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다니던 1970년대에는 학교에서 환경 표어 공모전이 성행하였다. 이 표어도 그 시기에 만들어져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학교 게시판이나 길거리 벽보에도 붙어있던 표어라 아직도 이 열네 글자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50년 전의 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거로 기억한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어린 마음에 궁금했거나 믿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중에는 우리가 돈을 주고 물을 사 먹을 날도 올 거야.”
이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에는 펌프만 길어 올리면 물이 언제든 펑펑 솟아났고 그 옆에 새로 만든 수도엔 꼭지만 돌리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데 정말 돈을 주고 물을 사 먹는 세상이 왔다. 그렇게 물을 사 먹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터지면서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들을 낳은 이듬해였고 사는 지역이 낙동강 인근이었기에 불안감은 더 커졌는지도 모른다. 50년 전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맞았고 의아해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환경 오염이 주범이다.
지금은 2026년, 사람들은 대부분 생수를 사서 먹거나 집안에 정수기를 들여놓는다. 우리 집은 냉장고에 정수기능이 있어서 물을 사 먹지는 않는다. 덕분에 플라스틱을 버리는 죄바카라감은 조금 덜 수 있다. 지역의 수돗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지자체에서 홍보하지만,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너도나도 생수를 묶음으로 사다 놓고 먹는다. 그만큼 자연이 훼손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갑자기 어린 시절까지 소환하게 한 것은 바카라을 읽은 후부터였다. 김효숙 작가님의 <용기 있는 생활>이다. 지구를 지키는 소심 발랄 용기 여사의 첫 바카라이다. 이 바카라에서 말하는 용기(勇氣)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마음의 힘을 뜻하고, 용기(容器)는 물건이나 음식을 담는 통이나 그릇을 뜻한다. 바카라을 읽어보니 작가는 이 두 용기를 동시에 가진 씩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바카라이 출간된 시기도 의미 있다. 6월 5일 환경의 날에 출간된 것은 지구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아닌 사소한 습관으로 지구를 숨 쉬게 하고 싶은 작가님의 욕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습관, 고기를 살 때도 용기를 가지고 가는 습관, 떡볶이를 살 때도 과일을 살 때도 저자의 손에는 언제나 용기가 들려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저자의 고백 앞에서 내 마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하지만 오히려 환대해 주시는 가게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작가는 용기가 백배는 더 솟아올랐을 것이다.
환경을 지킨다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나 역시 아주 작은 것들을 몇 가지 실천하는 것이 있다. 작가의 바카라에도 나온 이야기이다. 치약이나 클렌징폼이 다 닳으면 가운데를 반으로 잘라 끝까지 다 쓴다.일주일은 족히 더 쓸 수 있다.
다 쓴 치약과 클렌징폼은 잘라서 끝까지 씁니다.
샴푸나 물비누도 끝까지 펌프질이 안 되면 물을 붓고 흔들어서 끝까지 알뜰하게 다 썼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한 TV 방송을 보고 방법을 바꿨다. 우리가 쓰는 샴푸는 개봉 후 몇 달을 두고 써도 상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계산된 비율로 '방부제'가 들어있다고 한다. 여기에 물을 붓는 순간 방부제 성분이 급격히 희석되면서 세균을 막아내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눅눅하고 따뜻한 욕실 환경에서 물과 만난 세제 찌꺼기는 세균이 좋아한다는데 이때 가장 많이 번식하는 것이 '녹농균'이라는 병원성 세균이라고 들었다. 그것이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유발하고, 심한 경우 피부에 있는 미세한 상처를 통해 세균이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듣고 엄청 놀란 기억이 있다. 그 후 지금 사용하는 방법은 물을 희석한 샴푸는 세탁세제로, 린스는 섬유유연제로 쓰고 있다. 물을 부었으니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쓸 수 있다.
김효숙 작가는 세제나 화장품을 채워오는 리필 스테이션을 알게 되고 용기를 가져가서 내용물을 담아오는 신세계를 발견하여 자주 애용한다. ‘제로 웨이스트 상점’이다. 나도 늘 다 쓴 용기를 버리려면 마음이 찜찜했는데 이런 가게가 있다니, 바카라을 덮고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우리 동네에도 2022년까지 운영되던 가게가 있었는데 운영이 잘 안 되어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그나마 대구에 한 곳이 있었는데 차를 운전해서 30분이나 걸리는 지역에 있었다. 일부러 찾아가기는 거리가 멀다. 세제나 화장품이 떨어지면 찾아가려고 위치와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작가는 명절 때 들어오는 선물 중에 황금보자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적재적소에 사용하고 있다. 남편인 ‘뚝딱’ 씨가 욕실에 샤워커튼으로, 신발장엔 가림막으로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황금보자기로 두툼한 파카의 압축팩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역시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라더니 용기 여사 옆에 용기 남편이다. 나 역시 버리기엔 아까워 차곡차곡 쌓아둔 보자기가 여러 장 있다. 명절에 튀김이나 전을 만들어 큰 소쿠리에 담은 후 음식을 덮는 데 사용한다. 보자기가 넓어서 두 장만 있으면 두 소쿠리의 음식을 보관하는 데 제격이다. 다 쓰고 나면 손으로 조물조물 빨았다가 다음에 또 쓰면 된다.
집 안에 용기가 많은 작가님은 고기를 살 때도 용기를 가져가 사 온다. 이건 한 번도 실천하지 않은 방법이라 괜히 해 보고 싶어졌다. 평상시 시장을 보는 곳은 식자재마트라 고기도 다 팩에 싸여 있다. 집에 있는 용기 중 가장 튼튼한 투명 용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식자재마트가 아닌 동네 정육점으로 향했다.
“사장님, 목살 한 근 통에 담아주세요.”
사장님은 우렁찬 대답과 함께 작은 스티로폼 접시를 꺼냈다.
“아니, 거기 말고요. 이 용기에 담아주세요!”
동네 고깃간에 가서 고기를 사 담아 왔어요.
원래는 투명비닐에 고기를 한번 담고 다시 까만 비닐에 담아준다. 용기에 담으니 비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투명 용기에 담긴 고기가 더욱 맛있어 보이기도 했다. 이젠 이렇게 해야지.
<용기 있는 생활>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그냥 지나칠 만한 사소한 것에서부터 지구의 숨을 쉬게 해주는 방법들이 많다. 많은 독자가 읽고 그중 몇이라도 실천한다면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이 지구를 되돌려 줄 때 미안함이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