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동강을 굽어보며 다섯 봉우리를 넘다

by진경수
“문희마을에서 칠족령을 지나 다섯 봉우리를 넘고 백운산 정상에 오른 뒤 급경사 길로 돌아온다. 짧지만 거친 능선은 되돌아설 판단과 천천히 바라보는 시선, 고비를 한 걸음씩 건너는 힘을 가르쳐주었다.”



DSCN5025.png백운산 정상/사진 진경수



정상 : 백운산 882.4m

출발 : 백룡동굴 주차장

거리 : 약 6.5km 원점회귀

주제 : 고비와 도전

산행일 : 2026. 6. 13.



백운산 등산지도(동강).png




01. 되돌아가는 것도 길이다


DSCN4701.png백운산 능선과 동강의 흐름/사진 진경수



“길이 맞지 않다는 판단에 다시 칠족령으로 되돌아온다.”

낙엽으로 인해 길의 흔적이 희미해지고, 여러 사람이 잘못 디딘 발자국이 또 하나의 길처럼 이어진다. 더 걷기 전에 방향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삶에서도 잘못 든 길을 고집하는 것보다 멈추어 확인하고 되돌아가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돌아섬은 실패가 아니라 길을 바로잡는 판단이다.



“세심한 이정표 하나는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배려다.”

숲 속에서 제대로 된 오르막 흔적을 찾아 다시 길을 잇는다. 안내가 분명했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혼란이었다. 우리가 남기는 말과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이정표가 된다. 작은 배려가 뒤따라오는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지켜준다.




DSCN4772.png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동강/사진 진경수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볼 때 자연이 숨겨 놓은 작은 생명과 새로운 시선을 발견한다.”

세 번째 봉우리를 넘은 뒤 천연 쉼터 같은 바위에 앉아 배낭을 내려놓는다. 욕망과 집착을 산바람에 보내고 나니 참나무 가지의 겨우살이가 눈에 들어온다. 발아래와 정상만 바라보았다면 지나쳤을 생명이다. 멈춤은 전진을 방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세계를 만나는 시간이다.



“비워낸 자리에는 숲의 고요함과 동강의 바람만이 조용히 스며든다.”

마음을 가득 채운 번뇌를 잠시 내려놓자 산의 소리가 또렷해진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행복해질 것이라 믿지만, 산은 비워야 들어오는 것도 있다고 가르친다. 고요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머물 수 있는 여백이다.




02. 다섯 고비를 한 걸음씩


DSCN4845.png두 번째 봉우리에서 바라본 동강/사진 진경수



“그 험한 길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로운 힘이 된다.”

봉우리를 하나 넘을 때마다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네 번째 봉우리 앞에서 뒤돌아보니 조금 전 넘은 길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고비는 다음 고비를 건널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견뎌낸 기억은 지친 순간에 꺼내 쓰는 마음의 힘이다.



“궂은날에는 위험이 커지는 산 앞에서, 용기보다 신중함이 먼저다.”

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급경사 능선은 비와 눈, 안개가 더해지면 순식간에 위험한 길로 바뀐다. 산은 도전을 환영하지만 무모함까지 받아주지는 않는다. 자연의 조건을 살피고 물러설 줄 아는 판단은 겁이 아니라 자신과 동행을 지키는 바카라임이다.




DSCN4947.png깎아지른 단애 위에 우뚝 솟은 다섯 번째 봉우리/사진 진경수



“급경사의 거친 오름도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뒤로 멀어진다.”

마지막 봉우리를 향하는 길에서 체력과 의지는 바닥을 드러낸다. 그러나 고비 전체를 한꺼번에 넘으려 하지 않고 지금 디딜 한 발에 집중한다. 그렇게 쌓인 걸음이 마침내 높은 봉우리를 지나온 풍경으로 바꾼다. 공부와 산행은 닮았다. 결과는 어느 날 도착하지만, 그 결과를 만든 것은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되풀이한 작은 노력이다.




03. 지나온 고비가 풍경이 될 때


DSCN4998.png뒤돌아보니, 힘겹게 넘었던 봉우리들이 한 폭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사진 진경수



“힘겹게 넘었던 봉우리들이 뒤돌아보니 한 폭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다섯 번째 봉우리에서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오를 때는 두려움이었던 길이 이제는 멀리 놓인 풍경이 되었다. 삶의 고비도 지나가는 동안에는 전부처럼 느껴지지만, 자기 걸음으로 통과하고 나면 나를 단단하게 만든 한 장면으로 남는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한 걸음을 내딛는 곳에서 행복은 조용히 기다린다.”

백운산의 절경은 합격이라는 성취와 어우러졌지만, 행복은 정상이나 자격증 합격에만 있지 않았다. 다시 공부하고, 다시 산을 찾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한 걸음씩 이어가는 과정에도 있었다. 만족은 멈추는 일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다음 길을 걷는 힘이다.




DSCN4975.png동강의 아름다운 사행천/사진 진경수



“산은 묵묵히 걷는 사람에게 길을 내어준다.”

정상에서 문희마을로 이어지는 급경사 하산길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요구한다. 뒤따르는 산객에게 길을 내어주며 천천히 내려오고, 다음 도전 과제를 생각한다. 오늘의 성취를 자신에게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인연을 맺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로 이어가겠다고 마음먹는다.


백운산에서 얻은 산행공부는 고비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었다. 길을 잃으면 되돌아오고, 위험 앞에서는 신중하며, 힘든 길은 한 걸음씩 건너는 것. 그렇게 오늘의 고비를 지나면 언젠가 그것도 뒤안길의 풍경이 된다.



DSCN4923.JPG백운산 나리꽃/사진 진경수



산이 남긴 질문

나는 지금 어떤 고비 앞에 서 있으며, 오늘 감당할 한 걸음을 묵묵히 내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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