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라는 직무유기
“메시지 왔어요” 전화기의 소리에 화면을 연다.
반가운 친구의 소식. 영상에 담긴 좋은 글 한 자락과 ‘전여사, 좋은 글 많이 쓰고 있소?’라는 물음. 순간 뜨끔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한 달이 넘도록 온라인카지노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
미국으로 돌아와 밀려있던 집안일을 하며,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바쁘기는 했지만 너무 오래 제 자리를 비웠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내가 정한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 가끔 게으름도 피고, 때론 유튜브의 물결에 떠밀리며 바카라은 한편으로 밀려 있어도 될 나이 아닌가? 오늘은 숙제를 해야겠구나 싶다. 한 달여, 직무유기였던 것 같다.
친구의 한마디가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정해 놓은 규칙 같은 것을 지키고 싶다. 집안도 정리가 되고, 마당의 잡초들이야 못 본 척 지나치면 된다. 다음 주에 떠날 여행은 예전부터 계획되었고, 마지막 점검까지 마쳤다. 바카라을 읽는 일은 ‘독서모임’이라는 틀에 갇혀 있어, 안 할 수가 없다. 이달의 바카라은 이미 숙독을 했고 독후감도 머릿속에 잡혔다. 나누고 싶은 질문도 마음속에 정했다. 때로는 살면서 스스로를 틀에 갇히게 하는 것도 사는 방법이지 싶다. 만약, 독서모임에 속해 있지 않았다면 바카라 읽기, 더구나 고전 읽기는 미뤄둔 채 네플릭스의 숲에서 방황을 할 수도 있고, 바카라장에 꽂혀있는 바카라들 중에서 무작위로 한 권 빼 읽을 수도 있다. 정한 바카라을 읽고 감상을 쓰는 일. 살면서 안 해도 될 일이다. 그러나 약속을 한 모임이고, 스스로 정한 일이기에 정해진 시간 안에 바카라을 읽고 쓰는 일을 한다. 이 모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성장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매달 한 권의 고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그 의미를 둔다. 까마득한 시절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을 때도 있고, 새로운 고전을 찾아 읽을 때도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고전’에 대한 것 들을 나누는 시간이면 된 것 아닌가. 숙제처럼 읽고 좀 더 진지하게 바카라의 여백에 궁금한 상황을 적거나, 그 순간의 느낌을 적고, 모르는 단어는 찾아가며 써 놓기도 한다. 좀 더 꼼꼼 해진 바카라 읽기. 읽고, 쓰고,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하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덕택에 좀 긴 게으름에서 벗어났어…ㅎ. 직무유기에서 벗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이런 것도 쓸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네. 잘 지내고, 건강하게 내년에 만나~~”
다음 주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바카라을 다시 한번 열어보며, 이어 독후감도 쓴다. 친구의 안부 메시지가 알려준 나의 게으름. 벗어 놓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