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 한 세대가 떠난 뒤, 교회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한 시대를 대표했던 목회자가 떠나고, 그와 함께 평생을 걸어온 사모님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마음 한편이 묘해진다.
사랑의교회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이 옥한흠 목사님이다. 강남은평교회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시작해 사랑의교회를 세우고,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이라는 분명한 목회 철학을 남겼다. 옥한흠 목사님은 2010년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어 사랑의교회를 섬겨 온 오정현 목사님의 시대도 이제 다음 세대로 목회를 넘겨주는 전환점에 서 있다.
그리고 2026년 7월 25일, 옥한흠 목사님의 평생 동역자였던 김영순 사모님마저 소천하셨다.
그 소식을 들으며 나는 단순히 한 분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보다는, 한국교회의 한 시대가 조금씩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김영순 사모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랑의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직접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사랑의교회의 부목회자들과 장로님을 비롯한 많은 중직자들, 그리고 고인과 오랜 세월 함께했던 성도들이 유가족의 곁에서 함께 울고 기도했으리라 믿는다.
생각해 보면 신앙공동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가장 빛나는 순간에 함께하는 것보다, 사람이 가장 외롭고 아픈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공동체 말이다.
옥한흠 목사님이 남긴 것은 웅장한 교회 건물만이 아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분이 무엇을 가르쳤으며, 그 가르침을 다음 세대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있다. 사랑의교회가 오랜 세월 ‘제자훈련’을 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아 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떠난다. 사모님도 떠난다. 건물도 언젠가는 낡는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전해진 복음과 신앙의 정신이 다음 사람의 삶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 교회의 사명은 계속된다.
이런 생각은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4차원 영성’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용기 목사님은 오랜 세월 생각과 믿음, 꿈과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4차원 영성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2015년 전후로 4차원 영성을 접했고, 이후 그 공동체의 여러 모임과 활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4차원 영성 최고위과정의 다음 기수가 계속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과정이 이어질 것인지, 잠시 보류될 것인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기 목사님이 강조했던 영성이 다음 세대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과정이 중단된다고 해서 영성까지 사라진다면 그것은 결국 프로그램에 의존한 신앙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열 명이 모이든 스무 명이 모이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업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병든 사람을 찾아가고, 장례를 당한 사람의 곁을 지켜주며, 젊은 신앙인과 다음 세대를 세워 준다면 오히려 그 안에서 4차원 영성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을 바라보면 이러한 교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수출과 산업의 여러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 실제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편은 여전히 쉽지 않다. 자영업자는 매출 때문에 고민하고, 청년은 취업을 걱정하며,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일어설 방법을 찾는다. 주거와 생활비의 부담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이럴 때 대형교회의 진정한 크기는 예배당의 좌석 수나 건물의 높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먼저 **예배와 말씀의 공동체**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픈 사람의 곁에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장례를 당한 사람, 병든 사람, 일자리를 잃은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가정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누군가 찾아가 “당신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사람에게 단순히 한 번의 지원금만 건네는 것을 넘어 취업과 재기의 길을 연결해 주고, 법률이나 채무 문제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경험 있는 사업가와 젊은 세대를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대형교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과 지도자들이 있다.
그 네트워크가 단순히 서로의 인맥을 넓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회가 가진 매우 큰 슬롯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나에게도 교회와 관련된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다.
2009년 무렵 나는 송파구에 살고 있었다. 당시 사랑의교회에서 법조인 사역을 담당하시던 한 목회자님께서 송파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셨다. 처음에는 지역의 한 고등학교 강당을 빌려 예배를 드리며 목회를 시작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교회는 인근의 새로운 장소로 옮겨 지금까지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교회라는 것이 처음부터 거대한 건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교 강당에 의자를 놓고 드리던 예배도 교회였고, 몇 사람과 함께 시작한 기도도 교회였다.
사랑의교회 역시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한 목회자의 소명과 몇 사람의 기도에서 시작했고, 그것이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래서 목회 승계 역시 단순히 한 사람이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 승계는 사람의 교체가 아니라 사명의 승계여야 한다.**
옥한흠 목사님에게서 오정현 목사님으로, 그리고 또 다음 세대의 목회자로 이어질 때 중요한 것은 교회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다.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운다.’
‘세상 속에서 어려운 사람을 품는다.’
‘복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한다.’
이 정신이 계속 살아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김영순 사모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나는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유명한 목회자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도 아니고, 큰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고, 내가 받은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누군가 넘어졌을 때 손을 내밀어 함께 일어서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큰 목회자는 떠나고, 큰 교회 건물도 언젠가는 낡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아픔을 기억하고 서로를 붙들어 주는 신앙공동체가 남는다면 그 교회는 여전히 살아 있는 교회다.”**
한 세대가 떠나는 것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믿음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리고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가 기억하게 될 새로운 교회의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