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 '선(線)'이 존재해야 하는 역설적 이유

우리는 선을 넘나들기 위해, 먼저 선을 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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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어티 쇼, 크로스오버, 그리고 퓨전.

우리 시대의 찬사를 받는 창조물들은 대부분 '선을 넘는' 행위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져보자.

경계를 나누는 '선(線, Line)'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굳이 카테고리를 분류하며, 그 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선을 넘나들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고한 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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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 Line)을 지움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선(線, Line)을 유지함으로써
보호받는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 이하, '선'은 '線, Line'의 의미임.


과거의 방송 생태계를 복기해 해당 주제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필자가 어린 시절 보았던 주말 저녁의 풍경은

이른바 '버라이어티 쇼'의 전성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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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방송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쇼 프로그램 이전에는

모든 프로그램이 구분되어 있었다.


드라마도 단막극, 연속극, 미니시리즈처럼 구분되어 방송했고,

음악 프로그램도 국악, 팝, 가요, 재즈, 클래식, 오페라까지

전문 프로그램이 있었다.


코미디 방송도 콩트 중심, 스탠딩 만담 토크 등 전문 분야별로 편성되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TV앞에 모이는 시간

특히, 주말 저녁 소위 피크 시간대 방송 프로그램에서

섞어찌개, 잡탕밥처럼 모든 장르의 엔터테이너, 연예인들을 총출동시키는 식의

방송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바로 버라이어티 쇼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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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는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에 여러 프로그램 장르 속성을

짜깁기하는 식의 코너로 만들어졌었다.

전문성은 사라졌지만, 장르적 다양성은 지켰다.


쉽게 말해서 한 끼에 한식/양식/일식/중식 등을 모두 먹고 싶은 사람에게

뷔페를 추천하는 것처럼,

비유하자면, 각각 차려진 음식은 고유의 맛과 향과 풍미를 지닌 채

골고루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식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처음에는 만들었다.


즉, 각각의 장르 선은 지킨 채 짧은 코너 형식으로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묶어서 방송한 것이다.


정해진 짧은 피크 시간대에 다양한 시청자 연령별, 취향별 사람들을 한꺼번에

자신들의 방송사 채널에 끌어들이기 위한 꼼수였다.


혹자들은 일본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영향이 없었더라도 그렇게 자체적으로 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국 이런 전략은 성공했고, 방송 프로그램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해당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면 신인도, 한물간 연예인도 모두 스타로 등극하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광고비는 엄청 올랐고 덕분에 방송사는 권력을 갖게 되었다.


이때는 연기자가 인기가 있으면 노래를 불렀다.

60~70년대는 가수가 연기를 했었다.

다시 말해서, 가수가 인기가 있으면 영화를 찍었다.

80~90년대에서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장르로 옮겨가는 것이다.


배우는 촬영을 통해 상당기간 동안 얽매여 있지만,

가수는 한 곡 3분 20초(당시 거의 모든 노래 길이) 동안만 일하면

배우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고,

시간대비 효율성이 좋으니 탤런트뿐 아니라 코미디언, 개그맨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불렀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 프로그램에 넣은 것부터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시장논리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짧은 노래 시간 탓에 좋아하는 가수를 장시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마음을

영화에 녹여내서 가수가 영화에 출연했던 것과는 관점이 다른 현상이다.

어찌 보면 순수함이 사라지는 시대에 진입한 시점이 이때이지 싶다.


그런데 이다음부터가 진짜 문제다.

그러다가 버라이어티 쇼가 어떻게 변했을까?


버라이어티 쇼를 만드는데, 각 장르를 코너별로 만들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세트도 다 매번 바꾸고 여러 개를 만들어야 한다.

등장인물들도 너무 많다.

백댄스, 가수, 배우, 코미디언, 보조출연자, 방청객 등등

인건비도 많이 든다.

쉽게 말해 한 끼에 한식/양식/일식/중식 다 만들어야 하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에 추가된 문제가 또 생겼다.

스타 모시기 경쟁이다.

다시 말해서 스타가 없으면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 방송사별 몸값 경쟁까지,

해외 스타 모시기에도 열을 올리며,

방송 프로그램 제작비가 치솟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결과에 이르렀다.


시청률 때문이라도 당연히 스타는 있어야 하니
없어도 되는 코너, 세트, 조연급 등장인물들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리해고가 떠오른다.

이때부터 버라이어티 쇼는 스타 토크쇼로 전락했다.

둘러앉아서 토크로 시작해서 토크로 끝나는

즉,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경제 논리에 충실한 방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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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금에는 스타들 사생활은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 모두 등장해서,

굳이 알 필요도 없는 것들까지 다 들춰내서 이슈로 만들려는 지경까지 왔고,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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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을 넘기 시작하면 스스로 통제가 안된다.

이유는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은 자극에 반응하는 생물이며,

잦은 자극은 곧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것이 속성이기에

선(線)조차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럼 선을 넘으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의문을 가질 때가 되었다.

인간의 욕망은 선을 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선을 '지우는'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고 이 글의 주제이자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공지능(AI) 시대에 효율성만 앞세우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은 밥이다.

그러나 맨날 밥만 먹으면 지겹다.

가끔 빵, 면도 먹어야 재밌다.

그렇다고 밥대신 빵, 면만 먹으면 그건 아니다.

그럼 주식을 빵으로 하고 가끔 밥, 면은?

아니 면을 주식으로 하고 가끔 빵, 밥은?

됐고, 그냥 빵/밥/면을 번갈아 먹으면?

다 좋다.
단, 밥이든 빵이든 면이든
어느 하나를 없애지는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 인간사는 어떤가?

한쪽으로 쏠리면 소외되는 쪽은 사라질 위험에 노출되어

그쪽 분야의 사람들은 생계위험에 처한다.

그럼 돌아가면서 빵/밥/면처럼 순환시키면 되지 않겠나 싶다.

그건 근본적인 해결바카라이 될 수 없다. 폭탄 돌리기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 없으니까...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만,
그때까지 생존은 해야 하니까...
흙수저, 금수저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신조어는 그 슬롯의 민낯이다.
그래서,
선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선을 넘는 것은 자유지만,
선을 지우려는 것은 안된다.
선은 누군가에는 생존과 직결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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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지겨워 빵과 면을 먹을 수는 있지만,

밥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사라진다면 식탁의 균형은 무너진다.

특정 분야가 대중의 선택에서 잠시 소외되더라도

그 분야가 '선' 안에서 보호받고 존재해야만, 훗날 다시 찾아올 순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논의되는 복지나 기본소득의 본질도 이와 맞닿아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시혜적인 배려가 아니라,

각자의 영역(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다음 기회를 맞이할 때까지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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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것은 창조적 자유의 영역이지만,
선 자체를 지우는 것은 누군가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행위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세상사에서 선을 긋고 지키는 일,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더 넓은 세상으로

안전하게 넘나들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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