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덩굴째 안겨오면

텃밭 이야기 4

by사과꽃


제법 모양을 잡아가는 가을배추는 이제 쫙 편 손바닥보다 크다. 9월 첫 주 토요일 저녁 모종을 샀다. 해가 지고도 모기에 쫓겨가며 모종을 심고 일요일엔 피곤함에 절었다, 그렇게 한숨 자고 해 질 녘 밭에 가서 우린 기절할 뻔했다. 하루 햇빛에 모종이 그렇게나 말라버리다니! 파릇이 살아 있으리란 기대는 순진했다. 다시 모종집에서 서른 포기를 더 사서 늦도록 옮겨 심었고 여전히 우린 환상 속에 있었다.



6월 중순도 지나 처음 텃밭을 얻어 모종을 심을 때는 모든 게 신기했다. 호미질도 삽질도 처음이고 고랑을 만들고 거름 주는 일도 처음이었다. 호박에 부추 고추 가지 두릅 토마토까지 사서 심을 때는 흥이 났다. 차에 농기구를 싣고 다니느라 흙이 오만 대 묻어도 손으로 툴툴 털었다.


도랑물을 물조리에 뜨서 주다가 모터를 사서 분사기로 물을 주기 시작한 건 다행히 지독한 가뭄 전이었다. 하루 걸러 새벽마다 물 주러 눈을 비비며 갔다. 여름 끝무렵 쏟아진 장마에 한 일주일쯤 쉬었을까. 텃밭에 가본 우리는 기암 했다. 온 밭이 호박 덩굴이었다. 시기를 놓쳐서 심은 옥수수는 하나도 수확을 못했고 토마토는 댓 알 따먹었을까. 토마토는 비와 상극인가 보다.


3 포기 심은 호박 중에 아마도 가운데는 단호박이었는지 잎새가 달랐다. 단호박은 꽃도 보지 못했지만 양쪽에 심은 호박덩굴이 온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수박만 한 호박이 세 덩이나 진흙탕에 뒹굴고 있었다.


비 오기 전 처음으로 주먹만 한 애호박을 두 개 땄고 고추를 두 주먹 따올 땐 재밌었다. 마트에서 몇 천 원이면 살 수 있지만 얼마나 귀한 건가. 호박 국도 끓이고 된장찌개에도 썰어 넣었다. 푸르스름한 테두리 안에 노릇한 속살을 눈으로 한 번 먹고 입으로 두 번 먹으면 만족감은 두 배다. 이 맛에 텃밭 하나 싶었다.


지역마다 큰 비를 뿌린 호우 뒤에 텃밭은 호박밭이 되었고 호박 덩굴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년 농사를 그렸다. 호박은 간격을 두고 널찍하게 심겠노라. 그 뒤로도 어른 주먹 두 개만 한 호박을 두 개 더 따서 지인들과 나눴다. 그리고 또 하나, 예상치 못한 누렁덩이를 발견했으니. 풀숲에 납작하니 울렁울렁 모양을 갖춘 호박이 꽃처럼 여물고 있지 뭔가.



여름은 갔지만 나는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뭔지 모르게 기분이 널을 타는 요즘에 컨디션까지 오르락내리락하여 계절이 좀 더디게 왔으면 싶었다. 이 더위가 끝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진 그 옥수수 토마토처럼 허망할 듯 한대 다시 오는 계절을 맞는 작물이 있단다. 가을배추와 잔파다. 9월에 심는 그 네들이 기분까지 이어준다. 그러니 여름은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오는 계절을 아울러서 멋진 초 겨울을 대비해야 풍성한 배추를 안는다. 덩굴째 안겨왔던 호박을 걷어내고 우람한 배추를 안아볼 참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강단 있게 때로는 저돌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