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19.『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1977 문학동네

by방수미

주인공 한탸는 삼십오 년째 바카라과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 압축할 바카라들이 들어오면 그는 보물을 찾느라 시간이 늘 지체된다. 그렇게 살아남은 바카라들은 그의 집을 가득 메웠고,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진다. 그는 앞으로 5년만 더 일을 한 후에 은퇴하면 35년을 함께한 압축 기계를 사들여 즐거운 노년을 즐길 계획이다. 하지만, 일이 밀리고 술에 취해 있는 한탸를 못마땅해 여긴 소장은 우유와 콜라를 마시는 젊은 노동자들을 고용했고, 한탸는 백지를 꾸리는 일로 내쳐지게 될 상황이다. 한탸는 충격을 받고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끝내 그가 아끼던 폐지더미와 함께 압축 기계에 들어가 스스로 버튼을 누른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1977년에 지하 출판되었다. (아마도 체코를 벗어나 본 적이 없었을) 보후밀 흐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그의 이상향을 담았다. 철학자의 이름을 부르고, 화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체코 문인의 이름을 알려준다. 특히 고대 그리스를 찬미하며 그리스에 대한 환상을 여러 번 소개한다. 역사와 철학과 인문과 지리가 스며 있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문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던 당대 지식인들에게 같은 갈증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를 넘어 1980년에는 독일에서, 1983년에는 프랑스에서 출판되었고, 체코가 민주화가 된 이후인 1989년에서야 체코에서 정식 출판되었다.

체코의 역사는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이다. 9세기에 슬라브족이 세우고 한때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이 되었던 보헤미아 왕국은 16세기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 병합되어 게르만의 지배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으로 독립을 선포하지만, 다시 히틀러의 지배를 받는다. 8년여 동안 게르만 중심주의의 역겨운 나치의 지배를 벗어나자마자 이제는 소련을 등에 업은 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세운다. 체코는 15세기에 유럽에서 처음으로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체코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 개혁은 실패했지만, 얀 후스의 후세들은 끊임없이 투쟁을 이어갔다. 19세기에는 독일어가 아닌 체코어로 글을 쓰는 민족주의 운동이 벌어졌고, 슬라브 민족의 영광을 담은 곡들이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를 통해 전 세계로 울려 퍼졌으며, 프라하로 돌아온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를 거대한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민족 부흥의 움직임은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아 쇠퇴하는 듯 하지만, 1968년에 민주화를 위한 투쟁(프라하의 봄)을 불태웠다. 마침내 1989년에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드디어 민주 정권이 들어섰다. 체코의 초대 대통령은 반체제 희곡작가인 바츨라프 하벨이었으며 지금 체코 프라하 공항의 이름이 ‘바츨라프 하벨 공항’이다.

한탸는 그의 청춘을 떠올린다. 보라색 양말에 샌들을 신고 유행을 좇았던 소년은 오른발이 개똥에 빠지자 소녀에게 줄 꽃다발도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 소년은 청년이 되어 아름다운 만차와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고급 호텔에서 스키를 타며 일광욕도 즐겼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해에 어린 집시 소녀는 그의 방에 머물렀다. 같이 연을 날리던 그의 사랑이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사라지면서 그의 청년 시대는 끝났다. 한탸도 체코도 어둠의 시대가 되었다.


한탸는 하루에 ‘반 리터들이 네 컵 분량의 맥주’를 마신다. 그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바카라에서 걸어나온 현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한다. 그가 자신만의 지하 왕국에서 환상에 빠져있는 것은 어쩌면 술에 취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당시 체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가 목욕을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겨우 손발이나 얼굴만 닦고 몸통은 어떤 날에 약을 먹고 나서야 씻을 수 있다. 문화를 압살하는 슬롯주의 획일화에 대한 소극적 투쟁이면서 문화의 체취를 간직하고 싶은 적극적 행동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쓰이던 1970년대는 소련의 침공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체코의 역사를 잘 모르지만, 체코의 공산주의 정권은 그래도 민족 중심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한탸는 사라질 문헌들을 모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라하의 봄을 경계한 소련군이 유혈 진압하면서 체코는 민족성과 고유성을 버려야 했다. 마치 특징없이 찍어낸 인형처럼, 모두가 ‘노란색 장갑에 오렌지색 캡, 높다란 가슴받이가 달린 푸른색 멜빵바지 차림에 초록색 터틀넥을 받쳐 입은’ 슬롯주의 노동당원처럼 말이다.

한탸의 아름다운 여자친구 만차에게는 두번의 치욕이 있다. 한번은 무도회에서 리본에 똥이 묻은 지 모르고 춤을 추다가 주변에 똥을 튀게 했고, 오년 후에는 황금산의 고급호텔에서 스키를 타다가 급한 나머지 나무 뒤에서 용변을 봤는데, 스키에 똥이 쌓인 채 내려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노년의 아름다운 만차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집터를 사고 집을 짓는데, 그녀와 한 방을 쓰는 남자는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 계속 바뀐다. 마지막으로 조각가는 마당에 그녀를 닮은 천사상을 세우는데...그것을 보고 한탸는 돌아선다. 왜 만차는 자꾸 똥때문에 시련을 당할까...생각했다. 문득 만차는 허울만 좋은 슬롯주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은 아름답지만 실제 사람들에게 똥물을 튀고, 앞뒤가 맞지않아 웃음거리가 되고, 만차가 여러 직공의 사람들을 필요에 따라 쓰고 버리듯, 스스로 우상화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보인 것은 아닌가 싶다.


보후밀 흐라발은 (만차와 대비되는) 생쥐 가족과 집시들을 찬양한다. 한탸는 터키옥색, 붉은색 치마를 입은 지금의 집시 여자들의 경쾌한 폴카 스텝을 좋아한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어린 집시 소녀를 사랑한다. 그녀의 이름은 일론카(Ilonka 빛나는 여자, 태양)였다. 또 한탸는 생쥐의 눈에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본다. 집시와 생쥐는 큰 것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존재들이다. 그냥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할 뿐이다. 한탸도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폐지 속에서 보물을 찾고 싶은 소박한 사람이다. 70년대의 체코는 소박함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이제 인간의 ‘사고’와 ‘혼신’은 옛말이 되었다. 새 시대는 멈출 줄 모르는 컨베이어 상태와 같다.


바카라과 폐지더미가 쏟아져 내리던 지하실은 지식과 문화의 무덤이고, 이제 한탸의 무덤이 되었다. 그가 아끼는 폐지더미와 함께. 나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읽으면서 지식인들의 체념과 상실을 느꼈다. 백지처럼 하얀 상태가 되어 전진도 후진도 못하는 상태. 마지막이 충격이었지만, 보후밀 흐라발의 입장에서 ‘다른 데서 또 다른 기회를’ 찾지 못할 당연한 결말이다.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Prague Spri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체코 필하모니 결성 50주년을 기념하며 1946년부터 매년 5월 12일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Má vlast」전곡 연주를 시작으로 20여 일간 열리는 음악제이다.


*프라하의 봄 민주화 운동

1968년 1월부터 8월 20일까지 개혁파 서기 두브체크를 중심으로 민주화, 자유화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다.

체코의 민주화 운동이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앞세워 20만 명의 군대로 무력 침공하여 개혁파 정치인들을 숙청했다.

1968년 당시 한 외신기자가 "프라하의 봄은 과연 언제 올 것인가”라고 타전한 이후 ‘봄’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유의 이미지와 겹쳐 ‘프라하의 봄’이 체코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고, 그렇게 쓰인다. ‘서울의 봄’처럼.

당시 많은 정치인 ‧ 작가가 국외로 망명하였으나 바츨라프 하벨과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에 남아 직 ‧ 간접적인 투쟁을 작품으로 이어갔다.

『장미의 이름』의 서문 _ 1980년 출간

“1968년 8월 16일, 나는 발레라는 수도원장이 펴낸 한 권의 바카라을 손에 넣었다...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였다...

이 대단한 학문적 발견은, 친구를 기다리며 프라하에 머물고 있던 나를 몹시 들뜨게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불과 엿새 뒤에 소련군이 이 불행한 도시를 침공해 왔다. 나는 고생 끝에 오스트리아 쪽 국경선을 넘어 린츠로 갔고, 거기에서 다시 빈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 연인을 만난 다음, 함께 댜누브강을 오르는 배를 탔다.”

→최초의 종교개혁 도시이자 당시 가장 어두운 도시였던 프라하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나 싶다.

*벨벳 혁명(Sametová revoluce)

1989년에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바카라이 동유럽에 전해지면서 체코에서도 시민들이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진압 과정에서 학생들이 부상을 입자 만행을 규탄하는 파업이 전국적으로 이어져 결국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섰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고 희생자가 없이 혁명에 성공했다는 의미로 “벨벳 혁명”이라 부른다.


*체코 공화국

1990년 <체코와 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민주주의 정권을 세웠다가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어 각각의 공화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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