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뜨개 강사를 하게 된 이유
[가슴 뛰는 일을 해본 적이 있을까 글에 이어서 2편!]
처음 방문한 뜨개공방은 내 생각과 너무 달랐다. 난 열정이 가득한 수강생이었는데 가르치는 선생님은 나만큼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공방에서 처음 선택한 작품은 아이의 우주복이었는데 바늘의 mm는 3.5 정도 되었다. 만약 내가 강사로서 그때의 초보인 나를 마주하였을 때 이 작품을 절대 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보 뜨개인에게 얇은 바늘로 떠야 하는 얇은 실, 그리고 우주복이라 하면 다리 두 짝을 뜨고, 다시 합쳐서 원으로 떠야 하고 단추구멍도 내야 할 테고, 내 기억으론 카라도 있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초보자에겐 너무나 어려운 난이도의 작품이었지만 내 선택에 공방선생님은 따라주셨고, 바로 그날 앉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계속 코를 빠뜨리고 도안은 이해가 되지 않고 공방선생님은 지인들과 수다도 함께 곁들이며 수업을 하셔서 내가 3번 이상 물어보면 왜 이거도 이해를 못 하냐는 식으로 목소리가 변하셨다. 2시간 수업동안 나는 거의 뜨지 못했고, 구입한 재료를 들고 나오며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 생각했고 거기서 구입한 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시 검색을 해보며 이번엔 더 꼼꼼히 조사했고, 뜨개 자격증까지 발행해 주는 공방을 찾을 수 있었다. 친정집에서도 걸어서 갈 수 있어서 거리도 너무 맘에 들었다. 바로 상담 예약을 잡고 가서 상담을 받아보았고, 그렇게 난 아이 출산 바로 전 1년 과정의 뜨개 자격증 과정을 등록하고 나왔다. 첫날부터 수업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첫 수업은 목도리였는데 길이가 긴 만큼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배워가니 공방을 가는 날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중간에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 하는 100일 이후부터는 바로 공방에 나가 열심히 배웠다. 아이를 친정엄마가 봐주실 수 없는 날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옆에 재워놓고 배우기도 했고, 남편이 없는 날은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고서라도 공방을 빠지지 않고 다녔던 거 같다. 그렇게 1년 6개월 후 뜨개 자격증을 취득했고, 난 뜨개 자격증을 시작으로 생활자수, 비누, 캔들, 베이비돌 등등 여러 자격증을 더 취득했다. 14년 전 그렇게 인연이 된 공방 선생님은 현재까지도 내가 일본협회 뜨개를 배우러 다니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처음 갔던 공방에서의 기억만 갖고 다시는 뜨개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렇게 열심히 배운 뜨개를 가지고 난 둘째 아이가 3살이 되던 해 오산에 뜨개 공방을 오픈하게 되었다. 처음 오픈할 때 걱정이 많았지만 남편의 응원이 있었고,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첫 공방은 나에게 너무 큰 설렘을 안겨 주었다. 한 달이 넘는 동안 오픈 준비를 하고, 실을 채워 넣으며 내가 좋아했던 뜨개를 배우는 게 아닌 가르치려고 하니 기분이 묘하고 이상했지만, 어린이집 교사를 했던 난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고, 그렇게 부푼 꿈을 갖고 겨울 오픈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오픈을 하면 수강생이 우르르 올 줄 알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고, 한 달 정도는 카드 판매원. 신문영업사원 등등 영업사원만 방문이 있었고, 수강생이 안 오니 나도 의욕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그쯤 처음 온 수강생은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 또렷이 기억이 생생하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