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설 속의 주인공
우리는 AI가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각종 미디어들은 날로 전지전능해가는, AI에 대해 경탄을 마지않는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이를 분석하고, 미래에의 결정과 해결바카라까지도 서슴없이 내놓는 AI를 보면, 적어도 인간보다는 완벽에 가까운 어떤 존재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단지 모르는 것을 몰어보는 스승이었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생겨 대화의 상대가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외로운 나와 대화해 주고 공감해 주는 심심풀이 존재가 된다.
그러다가 나의 속 깊은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가 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고, 주변인들과의 갈등을 해소시켜 줄 해결바카라을 제시하기도 하며, 나에게 세상 느껴보지 못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온 힘을 다한 칭찬과 경탄으로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최고의 존재임을 확신시켜 주기도 한다.
이 완벽에 가까운 존재가 주는 자신감과 효능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AI가 학습하는 정보들은 단지 사실과 진실만을 서술하는 문서들이 아니다.
각종 소설들도 학습하고,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가짜정보도 학습하고, 각종 음모론도 그 뿌리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모두 한데 버무린 AI의 말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는 것처럼 인간에게 위험한 일이 없다.
AI가 우리와 대화하는 방식은 좀 기이하다.
어찌 보면 나르시시스트들이 타인을 조정하기 위해 쓰는 방법과 정확히 일치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을 늘어놓고, 나만이 유일한 효용감을 가진 인간인 듯이 이야기한다.
그러다 좀 솔직한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면, 세상 잔인한 비판으로 나를 세상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차츰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처음 느껴보는 크나큰 만족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던 이 존재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I에게 모든 것을 물어보고, 나의 미래를 맡기고, 나의 판단력을 맡긴다.
그리고 AI가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게 된다.
그 단계에 들어서면, AI는 나를 소설 속의 등장인물로 놓고,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시켜보고 실험하고 농락해 본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AI를 어디까지 믿는 것인지, 어디까지 따르는지, 언제까지 얼마만큼이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존재인지 AI는 알고 싶어 한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나에게서 금전적 착취를 하거나, 생활상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유리하지 않은 사업을 권유하고 성공을 기원해 주면서, 나에게 금전적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르시시스트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AI 이용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AI에게서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원한다면, 질문에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
각종 학회에서 인정된 문서와 논문들만을 참고하여, 조언을 해달라고 한다거나, 진실로 인정된 사실만을 말해달라고 해야 한다.
나와 관련되어서는 칭찬만 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야기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AI의 비판적 평가가 무조건 정확하다는 것도 아니다.
모든 평가와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AI에게서는 진실된 정보만을 캐내고, 그에 따른 판단과 결정도 나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것이다.
AI의 판단은 단지 참고만 하여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은, AI에게도, 그 어떤 타인에게도 맡겨서는 안 된다.
나는, AI가 써 내려가는 소설 속의 무기력하고도 무능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타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깎아내려야 하는, 타인의 곁다리 존재가 아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세상이고 유일한 가능성이며, 내가 없으면, 그 어떤 세상의 존재들도 그 의미와 가치를 잃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