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 <2>

실종이 아니라 도피였다.

byKevin Haim Lee

비엔나에서 사라졌던 유대인 모녀가 일주일 만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 안에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인터폴과 이스라엘 경찰의 요구에 따라 버스에서 내렸고, 짧은 조사를 받은 뒤 다시 풀려났다.


성인 두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이스라엘에서 프라하로, 프라하에서 비엔나로, 그리고 비엔나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여행하는 것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이스라엘에서 빚이나 사건 때문에 수사를 받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고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컴퓨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사라지기 한 달 전부터 해외 여행을 준비하면서 도피를 계획했던 정황들이 나타났다.


해외에서 신분증 없이 새 전화기를 사는 방법, 여권을 새로 만드는 방법, 남미에서 학원을 다닐 수 있는 방법, 등을 검색했다. 그리고 사라진 첫번째 나라 비엔나에서 현금 14,000유로(우리나라 돈으로 2천3백만원)를 인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첫번째 여정지인 프라하에서 새 핸드폰을 구매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보·수사 당국이 이들의 컴퓨터에서 찾아낸 기록들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충동적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사건은 ‘실종’이라기보다 ‘도피’다.


조금 더 여론이 파고들면, 왜 이들이 가족에게도, 자신들이 살던 곳, 온라인 게임에도 아무에게 알리지 않은 채 사라지려고 했는지 그 이유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인 두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떠난 것이라면 경찰이 그 이유까지 캐물을 명분은 없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이 그저 자신과 가족, 친구들 사이의 단절이라고 생각해서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사라진 일 하나 때문에 이스라엘 슬롯와 전 유럽이 뒤집히게 될 거 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일 수도 있다.


‘아, 참. 희한하군.’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일주일 내내 이들의 행적이 묘연할 때, 나는 속으로 두 사람이 무언가에 쫓겨 도망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사라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연기처럼 사라질까? 싶었다.


그래서 실제로 스스로 떠난 것으로 밝혀졌을 때, 나는 오히려 덜 놀랐다.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버리고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틀림없이 이들에게도 견디기 벅찬 현실의 벽이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혹시 유대인을 겨냥한 테러가 아닐까 걱정했다.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해외여행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안도 극에 달했다.


이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문득 나의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나도 한국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혼자 힘으로 다니고 있을 때였다.

학비를 낼 때가 되면 돈이 없어서 하늘이 노랬다.


아버지와 싸워가며 다니던 야간대학교를 휴학하면 내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오기를 부렸다.


성적 장학금을 포기하고,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학자금 대출은 점점 늘어났고, 학교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 했다.


그때 나는 정말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내가 매번 등록금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 때문에 속으로 얼마나 불안한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게 나의 고민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면 괜찮을 것 같았다.

연기처럼 사라지면 나의 자존심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는 계속 당당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에는 해외로 도망갈 생각을 못했다.

여권도 없었다.


그저 어디 깊은 산골짜기, 아무도 나를 모르는 시골로 가버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사라지지 못했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눈치챘던 것일까.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새 학기의 등록금을 내주겠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도 대신 갚아주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증권회사에 취직했다.

당시로서는 꽤 높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내가 야간대학교에 입학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이 친구도 야간대학교에 입학했다.

친구가 대학 입학을 준비할 때 나는 삼수를 했던 나의 경험을 친구에게 나누어 주었다.


돈 때문에 최악의 스트레스로 괴로워 할 때, 그친구가 내게 말했다.

“난 너 덕분에 대학에 갈 수 있었어. 그러니까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너한테 보답하는 거야.”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냥 주는 거 아니고, 나중에 다 갚아. 이자는 깎아주게.”


친구의 도움으로 나는 산골짜기로 도망가지 않고, 내가 살던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한국을 떠나 이스라엘에서 25년째 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것도 일종의 도피가 아닐까?’


처음 한국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한국에서 도망친 것이었다.

답답했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르다.


답답했던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새롭게 살고 싶었던 나의 오래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제 2의 인생은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내가 사라지고 싶었을 때,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았다.


비엔나에서 사라졌던 두 모녀도 이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왜 떠났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의 작은 손길 하나가,

한 사람을 사라지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


나에게는 그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기 있다.


이스라엘 모녀에게는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 줄 도움의 손길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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