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이라네요

다시 강릉 1

by전지은


창문으로 늘 보던 눈 덮인 로키산맥을 뒤로하고 며칠 전 다시 강릉에 왔다. 반겨주는 풍경은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과 높은 파도, 잿빛 하늘이지만 마음은 포근하기만 하다. 언제 돌아와도 너른 가슴을 내어주는 동해바다, 그 물결 위로 긴 우울을 벗어 놓는다.


‘괜찮다, 괜찮다’를 마음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미국 집으로 돌아갔지만 슬픔의 무게는 깊고 무거웠다. 엄마를 여윈 상실감은 편해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깊고 무거운 추가되어 가슴에 내려앉았다. 애써 티를 내지 않고 편안한 척했던 몇 달이 지나자 속마음은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편해지지 않는 걸까, 자바카라을 하며 애를 써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여행을 하는 중에도, 친구들을 만나 미루어 두었던 수다를 떨면서도, 고전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결국은 ‘애쓰지 말자’며 거의 숙제처럼 쓰던 일상의 신변잡기들, 여행기, 바카라 읽기 등을 놓아버렸고 살림마저 뒤로 미뤄두었다. 종일 집안에서 그야말로 집 콕.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로 시간을 보내며 지냈던 지난 몇 달. 평생 못했던 ‘긴 게으름’을 피웠다. 어쩌면 그건 우울증의 한 증상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우울이 더 깊어지기 전에 다시 하늘길에 올랐다. 나름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언제나 올 수 있는 고향 바다, 강릉으로 돌아왔다. 코끝이 찡하게 추운 겨울 바다 바람을 맞으며 가슴은 뻥 뚫리듯 시원했다. 찬 바람이 시린 가슴을 덥혀주었다면 어불성설일까?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기러기 같은 생활을 이어간 지 5년. 미국으로 들어가면 강릉이 집 같고, 강릉에 와 있으면 미국 집이 내 살 곳인데 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여름 미국으로 들어갈 땐 어쩌면 오랫동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곳에 또 돌아와 섰다.


겨울 바다와 눈 덮인 백사장을 가슴으로 만난다. 고향의 포근함과 엄마의 따뜻함을 다시 찾아왔다. 천상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은 없어도 옛 동네의 추억들과 골목에 가득했던 그리움은 고스란히 이곳에 남아 있다.

다시 고향

다시 바다

다시 바람

그 사이로 엄마의 음성이 들리고,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진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표현하며 이 우울감에 맞서리라. 감정을 너무 누르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리라. 봄이 오는 이유가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상실감이 겨울 같은 혹한기를 몰고 왔고 깊은 우울감을 불러왔다. 그 우울은 게으름이라는 용기에 포장되어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서너 달, 타인의 시선 안에서 나의 모습은 썩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지 내 마음은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무엇을 잡을 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게으름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뭐 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했고 그것이 내게는 가장 편하고 쉬운 ‘다시 강릉’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이번 강릉의 이유는 그냥~이다.

강릉이 여기에 있고

여기로 올 곳이 있고

엊그제 입춘이 지났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고 그 봄을 강릉에서 지내며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상실의 상처를 봉합하며 지내보려고 한다.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거나 숨이 차도록 솔밭길을 걷고 꽃망울이 올라오는 봄의 연초록을 기다리다 보면 내 마음도 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봄을 기다린다. 꽃망울이 열리는 그 봄을…


*사진들은 pixabay 에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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