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텃세 완결 편

오리발 플러팅

by젼샘

20년 만에 수영장에 다시 간 지 5개월이 지났다.

드문드문 이런저런 이유로 빠질 때도 있었지만 내 열정을 다 바쳐서 수영장에 갔다.

앞사람 발 끝에 내 손이 닿으면 손이 짤릴 것 같았고

라커에서 '좁다'며 쏘아붙이는 말도 온전히 다 받아냈었다.

같은 레인 회원들이 나를 대면대면하게 대했지만 굳이 먼저 말 걸 필요가 없었다.

허우적거리며 생존 수영을 할 뿐이었다.

텃세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으나 어느새 그 안에서 따스한 다정함이 서서히 밀려왔다.


킥판을 들고 발차기로 3바퀴를 돌고 나서 오리발을 끼려던 찰나,

그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한 회원님이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오리발을 건네준다.

뭐지?

이거 오리발 플러팅인가?

셀레는데?


50미터 기록을 잰 다면서 모두 물 위로 올라가란다.

최상급반과 상급반 모두 올라가서 두 명씩 짝을 지어 출발 신호에 맞추어 출발한다.

뭐가 뭔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을 때

한 회원님이 출발하는 회원들의 신상 정보를

차례로 설명해 주셨다.

하~ 너무 자상하쟈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우리 레인 회원들이

"1분을 목표로 해요!"라며

응원을 해주었다.

다른 회원들은 40초 컷이었다.

설마 그렇게나 많이 차이가 날까 했는데....ㅎㅎ

진짜로 내 기록은 최하위 1분이었다.

이제 그만 다닐까?

너무 창피한데?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ㅎㅎ 그날 빠진 회원님 중 내 기록이 앞설 수 있는 한 분이 계신 관계로 나는 희망을 가지고 다음 기록 재는 날을 기다려봐야겠다.


강습을 마치고 나오면 샤워장은 마치

쉰들러리스트의 수용소 같은 풍경이다.

좁디좁은 샤워장 가운데 줄을 길게 서있노라면 묘한 기분마저 든다.

그리 열악하니 더욱 질서가 필요했을 것 같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싸움하지 않도록 빈자리가 나면 누군가 큰 소리로 "1번이요~"를 외친다.

그럼 줄 맨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쏙 그 자리를 차지한다.

아~주 훌륭한 시스템이다.

처음에 이 시스템을 몰랐다.

그냥 한쪽에서 기다리다가 자리가 나서 들어갔는데 눈총을 엄청나게 받았다.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 더 당황스러웠고 괜히 불쾌하기까지 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는 거지?

지적받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오십을 바라보는 젼샘이다.

어쨌든....

어느 날 강습시간이 임박했는데 샤워장에 자리가 없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회원님이 나를 자기 자리로 불렀다.

"강습 들어가야잖어~일루 와~여기서 해~"

오메 따수운거....^^

이렇게 온정 넘치는 곳이었어?

하지만 나는 다수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하고는 계속 줄을 섰다.



최상급 레인 다 들어오면 출발하지 말라는 룰을 알려주셨던 회원님이 계셨다.

총대 메고 나에게 상급 레인의 룰을 알려주셨다.

처음엔 아니꼬왔다.

내가 내 귀한 시간 내서 운동하러 갔는데 최상급 레인에 맞춰야 할 이유가 뭐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별 불만 없이 최상급 레인이 오면 출발하지 않거나 가다가도 돌아온다.

운동량이고 뭐고 힘들어 죽갔다. 그래서 돌아오거나 아예 출발을 안 하고 있다. ㅎㅎㅎ


어쨌든....

그 어머니 회원님은 나보다 속도가 느린 회원이 내 뒤에 서자 얼른 앞으로 오라며 끌어당겼다.

왜지?

이 또한 텃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어머니 회원님께서 "젊은 사람이 앞으로 가야지...." 하시며 맨 뒤로 가신다.

흠.... 멋져부러~

그래도 노익장 무시 못한다.

짧은 거리를 빠른 속도로 가는 건 젊은 사람을 못 당하지만 긴 레이스에서는 짱짱하시다.


반년쯤 되어가니 이제는 텃세랄 것도 없이

모든 감각이 무뎌졌다.

역시 시간 앞에 장사 없다.

내가 그 공간에서 보낸 시간만큼

나도 그 공간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쭈뼛거리지도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영장에 들어간다.

아무리 수영장 텃새 4의 에피소드를 찾고 또 찾아도 이렇다 할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물 설고 낯 설은 새 회원이 깜짝 놀라지 않도록 먼저 배려하겠다고 온 마음으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상급반 회원들끼리만 하는 회식자리에 초대받는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

뭔가 역사적인 날이 될 테니까 ㅎㅎ

진정한 결계가 풀리고 나도 one of them이 되는 것이다.

젼샘은 오늘도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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