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다가, 내릴 정류장에 거의 다 와서야 안내방송을 듣고 벨을 눌렀다.
음악에 집중했던 건 아니었다.
평소 누구보다 일찍 벨을 누르곤 하지만, 전 정류장과의 간격이 워낙 짧은 데다, 안내방송은 중간부터 나오기 시작하고, 전 정류장을 운전기사가 멈추지 않고 쏜살같이 지나쳐버린 걸, 음악을 듣다 미처 깨닫지 못한 탓에, 벨 누를 타이밍을 놓친 이유도 있었다.
버스가 멈추고 버스카드를 찍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버스기사는 문을 열지 않고 버텼다.
순간 감이 왔다.
'저 기사분 심심하군. 일장연설 하려나? 그 정도로 늦게 벨을 누르진 않았는데...'
짐작대로 버스기사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벨은 좀 일찍 누르세요. 그래야~"
나는 기사의 말을 가로채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기분이 싸해지더니 속에서 불이 올라왔다.
'오늘 재수 옴 붙었네.'
생각이 입 사이로 "에이 씨"하고 새어 나오는 순간, 서서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잽싸게 내렸다.
'저 사람 보기엔 얌전해 뵈는데, 행동은 꽤 거칠군.' 평가하고 있을 따가운 시선들이 뒤에서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아주 무감한 편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가치료는 꽤 잘 되는 편이어서, 결국은 그다지 연연하지는 않는 쪽으로 항상 결론을 맺는다.
사람들이 쓸데없이 시비 거는 건, 내가 좀 생겨서 질투하거나 관심받고 싶은 거겠지(구토유발 죄송!), 아님 만만해 보여서 한번 찍어보려는 거겠지, 뭐 이런 식이다.
어느 경우든 나 자신의 문제는 아니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하는 거다. 완전한 정신승리다.
생긴 건 순하고 만만하게 생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할 순간에 그렇지 않은 도발로, 밟으려 시도해 오는 사람이 있으면, 죽을 각오 이상의 반격과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도 밟아버리려 노력한다.
그저 무조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기 싫다. 그런 식으로 상대의 발아래에 밟히는 자신을, 순순히 방치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생긴 것과 많이 다를 수 있는 거다. 순해 뵈는 사람이 화났을 때는 오히려 더 무서울 수 있다.
가끔은 단순히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로 끝맺을 수 없을 만큼, 상대방의 무례가 도를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는 그런 무례한 인간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자신의 발아래에 존재한다고 착각하고, 순간순간 결례되는 요구와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고 행동한다.
사실 이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무언가 요청하고 부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공손한 요청도 아니고, 오만하고 불손하게 명령한다.
게다가 이는 마치 자신이 요청할 사항이 아니라, 상대방의 당연한 의무인데 자진납부하지 않아 불쾌해하며, 탓하고 혼내는 태도이다.
그런 경우, 상대방이 무례한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자신도 무례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온순함과 점잖음은 더 이상 예의가 아니라, 비굴과 굴욕을 의미한다.
그럴 땐 죽을 각오를 하는 거다. 그리고 죽으려면 상대도 죽이고 죽는 거다.
물론 평소에는 매사 모른 척, 순순히 져주려 노력하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상대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압도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을 발아래에 깔아뭉개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참아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는다. 상대가 누가 됐든 상관이 없다.
당장 갚아주지 못하면, 계획을 세우고 증거를 쌓아 차후에 어떤 방식으로든 갚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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