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멕의 아내들이여
### ― 창세기 4장, 죄가 문화를 입고 확장되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창세기 4장 23절**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의 사건 이후 인간의 죄가 한 사람의 범죄에 머물지 않고 세대를 따라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이 **라멕**입니다.
라멕에 관한 기록은 짧지만 매우 강렬합니다. 성경은 라멕에 대해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창 4:19)라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의 질서를 세우셨지만, 라멕은 두 아내를 취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일부다처제가 라멕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라멕의 가정에서 인간 문명의 중요한 발전도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아다가 낳은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동생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다루는 음악가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기구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었으며, 그의 누이는 **나아마**였습니다.
목축과 음악, 금속기술이 발전합니다. 인간의 문화와 기술은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문명의 발전이 곧 인간의 영적 성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라멕을 통해 보여줍니다. 인간의 손에는 악기가 들리고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는 폭력과 교만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절정을 보여주는 말이 바로 **“라멕의 아내들이여”**입니다.
라멕은 아다와 씰라를 불러 자신이 한 사람을 죽였다고 선언합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창 4:23~24)
가인은 사람을 죽인 뒤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주시고 누구든지 그를 죽이는 자에게 일곱 배의 벌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이 말씀을 완전히 다르게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가인이 살인 후 두려워했다면, 라멕은 살인을 자랑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를 구했다면, 라멕은 자기 힘을 과시합니다.
가인이 일곱 배의 보호를 받았다면, 라멕은 스스로 **칠십칠 배의 보복**을 선언합니다.
죄가 한 세대를 지나면서 더욱 대담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라멕의 아내들이여”라는 외침은 단순히 두 여인을 부르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힘에 취한 인간의 선언이며,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겠다는 인간의 오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라멕의 집에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기술이 있었습니다. 재산이 있었고 문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문명이 발전하면 인간도 선해지는가?**
성경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더 좋은 도구를 만들 수 있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 마음까지 자동적으로 선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은 발전할 수 있지만 죄도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라멕의 이야기가 끝난 뒤 창세기는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다시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의 이름은 **셋**입니다. 그리고 셋에게 에노스가 태어났을 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창세기 4장에는 두 가지 길이 대조됩니다.
한쪽에서는 라멕이 자기 이름과 힘을 높이며 “내 말을 들으라”고 외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이 말 속에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자신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라멕의 목소리보다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강한 사람이 되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느냐**입니다. 라멕은 자신의 힘을 노래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힘을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라멕이 되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창세기 4장이 오늘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