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서인지 길은 꽁꽁 언 빙판이 되어 있었다. 조심조심 걷느라고 걸었는데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뒤로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 아줌마, 괜찮으세요."
눈을 떠보니 아가씨 둘이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 머리 뒤쪽에서 피나요?"
하고 묻자, 괜찮다면서
"많이 아프시면 병원에 가보세요."
하고 가던 길을 간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한 채 나는 뒷머리를 만져 보았다.
혹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부풀었는지 머리가 두 개인 것
같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스로 집에 왔는데 머리가 흔들거리고 아파서 바로 침대에 누웠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병원에 가기도 무섭고 속상하고 서러워서 찔끔찔끔
울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온다.
" 어디 아파? 누워 있게."
" 여보. 나 못 볼 뻔했어. 빙판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거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빈정댄다.
" 그래서 아까 땅이 그렇게 흔들렸구나. 난 지진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어."
"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내 남편 맞아?"
나는 화낼 기력도 없었다. 다만 끝내 정신을 잃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못하고
간다는 게 너무 허망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이를 가져와 유언장을 적었다.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써 내려갔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없으면 양말도 짝작이로
신고 나갈 남편이 제일 불쌍했다. 지금부터라도 혼자 사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유언장을 보더니
"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고 다 죽니? 토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호들갑이야."
하며 종이를 찢으려 한다.
" 찢어도 좋으니 읽고 나서 찢어.'"
남편은 호기심에 읽어 내려가더니,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마 이 대목 일 것이다.
" 혹 엄마 통장에 남은 돈이 있으면 아빠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 주고, 엄마가 죽으면 바로 가장 좋은 사람과 짝을 맺게 해서 아빠가 죽는 그날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어라."
다 읽고 난 남편은
''이것은 없애면 안 되겠구먼.''
하더니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녁은 알아서 먹을 거니 신경 쓰지 말라며
" 자기 보다 한 달만 더 살다가 가." 한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걱정은 되나 보다.
이제 유언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야겠다.
불확실한 시대에 살면서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을 당 할지
모르니 죽음을 대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적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