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90:10;단12:3
# 우리의 날을 계수하게 하소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시편 90편 10절
치과에 갈 때면 가족과 함께 진료받으러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은 음식을 잘 먹어야 건강하고, 건강해야 주어진 삶을 오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몸을 관리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고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수고와 슬픔이 많으며 그 시간은 신속히 날아간다고 고백한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거의 매일 한국전력 앞을 지나거나 집 앞에서 전철을 타고 몇 차례 갈아타기를 반복했다. 익숙한 길을 시계추처럼 오가며 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도 한전 부지는 공사 중이다. 처음에는 건물을 단일 동으로 짓는다고 들었는데, 이후에는 세 개 동으로 나누어 건축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보안이나 테러의 위험을 고려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건축계획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듯이 인간이 세워 놓은 계획 역시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도서관과 서점에서 만난 교수님들의 바카라은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다. 학우들과 함께 하나님을 탐구하고 토론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왕이 되셨는가?”
“인간은 왜 죄와 죽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가?”
수많은 바카라 속에서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말뿐 아니라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음성도 들었다. 사람은 죽으면 입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글과 신앙과 삶의 흔적은 오랫동안 후대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바카라이 가득한 풍요 속에서 여러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보았다. 그 가운데 무엇이 참된 진리이며 시대가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인지 발견하고 싶었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님의 실존과 인간의 죄,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생각 속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한 여성 교수님은 마흔이 넘어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고, 오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강의 중에 말씀하셨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면 새로운 길이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넓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말씀을 듣고 틈이 날 때마다 기도했다.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머리로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실존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돌이키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품는 삶이었다.
집을 짓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난 친척도 있었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 친척도 있었다. 죽음은 언제나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우리의 가까운 자리까지 찾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만을 물어서는 안 된다. 주어진 날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며 누구를 살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여럿이 함께 기도할 때 내가 집중적으로 드렸던 개인적인 기도는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정은 혼자만의 행복을 얻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지키고 바카라임지는 자리다.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아플 때 곁을 지키며, 낙심했을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공동체다.
친척 형님의 간증도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여러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을 했고, 출입증도 무척 많았다고 들었다.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출입증보다 더 귀한 것은,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뢰와 사랑일 것이다.
잘 교육받은 신앙인이 자신의 지식과 지위를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인에게 영광이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이다. 신앙과 학문은 사람 위에 서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낙심한 사람을 붙들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바카라임이어야 한다.
소망도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삶을 자로 잰 듯 계산하다가 앞으로 남은 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은 자신만의 고통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르지만, 그를 기다리며 집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과 그를 의지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똑똑한 사람은 단명한다”는 말이 인생의 법칙일 수는 없다. 지혜란 삶을 빨리 포기하게 만드는 냉정한 계산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이유를 보여주는 능력이다. 믿음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고통 속에 있는 한 사람을 끝까지 찾아가 붙드는 것이다.
인간의 연수에는 한계가 있다. 칠십이든 팔십이든 백 년이든 결국 신속히 지나간다. 그러나 짧은 인생이라도 누군가를 살리고, 낙심한 사람에게 소망을 전하며, 길을 잃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다면 그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다니엘 12장 3절
우리의 날은 빠르게 날아가지만 믿음으로 행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을 살린 말 한마디와 절망한 이를 붙잡아 준 손길, 함께 흘린 눈물과 간절히 드린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남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도한다.
“주님, 우리에게 우리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남은 날을 절망의 계산에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하게 하소서. 낙심한 사람을 돌아오게 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에게 소망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우리의 짧은 생애가 주님의 손에 붙들려 영원히 빛나는 별과 같은 삶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