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으려 할수록, 이름이 도망갔다
오늘 새벽, 눈을 뜨자마자 창을 열었다.
비가 막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 도시를 뒤엎고 있었다. 공기는 무겁고 축축하고, 어딘가 미지근했다. 수프 같았다. 마시는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닌, 그저 그 안에 잠겨 있게 되는 공기. 나는 그 수프 같은 새벽 속에서 문득 생각했다.
내 영혼에도 쉴 만한 카페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카페를 차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속에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오래된 원두 향을 들여놓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간판이었다.
여백다방. 여백의 시간. 여백의 쉼터. 새벽 내내 이름을 지었다가 다시 지웠다. 이름을 붙이려 할수록 이름이 도망갔다. 그도 그럴 것이, 여백이란 원래 정해지지 않으려는 단어였다. 비어 있어서 여백인데, 무어라 부르는 순간 그 자리가 채워져 버리니까.
천 편의 글을 쓴 손이 간판 이름 하나를 정하지 못해 망설였다.
여백의 새벽,
문학도의 서슬 퍼런 붓 끝은
오늘도 백지 위에서 고뇌의 한 획을 긋는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문학도였다. 천 편을 썼어도 백지 앞에서는 언제나 처음인 사람. 이제는 잘 써야 한다는 무게를 붓 끝에 매달고, 그 무게 때문에 오히려 한 획이 더 무거워지는 사람.
그 문학도에게, 쉴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름 짓기를 포기할 무렵, 이상한 문장이 하나 찾아왔다.
이 카페는, 여백이 쉬어가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백에서 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백도 쉼이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여백은 늘 일하고 있었다. 그림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채로 그림을 완성하고, 음악에서는 소리 없이 소리를 떠받치고, 글에서는 행간마다 숨어 문장을 숨 쉬게 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자리가, 사실은 가장 많은 것을 감당하는 자리였다.
어쩌면 나도 그랬는지 모른다. 쉼표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정작 나의 쉼표에게는 쉴 자리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름은 "여백" 두 글자로 두기로 했다.
아니, 어쩌면 그마저도 간판으로 걸지 않을 것이다. 간판 없는 카페. 지나가다 우연히 들어서는 곳. 메뉴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주문하지 않아도 향이 먼저 오는 곳. 서슬 퍼런 붓을 쥔 문학도가 붓을 내려놓고, 여백이 제 이름표를 떼고, 수프 같은 새벽 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드는 곳.
오늘도 비는 아직 쏟아지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 무거움조차 이 카페에서는 손님이다.
보이지 않는 쉼터, 여백.
당신의 영혼에도, 그런 카페 하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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