 고기 세 점과 마늘 네 알을 올려 '수류탄'만한 쌈을 제조해 마구마구 입에 쑤셔넣는다.

"박 대리, 이제 그만... 우리 내일 미팅도 있잖아."

나의 조심스러운 만류에 그는 불판 위에 남은 기름때마저 핥을 기세로 입을 쩍 벌리며 말한다.

"에이, 부장님! 츠루하시까지 왔는데 '시아게(마무리)'로 냉면 한 그릇 안 때리면 내 부산사나이가 아닙니데! 여기 '레-멘(냉면)' 두 개 추가예!"

박의 배는 이미 후지산만큼 솟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져 화산터지듯 셔츠 단추가 오사카 성 천수각까지 날아갈 것 같다. 나는 슬슬 겁이 난다. 이 친구를 데리고 전철을 탔다간, 그의 '삼겹살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칸 전체가 찜질방에 고기냄새에 마늘냄새까지...

나는 조용히 계산서를 집어 든다. 더 늦었다간 박 대리가 식당 자재를 다 축내는건 상관없다지만 아까부터 우리를 보며 낄낄 거리는듯한 구석자리의 양아치같은 녀석들과 싸움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3년전에 대전에서 온 거래처 최도 식당에서 술취해 한바탕 난리를 쳤던 기억이 스쳤다.

이 돼지 박을 끌고 역으로 아니 택시로 호텔로 데려다주겠다하는데 순간 박은 식당 이모를 향해 손을 번쩍 들더니,

"이모! 여기 입가심하게 김밥 세 줄만 말아주이소. 아, 그리고 단무지 좀 마이 주시고예!"

삼겹살 4인분을 '에피타이저'로 끝낸 남자가 냉면에 디저트로 김밥 세 줄을 주문하는 광경은 츠루하시 수십 년 역사에서도 그닥 흔치 않는 풍경이다.

나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박에게 묻는다.
"박... 박 대리, 김밥 세 줄? 지금 제정신이야? 그거 다 먹으면 자네 배 터질수도 있잖냐"

박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씨익 웃는데, 그 미소가 좀 을씨년하다.
"부장님, 김밥은 밥 아입니까. 아까 묵은 건 고기고예. 원래 한국 사람은 '밥 배'가 따로 있는 법 아입니까. 허허."

잠시 후, 김밥 세 줄이 뚝딱하고 나온다. 박 대리는 젓가락도 쓰지 않고 손으로 김밥을 집어 들더니, 노란 다쿠앙 세개를 한꺼번에 입에 쑤셔 넣고는 오독오독 씹어 돌리기 시작한다. 그 '오독오독' 소리가 마치 닭발을 씹어대는 오돌뼈가 부러져 튕구러져가는 소리처럼 들려온다.

"캬! 역시 김밥엔 '다쿠앙'이 억수로 '우마이(맛있네)'예! 이모, 여기 다쿠앙 좀 주이소!"

다쿠앙을 씹으며 김밥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그의 목구멍 근육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왠지 기도하는 기분이 되어간다. 녀석이 자러간다고 한다거나 먹다가 기절하기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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