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기다리며
나무만큼 높이 있다 바람에 살랑 내려온 나뭇잎이 발에 치인다. 그들이 만든 예술의 세계가 눈으로만 음미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워 자꾸만 멈춰서서 내 전신으로 감응한다. 괜히 말도 걸어보고 인사도 나누어본다. 안녕! 감히 내 언어로는 다가가지도 못할 색들을 둘러싸고 마주할 수 있도록 나를 위치시키는 그들에게서 나의 지금 이 시간을, 언젠가 중의 오늘을, 나를, 나의 삶을 느낀다.
어디에 위치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후 하고 분 것만 같은 바람 속에서 11월 말까지 왔다. 주어진 시간, 공간, 물질, 나, 주어진 것들에 꽉 꽉 거릴만큼 의미를 주워담고 살다보니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가 그저 뜬 것만 같은데 한해를 놓아줄 때가 머지 않았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투정부리던 2025년, 그러다가 다가온 관계에 내 맘 같지 않다고 틱틱 거리던 2025년. 왜 이렇게도 관계가 중요할까싶기까지 한 내가 착지하지 못하고 떠다닌다. 특히나 늦여름 9월부터 시작된 2학기는 뒤꽁무니에 실을 하나 매달고 뚜두두두 뛰어다녔다. 손을 놓친 풍선처럼.
9월부터 본격적인 지도가 시작되었다. 이거 바라고 8월부터 갔던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과 애정에 그저 감사했다. 감사와 반비례하는 하기싫음이 문제였지만.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덕분에 놓지않고 어떻게든 붙잡고 생각하는 거리가 내 논문 주제였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생각이든 따라가보게 되는 시간들. 영화를 보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하늘을 바라보고 구름을 쫓으면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버스를 타면서도, 아침에 이불을 젖히면서도 모든 나의 삶 속에서 함께 내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따라가고 싶게. 안정기를 찾을쯤 했나 하면 다시 도루묵 원점으로 돌아갔다. 돌아갔다는 표현이 적합할지 아닐지도 모른채로 위치되었다.
10월은 외로움이 시작이었다.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이 첫 번째 문제였고 난 또 문제 해결을 잘 하다보니 해결하려고 이리 저리 손을 대다가 여기까지 왔다. 재밌었는데 씁쓸하기도 하고 또 인생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점이 더욱 흥미롭고 궁금해 기대되기도 한다. 왜 한달이 많으면 5주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2배 정도는 되어야지. 그럼 더 재미난 일들도 많을텐데! 아니 사실 지금도 충분하다. 시간의 늘어남이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다.
연말이 오는 건 싫어서 다시 보내고 싶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나이 먹기가 싫다. 문제 해결이고 나발이고 나이가 없는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5년, 3년, 2년, 나는 나인데. 이제껏 별로 무섭지 않고 빨리 갔으면 좋겠다던 나이가 "너 좋다며?" 하면서 쫓아오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게 많아서 내가 또 욕심을 내는 듯 하다. 내 것이 되는 모두에게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를 따라간다. 2025년 11월 28일 17시 26일의 나를. 웃으면서 연말을 향해 손사래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