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170알을 도둑맞은 사연

텃밭 2

by사과꽃


오락가락 장맛비에 싹이 텄을까. 새벽녘에 찾아간 텃밭은 한낮의 햇살이 따가웠음에도 여전히 꿉꿉했다. 밭 가장자리에 길게 깔아서 길을 만든 비닐은 그 아래 잡초를 덮고도 곳곳에 빗물을 실었다. 물을 밟지 않으려니 비닐 옆 풀밭을 밟을 수밖에 없다. 풀 밑에 뭐가 있을지 찌릿찌릿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밟고 간다.


주인이 트랙터로 갈아엎어 둔 밭에도 곳곳에 잡초가 고개를 세우고 있다. 저 멀리서부터 눈을 대고 다가가는데 텃밭은 멀리서 보아도 말갛다. 찾는 싹은 보이지 않고 두둑 위가 움푹움푹 파여 마치 씨앗 뿌린 곳을 가르쳐주는 듯하다. 흙을 파헤쳐서 씨앗을 파 먹었다. 까치의 소행일까. 어떤 새가 쪼아 먹었을지 이젠 억울하지도 않다.


고춧대와 가지는 터를 잡아 새닢이 나는데 거름이 모자라는지 여전히 홀쭉하고 키도 별로 자라지 못했다. 상추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오종종 솟아오르고, 가장 두드러지게 자란 건 깻잎 모종이다. 키는 낮아도 튼실하다. 늦게 옮긴 방울토마토는 바닥에 가지를 깔고 새파랗게 올려다본다. 지침대가 필요하다.


호박 모종도 3개. 기세 좋게 땅을 타는 가장 튼실한 녀석과 이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겨우 기를 펴려는 녀석, 마지막 하나는 이랑 위에 심어 좀 얼떨떨해한다. 그래도 이파리 크기는 제법 자랐다. 호미로 흙을 모아 두둑을 덮어줬다. 헤어보니 종류별로 심었는데 시퍼런 옆의 텃밭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없다. 사람의 키를 넘는 옥수숫대며 고구마 순에 호박꽃까지 피운 넝쿨이 어우러져서 옆 텃밭은 푸르름이 절정이다.




처음 작게 다섯 고랑을 만들어 옥수수 씨앗 100알을 뿌렸을 땐 울창해질 옥수숫대를 상상했다. 심기만 하면 옆집의 옥수숫대처럼 키가 자랄 줄 알았다. 싹이 올라오기도 전에 새들이 다 파 먹어버릴 줄이야. 몇 남은 새순도 쪼아서 붙은 알맹이를 떼어먹었다. 하여 건너편에 다시 두 이랑을 일궜다. 이번에는 옥수수 씨앗을 발아시켜 심었는데 역시나 다 뽑아먹고 말았다.


두 번째 씨앗 70알을 털렸을 땐 아이고아이고가 나오지도 않았다. 저기 어딘가에 늦게 심는 옥수수 모종을 판다는데 찾아가 볼 생각이다. '씨앗 몇 봉지쯤이야! 새 모이 준 걸로 하지머' 마음을 다잡는다. 살면서 그렇게 털린 게 어디 한둘이던가. 눈에 보이는 물품이나 현물을 털리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휩쓸여 낭비한 시간이며 무엇보다 털린 이미지나 음해는 또 얼마나 상처를 주던가.


텃밭에 자주가야 이래저래 파이고 상처 난 두둑을 덮고 보살필 텐데 현업에 메인지라 그도 쉽지 않다. 농작물을 가꾸러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을 보살피려 간다. 처음 마주한 자연의 질서에 뜨악했다. 애지중지한 옥수수알 정확히는 170알을 모두 잃었으니. 상상도 못 한 일에 눈이 둥그레졌다. 두 번째로 접한 건 잡초의 성질이다. 어린 잡초는 손으로도 뽑혔는데 이젠 호미질을 댓 번 해도 뽑히지 않는다.


10여 분도 되지 않는 호미질에 땀까지 흘리고 엉덩이 여기저기를 모기가 물었다. 팔은 언제 긁혔는지 상처를 내고 간 잡초가 신기하다. 이랑마다 올라오는 잡초를 제거하고 골 바닥에 퍼지는 잡초를 두들겨 패서 훑어 내고 바삐 돌아왔다. 몇 평 텃밭을 쪼면서 깨달음과 배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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