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활지도 업무를 맡았다.
어떤 아이들은 나를 호루라기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오늘도 적당한 표정과 텐션으로 버튼형 호루라기를 들고 복도를 활보한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부캐라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투를 써야할지 모르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학생다움이 철철 흘러넘치는 아이들은 보기만해도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는 중딩헌터스가 되어 사냥감을 찾아나선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떨어지는 낙엽에도 까르르 넘어갈듯한 목소리로 인사해주는 귀염둥이들은 패쓰~
삐익~~~!!!!!
복도 어린이 멈춰!
복도어린이란 복도에서 몰려다니며 우정을 과시하고 학교 생활이 매우 즐거운 학생들로 주로 복도 전력질주와 슬라이딩,
좁은 복도 길막기가 주특기이다.
복도러너들은 호루라기 소리에 자동브레이크기능을 활성화하고
더욱 쌩긋웃으며 폴더인사를 한다,
아주~~~귀엽다 ㅎㅎ
아이돌 지망생 멈춰!!!!
자신감만큼이나 뻗어져나온 아이라이너가 강렬함을 뿜어내고 컬러렌즈로 신비감을 더했다.
눈 밑, 볼의 절반을 넓게 펴바른 블러셔는 당장 무대에서 내려온 듯 눈이 부시다.
꽤나~정성을 다 했다 ㅎㅎ
호다닥 인사하고 불이나케 내뺀다.
다음 스케줄이 있는가보다 ㅎㅎ
그런데
내게 다가오는 비장한 일름러들!!!
누군가를 고자질하러 당당한 기세로 또는 은밀하게 다가온다.
"샘~재들 좀 보세요~~교복 안 입었어요"
그럼 얼른 출동해서 잔소리를 짧고 굵게 하고는 상황을 정리한다.
어른이라고 어려워 할 줄 알고 선생님이라고 눈치보려는 그 몸짓과 눈짓이 너무 순수하고 귀해서 탁하고 거친 세상으로부터 한 없이 지켜주고 싶다.
학생들은 트루먼쇼 세트장 같은 학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실은 모든 것이 정의롭도록 제작된 세트장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존중받고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는 곳이다. 상처주는 말을 하는 못된 아이를 선생님께 쪼르르 이르면 응징받게 할 수도 있어 나름의 정의가 살아있는 곳이다. 실수를 하더라도 여러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지고 언제나 변명의 여지가 있다. 성공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격려받는 곳이다. 선생님의 언행이 부당하다며 이의를 제기했을때 선생님의 사과를 받을 수도 있다.
나름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경험이 가능한 인큐베이터같은 곳이다.
아이들은 가공되지 않은 정글로 나아가기 전에 가장 안전한 곳에서 연습 중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모른다.
세상은 갑과 을의 세상이라 슬롯 초년생이 되면 자연스럽게 을이된다. 어느 순간 갑이 되더라도 을의 눈치를 보는 헛텃한 삶이 지속된다는 것을 모른다.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한 아이가 말한다.
저는 어떻게든 이겨야 해요.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그런데 중학생이 살아낸 시간은 고작 15년이다. 15년동안 자신이 이기고자 했던 대상은 과연 몇이나 될 것이며 얼마나 강력한 대상이었을까?
성공경험이 많았던 아이는 자신감이 차오르지만 한 두번 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패배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루저로 생각하며 자존감이 한 없이 낮아지기도 한다. 자기 성찰을 하며 단단하게 여물어 가면 좋지만 분노가 켜켜이 쌓여 그 화살을 다른 곳으로 쏘기도 한다. 그렇게 남 탓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여차하면 자기를 돕고 안내하는 교사 탓을 한다.
그래서 나는 젼샘 비용을 치르기도한다.
청소년의 전두엽은 성장 중이라고 한다. 여전히 발달 중이고 뇌 사진상 울긋불긋해 보인다. 그래서 충동성이 기본값인 그들과 달그락 거리다보면 나는 크게 상처받기도 한다.
청소년의 발달 과업과 성장 단계에 맞게 권위에 대항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좁디 좁은 시야로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려한다.
즉, 말 같지도 않은 말일 때도 있다.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밀려온다.
난 누구?
지금 여긴 어디?
그래도 내 동료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젼샘~ 어른 중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잖아요.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에요? 우린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랑 씨름하고 있으니 아직 희망이 있잖아요."
"안할께요~~~"라고 말하며
순순히 잘 따라해주면 거기서 끝이다.
그런데 눈빛을 갈아끼운다거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말 속에 반항의 기색이 보이면....정말 싫지만 잔소리 시즌 2가 시작된다.
결국 "안할께요~~~"라는 항복을 받아야 지도가 끝나는데 제발 그 한 마디만 해주면 안되겠니?
너는 애국지사가 아닌데 왜 그렇게 절개를 꺽지 못하는게냐??
그 한마디만 하면 우리 서로 행복할 수 있는데 그 대쪽같음으로 너는 무엇을 얻고 싶은게냐....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게 그리도 과한거니?
오늘도 젼샘비용을 치르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될지 나는 아직 모른다
더 값진 보상이 곱절이니
내일도 씩씩하게 학교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