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18.『모비딕』

허먼 멜빌 1850 현대지성/열린바카라들

by방수미

“그의 천재성을 존경하는 마음의 징표로 이 바카라을 너새니얼 호손에게 헌정한다.”


너새니얼 호손은 허먼 멜빌에게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했다. 호손은 마흔다섯이었고, 멜빌은 서른인 1850년에 호손은 『주홍 글씨』와 『큰 바위얼굴』을 출간했고, 멜빌은 『모비딕』을 출간했다. 허먼 멜빌은 『모비딕』을 왜 썼을까. 그리고 왜 출간 당시 3,200부 판매라는 초라한 성적표였는데, 갑자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이 되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의 답은 두 번째 읽으면서 찾았다.


허먼 멜빌은 1819년에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복하게 자랐지만, 열세 살에 무역상이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고 아버지가 죽자, 학교를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스무 살에 상선의 수습 선원으로 바다에 처음 나갔고, 그다음에는 포경선을 타고 태평양에 나갔으며, 그다음은 해군이 되었다. 그는 포경선에서 탈출하여 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있는 마르키스 제도에서 식인종과 함께 지냈으며, 이어 타히티에서는 감자농장에서 일했다. 4년여간 멜빌은 바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했다. 식인종과 함께 보낸 넉 달간의 이야기가 담긴 『타이피』로 등단했고,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1. 이슈메일

『모비딕』의 첫머리는 ‘Call me Ishmael.’이다. 이슈메일은 허먼 멜빌의 분신인 셈이다. 이슈메일은 아브라함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적자인 이삭이 태어나자, 공동체 밖으로 내쳐진다. 그렇게 갈라진 아브라함의 자식들은 한 갈래는 아랍인의 조상이 되고, 이삭은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슬람 태동 이후 천년 넘게 종교전쟁이 벌어진 것을 생각하면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름이다. 고래에 대한 환상적인 모험을 기대하며 바카라을 펼쳤던 사람들은 첫 문장에서 눈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이슈메일은 추방자이기에 오히려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자세를 가졌다. 아랍인인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슬람교가 상당히 유연한 점도 오히려 여러 종교를 보면서 필요한 것만 선택하여 교리로 정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비딕』의 이슈메일은 방랑자이다. 추방자의 다른 말은 방랑자이다. 그가 포경선을 탄 이유는 세상을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래서 임금이 적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실한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상선을 타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인종을 만나면서 그는 서양 기독교가 갖는 문제점에 눈을 떴다. 허먼 멜빌이 첫 포경선을 타고 나간 후 탈선하여 넉 달간 식인종과 함께 보냈고, 승선이 거부당해 타히티의 감자농장에서 일한 여러 달 동안 백인과 기독교의 위선에 대해서 깨달았을 것으로 보인다. 『모비딕』의 퀴케그는 그가 보았을 어떤 식인종의 모습일지도.

그래서 허먼 멜빌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진짜 하나님 뜻을 전하는 안내자를 자처한다. 9장에서 매플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신의 길잡이로서 그것을 가벼이 여기는 자에게 화 있을지니!” 10장에서 ‘섬긴다는 것은 뭘까 … 신의 뜻대로 하는 것 … 이웃이 내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이슈메일은 마음이 넓은 하나님은 우상에게 질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퀴케그와 함께 그의 우상 요조에게 기도한다. 19세기의 다른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을까. 우리는 유럽의 중세를 암흑시대라고 배우고,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의 이성이 깨어나 근대를 이루었다고 배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들만의 복음을 내세우며 세계를 약탈하고 식민지화하며 학살했다. 금권만능주의와 신분을 내세우며 자국의 농민 ․ 노동자 위에도 군림한다. 성경에서 눈을 못 떼는 빌대드 선장을 설명하면서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꼬집은 부분에서 멜빌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27장에서 백인 토박이들은 두뇌가 되고, 유색 이주자들은 근육을 공급한다고 설명했고, 42장 「고래의 흰색」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흰색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이 바카라 전체가 무의미해질 테니…’여러 흰색을 빗대서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하는 장이다. 19세기 백인우월주의와 왜곡된 복음의 광풍은 세계대전 시기까지 이어졌다. 두 번의 전쟁으로 유럽 제국주의가 해체되면서야 종교보다 이성이 앞서게 되었고, 그제야 『모비딕』의 가치가 커졌다.


『모비딕』은 이슈메일의 저승 여행이다. 서양의 고전은 저승 여행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는 것이 기본 과정 중의 하나이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아이네아스』,『신곡』 등등에서 직간접적인 저승 여행이 등장한다. 이슈메일이 뉴베드퍼드에서 퀴케그를 만난 여관의 이름은 ‘물보라 여관’이고 주인은 ‘피터 코핀’이다. 코핀이 뉴베드퍼드에서 유명한 포경 집안인 것은 둘째치고, 코핀(Coffin)은 ‘관’이다. 물보라 여관은 저승의 관문이고 이슈메일은 영혼의 안내자 퀴케그의 관을 잡고 살아남아 저승 여행을 마친 셈이다. 심지어 출항도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리스마스 오후에 하지 않는가. 서양 고전에서 밤바다는 저승을 상징한다. 피쿼드호의 파멸을 보여주듯 여관에 그려진 유화는 침몰하는 배이다. 그 배는 1820년에 일어난 에식스호의 침몰이기도 하지만, 곧이어 주인공이 겪게 될 피쿼드호의 운명이기도 하다. 고래잡이들의 예배당의 대리석 추모판도 죽은 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원이었던 매플 목사의 설교 내용은 고래가 삼킨 요나의 이야기이다. 요나가 고래 배에 들어간 것도 일종의 저승 여행이다. 고래잡이들의 예배당이기 때문에 요나서를 설교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슈메일(허먼 멜빌)이 요나와 같이 진정한 복음의 의무를 타고났기에 요나의 수난을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안내자이지만 도망갔다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다시 안내자가 되어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도 요나와 이슈메일의 공통점이다.


허먼 멜빌이 안내자임을 보여주는 것 중에 가볍게 지나칠 만한 문장이 있다. 35장에 있는 구절이다. ‘범신론자 위클리프의 유해가 온 세상에 흩어져 결국에는 모든 해변에 이르렀듯이.’존 위클리프는 영국인으로 최초의 종교개혁가이다. 그의 영향으로 보헤미안의 얀 후스, 독일의 마르틴 루터, 스위스의 츠빙글리까지. 결국 그의 종교개혁은 후세에 완성되었다. 행동파 얀 후스가 이단으로 선고받고 화형당하자,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30년 전에 죽어 땅에 묻힌 존 위클리프의 유해가 꺼내져 화형당하고 강물에 뿌려졌다. 이단자는 거룩한 땅에 묻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허먼 멜빌이 지나치듯 무심히 써놓은 이 한 줄은 최초의 종교개혁가이자 타락한 교회를 바르게 안내하는 선배 위클리프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존 위클리프와 후스 등의 종교개혁은 실패했지만, 루터와 칼뱅을 위시한 신교들은 결국 승리했고, 부패가 줄어들고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32장에서 멜빌은 ‘신은 내가 그 어떤 것도 완성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했는데, 아마도 그는 자기의 위대한 이 작품이 그의 생애에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결국은 위클리프처럼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보았으리라.

피쿼드호에는 외다리 선장과 능력 있는 항해사들과 여러 나라에서 온 선원들과 인디언과 흑인과 식인종이 탔다. 타슈테고가 바다로 떨어졌을 때 퀴케그는 뛰어들었고, 다른 선원들은 서둘러 보트를 내렸다. 퀴케그가 열병에 걸렸을 때, 선원들은 그를 걱정하고 위로했다. 핍이 퀴케그를 위한 눈물을 흘리고, 에이해브는 핍을 선실로 데리고 간다. 타슈테고는 모비딕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도 깃대에 깃발을 꽂으려다 그대로 침몰한다. 바다는 피쿼드호와 선원들을 감추지만, 한 명의 목격자를 남겨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게 한다. 뉴베드퍼드에서 보았던 흑인 교회 따로, 고래잡이 교회 따로, 이런 것이 아니고 허먼 멜빌이 바라본 하나님의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슈메일이 우상에게 기도했다고 그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퇴색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요나서』 1장 마지막 절, ‘야훼께서 큰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니…’큰 물고기가 침몰시킨 피쿼드호는 요나처럼 다시 세상에 나와 하나님의 뜻을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2. 에이해브

에이해브는 또 누구인가. 고래에게 다리를 빼앗겨 복수에 눈이 먼 광인이다. 그리고 구약성서인 『열왕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으로 폭정을 일삼고 야훼 예언자를 박해하면서 다른 신인 바알을 숭배하다가 쫓겨났다. 마음이 좋은 펠레그 선장은 에이해브를 안쓰럽게 여기고 그런 이름을 가진 것은 그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 고통받고 망가졌어도 나름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고도 한다. 일본 해역에서 태풍을 만나 세 개의 돛대가 부러졌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죽음과 심판을 생각한 빌대드와 달리 펠레그와 에이해브는 살아날 궁리만 했고 살아남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에이해브는 역전의 노장이다. 37장에서 에이해브는 이렇게 독백한다. “누군가에게 불을 붙이려면 성냥 자체는 쓰고 버려져야 하는 법!”이 구절을 기억하자. 첫 번째 고래를 만난 48장에 작살잡이 페달라와 노잡이들인 마닐라 원주민이 갑작스레 등장한다. 검은 유령같은 그들은 에이해브의 비밀병기이다. 또 에이해브는 수로안내자 페달라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에이해브는 태양과도 맞서겠다며 광기를 부리면서도 정신 나간 불쌍한 흑인 소년 핍은 보듬어준다.

드디어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이 133장에 등장하여 삼 일에 걸쳐, 세 번의 장에 걸쳐 사투를 벌인다. 드디어 결전의 세 번째 날에 에이해브는 스타벅에게 돌아오지 않음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고 모비딕과 맞선다. 추격을 마친 두 항해사는 다시 본선에 오르고 작살잡이들은 세 개의 돛에 올라 모비딕을 찾는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악인이 아니라 포경선을 사납게 공격하고 공포감을 주는 모비딕을 죽여 바다의 평화를 찾으려는 바다의 왕이다. 태풍을 만났을 때 한 사람의 선원도 잃지 않고 돌아가려고 애쓰던 마음 그대로, 피쿼드호는 반드시 낸터킷으로 돌아가야 했고, 자신은 비밀병기들과 함께 죽음을 불사하며 모비딕을 해치우고 싶었다. 128장에서 아들을 잃은 선장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런 희생을 더 없게 하기 위해서는 리바이어던(바다 괴물)을 빨리 죽이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모비딕』이 출간 당시에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지탄받았다고 한다. 非기독교인의 눈으로는 어디, 어느 부분이 신성모독인지 찾지 못했다. 에이해브의 방자하고 도전적인 발언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자연(신)의 섭리에 따라 그는 밧줄에 목에 묶여 죽었다. 마치 뭍이었다면 교수형당하는 모습으로. 어쩌면 19세기 미국인들이 읽다 보면 이슈메일을 안내자로, 에이해브를 고독한 영웅으로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3. 고래 보고서

허먼 멜빌은 백과사전 수준의 고래 보고서를 같이 제출했다. 거대한 몸체만큼 광범위한 고래의 이야기는 그의 호기심이며 미끼였다. 당시 향유고래 이야기는 인기 있었다. 특히 백색종(Albinism) 향유고래인 모카딕에 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침몰하는 에식스호에서 살아남은 항해사는 『포경선 에식스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를 출판했고, 탐험가 레이놀즈는 목격담을 모아 『모카딕 : 태평양의 흰고래』를 출판했다. 심지어는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 또한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라는 유일한 장편소설을 내놓았을 정도이다. 이런 분위기에 멜빌은 고래 이야기를 앞세워 『모비딕』을 출간했지만 실패했다. 20세기가 되어 허먼 멜빌과 『모비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며 재평가되어 지금의 위치에 이른다.


나는 『모비딕』이 서른의 젊은이 혼자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그는 그의 머리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그의 하나님과 함께했을 것이다. 방대한 『모비딕』이 중요한 소설이 되어 많이들 읽고 있지만, 상징 ․ 철학 ․ 고래 ․ 성경을 넘어 허먼 멜빌이 꿈꾸던 세상은 아직 먼 거 같다. 2026년의 세계를 보면.

덧:::『모비딕』덕분에 세계 여행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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